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열풍을 타고 전 세계에 여러 한식이 퍼졌지만, 그중에서도 K-BBQ를 빼놓고 한식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식탁마다 놓인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음식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에는 고기구이뿐 아니라 곁들이는 음식도 한몫했다. 고기와 함께 먹는 곁들임 음식을 파헤쳐본다.
♣ 단순한 구이 요리가 아닌 K-BBQ
한껏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얹으면 ‘치익~’하는 소리가 난다. 육즙이 올라오는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다가 잘 익은 때를 노려 집는다. 소금을 찍을까, 기름장을 찍을까, 쌈장을 찍을까 고민한다.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골라 살짝 찍어 한입에 넣으면 첫맛은 바삭하고, 씹을수록 육즙이 나와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맛이다.
한국식 비비큐에 빠져 집에 불판을 들여놓는 외국인이 생길 만큼, 우리의 고기구이 문화는 중독성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고기구이만을 놓고 이야기하면, 스테이크 등 다른 조리법도 많은데 왜 하필 K-BBQ인 걸까? 그 답을 찾으려면 한국식 고기구이의 면면을 좀 더 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K-BBQ는 하나의 문화다. 단순히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다는 것을 넘어서 상차림과 고기를 굽는 방법, 즐겨 먹는 부위까지 복합적으로 묶인 문화 말이다.
먼저 고기를 굽는 불판을 보자. 물론 평범한 가스 불에 프라이팬에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K-BBQ를 이야기할 때 불판은 식탁과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전용 불판을 의미한다.
식탁 가운데를 뚫어내고 만든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문화는 근본적으로 음식을 따뜻하게 먹는, 아니 뜨겁게 먹는 우리나라 정서와 너무도 잘 맞는다.
국밥 한 그릇을 먹어도 뚝배기에 담긴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게 한국 사람 아닌가. 뜨거운 불판에 바로 구워 한 조각씩 집어먹는 고기는 조리방식을 넘어 우리의 음식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K-BBQ에서 본 메뉴는 단연 고기다. 하지만 고기만 먹는다고 끝은 아니다. 고기와 곁들이는 음식들 또한 다양하다.
서양의 가니쉬(Garnish)는 주 요리를 보조하기 위해 곁들이는 음식을 뜻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한국식 고기구이에는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파채, 양파절임, 장아찌, 무채 등을 비롯해 마늘과 양파, 고추도 함께 나온다.
고기를 찍어 먹는 양념장도 쌈장, 기름장, 멸치젓 등으로 다양하고 심지어는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쌈’ 문화까지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기에 밥과 찌개를 함께 먹는 경우도 많다. 밥, 국/찌개, 반찬으로 구성되는 평범한 한식 밥상처럼 말이다.
그러면 이때 고기는 흔한 반찬 정도의 존재감이라는 뜻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맛있는 것을 한꺼번에 같이 먹고 싶은 거다.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진짜 맛있는 거’라는 공식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K-BBQ의 후식, 냉면과 볶음밥
고기를 다 먹고 난 후 먹는 냉면이나 볶음밥은 어떤가. 다른 문화권에서 ‘후식’이라고 하면 달콤한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커피 등을 떠올리지만 한식의 후식은 본 식사만큼 푸짐한 면이나 밥이다.
냉면은 말 그대로 차가운 면을 이용한 요리다. 메밀을 이용해 만든 반죽을 가늘게 뽑아내 삶았다가 찬물에 담가 식힌다. 여기에 살얼음이 언 차가운 육수를 붓거나, 고춧가루 등을 이용해 만든 빨간 양념장을 얹는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완성이다.
냉면은 차갑다는 속성 때문인지 고기를 다 먹어갈 때쯤 마무리로 곁들이는 것이 보통인데, 차가운 냉면 한입에 뜨겁게 구운 고기를 함께 올려 먹는 경우도 많다. 그 맛이야 말해 뭣하랴.
셔벗만큼 차디찬 냉면 육수까지 먹으면 드디어 K-BBQ 한상차림이 끝난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K-BBQ의 종착역은 또다시, ‘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기구이를 먹으며 이미 밥에 된장찌개까지 먹었는데 또 밥을 먹는 게 바로 한국인이다.
단언컨대, 고기구이의 마무리로 먹는 볶음밥은 그냥 공깃밥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고기를 굽는 동안 빠져나온 기름을 바탕으로 밥을 볶는데 김치와 김, 가끔은 날치알이나 치즈 같은 부재료가 들어가기도 한다.
밥알의 겉은 고기 기름이 묻어 고소하고, 김치의 새콤함이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바닥에 눌어붙은 볶음밥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모아 먹으면 비로소 K-BBQ 코스가 마무리된다.
한국식 고기구이의 곁들임 음식은 고기의 잡내나 느끼함을 잡아주고 맛을 돋우는 역할을 함은 물론, 한식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고기에는 채소를 곁들여 음식끼리의 궁합을 맞춰 먹고, 찬 음식과 따뜻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게 한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 남은 재료에는 밥을 볶아 새로운 음식을 창조한다. K-BBQ 속에는 조화로운 한식의 문화가 있다. 이렇게 친숙한 음식에서 한식의 미덕을 찾아보는 일이야말로 진정 한식을 즐기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