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밥상만 보고도 바뀐 계절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는 뚜렷한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만의 특권이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들은 건강에 유익할 뿐 아니라 계절의 풍미를 오롯이 담고 있어 미각에 즐거움을 더한다.
국밥도 예외는 아니다.
이 계절에 가장 풍부한 영양을 취할 수 있는 재료들을 골라 뜨끈하게 끓여냈기에 맛도 영양도 으뜸이다.
❞♣ 향으로 맛보다, 통영 도다리쑥국
‘봄 도다리, 가을 전어’리는 말이 있듯이 도다리는 봄을 대표하는 제철 생선이다. 여기에 향긋한 해쑥을 더해 맑은 탕으로 끓여낸 도다리쑥국은 통영 지역에서 즐겨 먹는 향토음식이다.
가자밋과에 속하는 도다리는 양식이 어려워 자연산으로만 즐길 수 있는데, 제주도에서 겨울을 나고 남쪽으로 이동해 통영 앞바다에 이르는 봄철이 되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찰지고 고소한 맛을 품는다. 봄철에 통영을 방문한다면 잊지 않고 도다리쑥국을 먹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다리쑥국은 깊고 개운한 맛에 비하면 만드는 법이 비교적 쉽다. 다시마와 무를 넣어 끓인 육수에 비늘을 벗기고 손질한 도다리와 양파, 다진 마늘 등을 넣고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여내면 거의 마무리된다.
여기에 줄기를 제거한 봄 쑥을 넣으면 도다리의 옅은 비린 맛을 향긋한 쑥 향이 잡아 국물 맛이 개운한 도다리쑥국이 완성된다. 이 개운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 때문에 통영 사람들은 도다리쑥국을 해장 음식으로 많이 먹는다.
도다리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 함량이 적어 보양식으로 좋고, 면역력 강화와 노화 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또, 쑥은 피를 맑게 해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이면 봄철의 나른함도 금세 날려버릴 듯하다.
♣ 에너지를 취하다, 남원 추어탕
과거 농촌에서는 추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논에 물을 빼고 논 둘레에 도랑을 팠다. 이때 진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려고 논바닥으로 파고들어간 살 오른 미꾸라지를 잔뜩 잡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국을 끓여 동네잔치를 열고 마을 어르신들께 감사의 표시로 대접하던 것이 추어탕이다.
미꾸라지는 겨울잠에 들기 전인 가을에 영양소가 가장 풍부하고 맛도 좋다. 양질의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이 풍부해 가을에 먹으면 여름내 잃은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 추어탕은 미꾸라지의 뼈와 내장을 발라내지 않고 통째로 사용하기에 그 영양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음식이다.
추어탕 맛은 특히 전라남도 남원이 유명한데 이는 추어탕을 자주 해먹을 수 있었던 지리적 위치 덕분이다. 이 지역은 섬진강의 지류들이 핏줄처럼 엉켜 있어 미꾸라지를 잡기가 수월하며, 지리산에서 토란대와 무시래기, 고사리 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다.
따라서 유명 전문점들이 자연스레 생겨날 수 있었고, 추어탕은 남원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추어탕의 추(鰍)는 ‘가을’이 아닌 ‘미꾸라지’를 뜻한다.
현재는 양식장도 많아 사시사철 추어탕을 맛볼 수 있지만, 얼큰하면서도 고소한 추어탕 국물에 따끈한 밥을 말아 한 술 뜨면 입안에서 글자의 뜻이 바뀌어 가을 들녘처럼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 부족한 영양을 채우다, 남해 굴국밥
뽀얀 속살에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지닌 굴은 대표적인 스태미나 식품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산란기를 거치고 가을이 되면 살이 차오르기 시작해 겨울이 되면 영양이 가장 풍부해진다.
특히 굴에는 라이신, 히스티딘, 타우린, 메티오닌, 시스틴 등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소고기나 우유보다도 풍부해 ‘바다의 쇠고기’, ‘바다의 우유’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우리나라는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를 둘러싼 갯벌이 자연산 굴 성장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통영은 국내 굴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해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보기에 좋은 여행지다.
통영은 파도가 잔잔하고 해수 온도가 18~20℃로 적절히 유지되며, 청정해역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에 굴 양식에 최적화돼 있다. 특히 통영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굴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굴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겨울철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뜨거운 국물 요리.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육수에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뒤 무와 마늘 등을 넣고 무가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굴과 대파 등을 넣고 익을 때까지 끓이면 시원하고 깔끔한 굴국밥이 완성된다. 굴국밥은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과 굴의 쫀득한 식감이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겨울 보양식이다.
♣ 지친 기력을 깨우다, 제주 고사리육개장
제주에 가면 맛볼 수 있는 고사리육개장은 고사리해장국이라고도 하며, 가정에서는 고사리국으로도 일컫는다. 이름은 육개장이요, 해장국이지만 끓여 나온 모습이나 맛은 사뭇 생경하다.
고사리육개장이라고 하면 소고기로 육수를 낸 칼칼한 국물에 고사리와 소고기가 고명으로 얹힌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제주의 고사리육개장은 마치 죽과 같은 형태다. 육수는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사용하는데, 고기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뭉근하게 끓인다.
여기에 삶은 고사리를 형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으로 으깨서 뭉치고 그 위에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여낸 것이 제주식 고사리육개장이다. 되직한 국물은 고사리와 메밀가루, 돼지고기의 서로 다른 고소함으로 한 데 빚어져 구수한 제주의 맛을 선사한다.
제주산 고사리는 맛과 품질이 뛰어나 과거에는 임금의 진상품으로 올리던 고급 식재료다.
이를 넣고 끓인 고사리육개장은 제주에서 잔치 때 하객음식으로 대접하던 것이 현재는 상품화된 국밥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진하고 깊은 국물 맛이 특징이며 식이섬유가 풍부한 고사리가 더해져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 고사리육개장은 지친 우리 몸에 활력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