얼음을 만들고 보관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
여름에 얼음으로 만드는 요리는 왕, 양반들이 먹는 귀하고 호사로운 음식이었다.
그런데 21세기 얼음이 흔해진 이 여름에,
얼음을 써억써억 갈아 만드는 빙수가
‘작은 사치’를 위한 호사스런 음식으로 젊은 세대들의 입맛을 녹이고 있다.
❞“찬 기운이 연기같이 피어오르는 얼음덩이를 물 젖은 행주에 싸 쥐는 것만 보아도 냉수에 두 발을 담그는 것처럼 시원하지만, 써억써억 소리를 내면서 눈발 같은 얼음이 흩어져 내리는 것을 보기만 하여도 이마의 땀쯤은 사라진다.”
1929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별건곤》이란 잡지에 기고한 ‘빙수’란 제목의 글에 담긴 내용이다. 특히 방정환 선생은 ‘빨간 딸기 물이 올라간 빙수’를 예찬했다.
약 1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보기만 해도 이마의 땀쯤은 사라지게 만드는 빙수가 여름 더위를 사냥하는 사냥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물론 ‘빨간 딸기 물이 올라간 빙수’의 모습은 아니다. 고급스럽고 건강한 음식재료로 만들어진 건강한 음식이다. 땀을 식혀주는 디저트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 팥빙수와 보양식
‘과연 팥빙수는 보양식이 될 수 있을까?’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팥’으로 만든 음식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옛 문헌에는 궁중에서 삼복에 팥죽을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팥은 몸의 열을 풀어 내리는 작용을 해 열과 땀이 많은 사람에게 좋다. 땀을 식히는 데 제격인 음식재료인 것이다.
또한 풍부한 비타민B군이 탄수화물의 소화 흡수를 돕고 피로감을 개선하며, 기억력 감퇴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팥의 사포닌과 콜린은 혈중 중성지방 조절에 효과적이다. 칼륨 성분이 많아 과잉 섭취한 나트륨이 체외로 원활하게 배출되도록 돕고, 몸 안 붓기와 노폐물 제거에도 도움을 준다.
이렇게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팥을 얼음 위에 올렸으니, 여름의 땀을 건강하게 식히는 데 이만한 음식도 없다.
♣ 팥빙수와 할매니얼 세대
‘과연 젊은 세대들이 팥 등 전통 음식재료를 얹은 빙수를 좋아할까?’
요즘 젊은 세대인 MZ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할매니얼’이다. 이는 ‘할매(할머니의 사투리)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한 말로, 밀레니얼 세대가 의식주에서 ‘옛날 할머니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입맛 역시도 할매들과 닮아, 팥, 흑임자, 미숫가루, 쑥 등 전통의 음식재료를 활용해 만든 식품의 꼬습고, 쌉싸름하고, 슴슴한 맛을 추구한다.
젊은 세대들이 할매맛을 추구하는 이유로는 옛것에서 새롭고 신선한 자극과 경험을 찾는 ‘뉴트로(new + retro, 로운 복고)’ 바람과 함께 이들 세대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이 꼽히는 데, 재료 그대로를 활용하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의 건강함이 이들 세대에게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콩가루, 미숫가루, 흑임자, 쑥 등 전통의 음식재료를 토핑으로 올리고, 전통의 떡을 넣어 만드는 팥빙수는 할매니얼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다.
♣ 빙수와 플렉스(Flex)
여기에 ‘빙수’의 개념을 깨는 빙수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애플망고, 밀크티, 자몽, 치즈, 유채, 코코넛, 카라향 등으로 만들어 지는 요즘 빙수는 그야말로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맛과 자태를 자랑한다. 또한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건강 빙수이다.
이 빙수는 ‘과연 빙수 가격이 얼마가 적정하다고 보는가’란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몇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임에도 이 빙수를 먹으려는 행렬 역시 여름철 뉴스거리 중 하나가 됐다. 1인용 빙수, 비건 빙수 등 선택권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 빙수는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플렉스(Flex) 문화를 관통한다. ‘플렉스는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을 만족시키거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템은 과감히 소비하는 젊은 세대들의 소비 성향을 반영한다.
“올해 처음 먹은 애망빙(애플망고빙수)”이란 제목의 SNS 게시글 속에는 ‘고급스러운 맛과 자태’를 가진 빙수를 플렉스 해 버린, 작은 사치의 기쁨과 행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실 빙수 가격이 비싸지만, 그렇다고 한 달 월급을 몽땅 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류층만 즐길 수 있던 그 옛날과 달리, 지금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이 호사스런 음식을 누릴 수 있다.
빙수가 건강한 여름을 나기 위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런 여름 음식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