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봄이 되면 여인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물을 캐러 다녔다. 손에는 호미, 어깨에는 바구니를 멘 여인들은 흙 속에서, 풀 속에서 귀한 먹을거리를 잘도 찾아냈다. 채집은 인류 공통의 문화지만 유난히 우리 선조들은 특히 자연이 준 먹을거리를 잘 활용했다. 채집에 숨겨진 지혜와 그 필수품을 알아본다.
♣ 아는 자에게만 보이는 먹을거리
‘나물’ 하면 몇 가지 반찬이 금방 떠오를 테지만 사실 나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 가짓수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지구상에 터를 잡은 이래 나물은 귀한 식재료였다.
약 1만 년 전 농경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른바 ‘수렵·채집 시대’라고 부르던 때 인간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식물의 잎과 줄기, 뿌리, 열매와 꽃을 먹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자연에서 식용이 가능한 식물을 찾아 먹었지만, 외국의 경우 요리가 가능한 부분 외에는 약초나 향신료 등으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유독 다양한 나물을 즐겨 먹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주식인 밥과 연관이 있다.
밥을 주식으로 했기 때문에 반찬이 필요했다. 수렵·채집 시대 때 쓴맛이 나거나 맛이 없어 거들떠보지 않았던 식물도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즐겨 먹는 나물이 돼 밥상에 오를 수 있었다. 덕분에 다양한 식물의 잎과 줄기, 뿌리를 양념하고 조리한 나물 반찬이 발달했다.
우리 선조들이 나물을 즐겨 먹게 된 데는 지형의 영향도 컸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산은 풍부한 먹을거리를 품고 있어 누구나 손쉽게 음식 재료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특히 흉년일 때 산에서 채집할 수 있는 나물은 무엇보다 귀한 식량이 되어주었다.
♣ 어찌 호미질을 게을리할 수 있을까
옛 그림에는 아낙네들이 나물을 캐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윤두서(1668~1715)가 그린 <채애도>나 윤두서의 손자 윤용(1708~1740)이 그린 <협롱채춘>이라는 그림을 보면 나물 캐는 여인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손에는 도구를 들고 있다.
‘채집’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맨손보다는 도구를 쓰는 것이 유리하다. 특히 나물을 캐는 데 필요한 도구 중에 으뜸은 호미일 터.
우리의 호미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이야기가 됐다. 호미는 땅을 파고, 나물을 캐는 데 유용하다. 잡초를 뽑고 작물을 수확하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호미는 주로 여성이 사용한 도구였다.
고대부터 쓰였다고 전해지는데, 고대의 호미는 형태나 기능이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8세기경의 호미는 낫 모양으로 날이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호미는 세월이 흐르며 여러 모양으로 변해오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지금의 모양과 비슷해졌다고 한다.
호미의 뾰족한 날은 모종과 잡초 제거, 뿌리 캐기에 적합하다. 경사진 날은 흙을 뒤집고 일구거나 긁는 데 유용하다. 완만한 모양의 호미 귀나 목 뒷부분으로는 흙덩이를 부술 수도 있으니 이렇게 작지만 다양한 역할을 하는 쓸모 있는 기구가 또 있을까.
조선 전기의 학자 강희맹이 쓴 농서 <금양잡록>을 보면 “한 해의 주리고 배부름이 호미질에 달려 있으니 호미질을 어찌 게을리할 수 있으랴” 같은 구절이 나온다. 당시 사람들에게 호미가 얼마나 중요한 도구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호미는 기능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도 빼어나다. 작가 박완서는 산문집 <호미>에서 그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한 바 있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감탄을 새롭게 하곤 한다.”
♣ 봄이 오면 산으로
호미로 나물을 캤다면 어딘가에 담아 옮겨야 한다. 바구니가 나물 채집에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앞서 말한 윤두서의 그림에는 호미와 더불어 바구니가 등장한다. 그림 속 바구니는 밑바닥이 둥글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이며 손잡이가 달려 있다.
윤용도 <협롱채춘>을 통해 나물 캐는 여인을 그렸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 또한 왼손에는 호미를 들고 오른쪽 어깨에는 바구니를 메고 있다. 요즘 여성들의 핸드백처럼 그 옛날 우리네 여인들에게 바구니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은 아니었을까.
외국에서는 잡초로 취급되는 풀이 한국에서는 별미로,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먹을 수 있는 것, 독이 있는 것, 약이 되는 것 등 자연에서 나는 다양한 식물을 몸소 경험해 쌓은 풍부한 지식을 대대손손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학교에서 따로 배우지 않아도 산에서 들에서 만나는 풀의 귀한 쓰임새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 ‘나물로 연명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배고픈 시절 주린 배를 채우려고 먹기도 했다지만 나물은 알고 보면 나물에는 각종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하다.
봄기운이 주변에 가득하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호미를 들고 나물을 캐러 가보면 어떨까. 물론 책이나 인터넷으로 먹을 수 있는 나물이 무엇인지 공부하는 일이 우선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