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겉모습 안에 놀라운 비밀을 숨겨놓은 옹기.
우리 선조들은 흙에서 온 옹기와 더불어 평생을 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세상에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었던 옹기.
그 하나하나에 새겨진 지혜를 알아본다.
❞♣ 옹기의 뜻과 역사
‘옹기’라….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정확히 무엇일까? ‘옹’은 우리 말 ‘독’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란 것이 옹기의 사전상 설명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그릇과 오지그릇은 뭘까?
쉽게 이해하자면 둘 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지만 잿물을 발라 구워 윤기가 나면 오지그릇, 윤기가 없으면 질그릇이다. 요즘은 주변에서 잘 볼 수 없지만, 된장과 고추장을 담는 배가 불룩한 장독이 바로 대표적인 옹기라 할 수 있다.
그 옛날 우리 조상은 농사를 지으며 식량을 담을 용기가 필요했을 테고, 주변에 흔한 진흙을 빚고 구워 그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요약하지만, 모양 좋고 쓸모있는 옹기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지혜, 솜씨가 필요했을까.
그렇게 옹기는 선사시대부터 일상에 깊이 자리 잡았고, 식량을 저장할 뿐만 아니라 시신을 넣는 관으로도 사용됐다. 고구려 안악 3호분 고분벽화에는 크고 작은 독이 늘어선 장면이 그려져 있고, 백제와 신라에서는 쌀, 술, 기름, 간장, 젓갈 등을 옹기에 저장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고려 시대를 넘어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옹기에 대한 기록은 꾸준히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성현의 수필집 <용재총화>에는 “사람에게 소용되는 것으로 도기는 가장 필요한 그릇이다.
지금의 마포, 노량진 등지에서는 진흙 굽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이는 질그릇 항아리, 독 종류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옹기가 당시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8~19세기를 거치면서 옹기는 더 널리 쓰였다. 지역에 따라 형태, 무늬 또한 다양하게 발전했다.
♣ 오랜 세월 일등 생활용기
옹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흙을 반죽해야 한다. 반죽한 흙을 응달에 약간 말린 뒤 떡메로 쳐서 벽돌 모양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를 다시 쳐서 ‘타래미’라는 판자 모양으로 만드는데 이 과정을 ‘판장질’이라고 한다. 그다음, 이 타래미를 물레 위에 놓고 방망이로 다듬는 ‘타림질’을 한다.
옹기 모양은 물레의 속도, 손놀림에 따라 결정된다. 온전히 만드는 이의 솜씨로 완성도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옹기는 항아리(장독), 물항(물항아리), 술항(술항아리), 쌀항(쌀항아리), 똥항(똥항아리), 목용통, 시루, 동이 등으로 다양하게 쓰였다.
쌀, 채소 등을 씻거나 설거지, 빨랫감 등을 담는 데 쓰는 소래기·널박지·옴박지, 식초를 넣는 촛병, 휴대용 술병으로 모양이 자라와 비슷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자라병 등 옹기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의례용구, 악기류는 물론 기와를 만들어 지붕을 잇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옹기들이 오래도록 애용된 것은 그 장점과 특성 덕분이었을 것이다. 통기성, 방부성, 경제성 등은 옹기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선조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그것을 자연스레 터득했을 터. 옹기는 흔히 ‘숨 쉬는 그릇’으로 알려져 있다.
옹기의 재료가 되는 옹기토에는 미세한 모래 알갱이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것이 그릇 벽에 아주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 옹기 안팎으로 공기가 통할 수 있다. 덕분에 옹기는 안에 담긴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다. 된장, 간장, 김치, 젓갈 같은 발효 음식 저장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또한 옹기가 쌀, 보리, 씨앗 등을 저장하는 데 제격인 것은 방부성 덕분이다. 옹기를 가마 안에 넣고 구울 때 나무가 타며 생기는 검댕이 옹기 안팎을 휘감으며 방부성 물질이 입혀지기 때문이다. 옹기에 바르는 잿물유약에 들어가는 재 또한 음식물이 썩지 않게 하는 방부 효과를 높여 준다.
무엇보다 옹기는 경제적이다. 옹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옹기토나 땔감, 유약 등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일반 서민들도 부담되지 않는 싼값에 구할 수 있어 오래도록 첫손에 꼽히는 생활용기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 항아리를 보면 고향을 안다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옹기 중에서도 항아리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지역에 따라 그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이다. 경기도나 충청도 등 중부 지방 항아리는 배가 많이 부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배지름에 비해 입이 넓다. 반면 경상도나 전라도 지역 항아리는 배가 볼록한데, 경상도는 입지름과 밑지름이 좁고 어깨 부분이 발달되어 있고, 전라도는 어깨가 넓고 입이 약간 좁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항아리의 모양새가 지역마다 다른 것은 만든 이나 사용자의 취향 때문이 아니라 자연환경 때문이다.
기온, 일조량의 차이에 따라 입의 크기, 배의 지름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 지방보다 온도가 낮은 경기도나 충청도 항아리는 햇빛을 많이 차단할 필요가 없어 입이 넓고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라도나 경상도의 항아리는 입이 좁아진 것이다. 항아리 하나에도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큰 지혜를 담았다.
주택에서 장독대가 사라지고, 흔하디흔했던 옹기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출 동안 세상은 훨씬 편해졌다. 그러나 오래도록 썩지 않은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이 우리 주변에 가득한 오늘, 흙에서 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질박한 옹기가 새삼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