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 1985년 발표된 가수 정광태의 노래 <김치주제가>의 가사이다. 우리 민족의 김치 사랑을 그대로 드러내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밥상을 살펴봐도 배추김치, 총각김치, 물김치, 파김치 등 무수히 많은 김치가 자리한다. 그러니 김치와 관련된 속담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 김치는 겨울철 양식의 절반
‘김치’가 매끼 밥상에 오르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일이다. 해외에 한식을 소개할 때면 항상 제일 앞자리에 있는 문지기 같달까? 우리 역사 속에서 김치의 재료와 형태, 즐기는 방법 등은 꾸준히 변화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변함없이 김치를 곁에 두며 사랑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속담에도 잘 나타난다. 속담은 본래 ‘민간에서 전해지는 격언이나 잠언’을 뜻하는 만큼, 김치와 관련된 속담을 살펴보면 서민들이 김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먼저 ‘김장은 겨울철의 반 양식’이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기나긴 겨울을 대비하고자 김장을 했다. 냉장고나 온실이 없던 시절, 겨울철은 신선한 채소를 섭취할 수 없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김치는 비타민과 유산균 등이 풍부해 사람에게 중요한 영양 공급원인 데다, 여러 가지 반찬으로 활용도가 높아 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더하면 더했지, 양식의 절반이라는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없는 사람은 김치를 많이 먹게 된다’는 말은 서민들에게 김치가 어떤 존재였는지 잘 설명해준다. 다른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 김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하고도 기본적인 반찬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치가 중요한 먹거리인 만큼 김장의 적절한 시기를 강조하는 속담들도 많다. ‘김장은 풍년이면 늦게 담그고 흉년이면 일찍 담가야 한다’는 속담은 먹거리의 유무에 따라 김장의 시기를 조절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담고 있다.
‘입동이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 역시 이와 연관된 속담으로, 겨울에 접어드는 입동이 다가오면 서둘러 김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입동이 지나 한겨울이 되면 배추가 얼고 싱싱한 재료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장 배추가 물러지면 집안일이 꼬인다’도 유사한 의미의 속담으로, 김장하기 전에 배추를 잘못 관리하면 얼게 돼 못 쓰니까 미리 잘 관리하라는 뜻이다.
♣ 풍습과 문화를 아우르는 속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널리 알려진 속담이다. 여기에서 김칫국은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국이 아닌 동치미의 국물을 뜻한다. 떡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고 많은 양의 쌀이 필요해 과거에는 자주 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나 잔칫날에 떡을 만들면 함께 먹고자 이웃에게 나누어줬고, 떡을 받아든 사람들은 목이 메는 걸 방지하고자 김칫국을 함께 마셨다. 그런데 아직 떡을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리 김칫국부터 마신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상대 의도와는 상관없이 속단해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모습을 비꼬는 속담이다.
유사한 속담으로 ‘떡방아 소리 듣고 김칫국 찾는다’가 있다. 떡 만드는 소리만 듣고 김칫국 마실 준비부터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앞집 떡 치는 소리 듣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역시 비슷한 뜻을 품은 속담이다. 아무래도 떡과 김칫국은 선조들에게 더없이 환상적인 궁합의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김칫국(동치미)과 관련된 속담은 그 밖에 더 많다. ‘김칫국 먹고 수염 쓴다’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해놓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큰일을 한 것처럼 으스댄다는 말이다. ‘나그네 먹던 김칫국도 먹자니 더럽고 남 주자니 아깝다’는 자신에게는 소용이 없지만, 남에게 주기는 싫은 인색한 마음을 이른다.
사람의 외양이나 행동에 빗댄 속담들도 있다. ‘김칫국 채어 먹듯 거지 떨 듯’은 남들은 그다지 추워하지도 않는데 혼자 추워서 덜덜 떠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미랭시 김칫국 흘리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 미랭시는 아직 식지 않은 송장이란 뜻으로, 나이가 많아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조차 김칫국은 맛있어서 질질 흘리며 마신다는 뜻이다. ‘양반 김칫국 떠먹듯’은 점잔을 빼는 사람을 보고 이르는 말이다.
‘파김치가 되었다’는 속담은 최근까지도 널리 사용돼 익숙하다. 파김치는 파에 소금이나 액젓을 넣어 숨을 죽여야 부드러워진다. 이렇듯 부드러워진 파김치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처럼, 무척 피곤해 힘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빗대어 쓴다.
‘다 파 먹은 김칫독’은 앓거나 굶주려서 눈이 움푹 들어간 사람이 마치 다 먹고 텅 빈 김칫독 같다는 데서 비롯된 속담으로 흔히 쓸모가 없게 된 물건을 빗댈 때 썼다.
‘열무김치가 맛도 안 들어서 군내부터 난다’라는 속담도 전해진다. 아직 익지도 않은 열무김치에서 군내가 나는 것처럼, 아직 장성하지도 않은 사람이 못된 버릇을 배웠다며 타이르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듯 김치를 소재로 한 속담은 오랜 기간 우리의 삶과 풍습과 문화를 아우르고 관통하며 의미를 전달해왔다. 그러한 김치가 이제는 해외로 진출해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다면 김치와 관련된 속담들이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