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절식인 떡국과 떡만둣국. 뜨끈한 국물 요리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해서 설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즐겨 먹는 음식이 된 지 오래다. 깨끗하고 쫄깃한 맛의 떡국과 깊은 국물 맛에 든든한 만두까지 맛볼 수 있는 떡만둣국은 새해 첫날에 우리 조상들이 전해주는 선물과 같은 한식이다.
♣ 떡국에서 유래한 “꿩 대신 닭”
“새해 첫날 첫 음식” 하면 떡국이다. 밥 대신 차례상에 올리고 나서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설날에는 꼭 떡국을 먹는다.
떡국을 만드는 일은 떡집에서 바로 빼 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하룻밤 정도 굳힌 다음 얄팍하게 써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얇게 썰어 맑은장국에 끓여낸 떡국 한 그릇. 그 안에는 깊고도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옛날에 떡은 귀한 음식이었다. 쌀밥 한 그릇도 귀했던 시절에 그 쌀로 만든 떡은 잔치나 명절 때나 먹을 수 있었다. 그런 떡을 고기 육수에 넣어 끓어낸 떡국은 설날을 더욱 기다려지게 하는 음식이었다.
떡국에 들어가는 흰 떡은 한 해를 시작하는 시간의 경건함을 담고 있고 떡을 길게 늘여 가래로 뽑는 것은 무병장수를 바라는 의미에서다. 그 가래떡을 타원형으로 썰면 엽전 모양과 같은데 여기에는 재복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속담 중에 떡국에서 유래한 것이 있다. 바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다.
지금은 쇠고기나 닭고기로 떡국을 끓이지만 『동국세시기』(1849)나 『경도잡지』(1800년대) 등을 보면 옛날에는 꿩고기를 사용했다. 꿩이 귀해서 구하기 어려워지면 닭고기로 대신해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다.
♣ “떡국을 먹지 못하면 한 살을 더 먹지 못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옛 문헌을 통해 그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1946)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됐으며,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했다.
떡국에 관한 기록은 조선 중기의 『영접도감의궤』에서 병갱(餠羹)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병갱이 지금의 떡국과 같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국수, 수제비, 떡국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과 같은 떡국에 관한 기록은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나온 문헌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1819)에는 “흰떡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이는데, 이를 권모(골무떡)라고 했다.
섣달그믐에 권모를 엽전 모양으로 썰어 넣은 뒤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를 병탕(떡국)이라 한다”고 나와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으로 여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이를 더 먹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조상들도 마찬가지였을까.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첨세병(添歲餠)’이라는 제목으로 “천만번 방아에 쳐 눈처럼 둥그니 저 신선 부엌의 금단과도 비슷하네.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걸”이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에 대해 “풍속에 이 떡국을 먹지 못하면 한 살을 더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이름을 ‘첨세병’이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떡국의 또 다른 이름인 ‘첨세병’은 나이를 물을 때 “병탕(떡국)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 ‘생떡국’ ‘매생이떡국’ ‘조랭이떡국’ 등 종류도 다양
지역에 따라 떡국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재 가장 일반적인 떡국은 서울식으로 육수에 떡을 넣고 끓여 달걀지단 등 고명을 올린 것이다. 충청도에서는 ‘생떡국’을 만들어 먹었다. 멥쌀가루를 익반죽해서 썰거나 새알 등의 모양으로 빚어서 끓여낸다.
경상도에서는 동그랗게 썬 떡 모양이 태양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태양떡국’이, 전라도에서는 전통식 ‘꿩떡국'이나 닭 육수에 두부가 들어가는 ‘두부떡국’이 대표적이다.
해산물이 많이 나는 지역답게 남해안에서는 ‘굴떡국’과 ‘매생이떡국’이 유명하다. 개성에는 ‘조랭이떡국’이 대표적이다. 허리 부분이 잘록한 조롱박이나 누에고치 모양의 떡이 앙증맞다.
이처럼 떡국을 먹는 풍속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 남한 지역에서는 주로 떡국을 먹고, 북한 지방에서는 만둣국과 더불어 떡만둣국을 먹는 것도 특징이다. 언젠가부터 지역에 상관없이 떡만둣국을 즐겨 먹게 되었다.
♣ 떡만둣국, 떡의 쫄깃함과 만두의 든든함이 만나 최고의 궁합을!
무병장수의 의미가 담긴 떡국처럼 떡만둣국에 들어가는 만두에도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떡국과 만둣국은 별개의 음식이었다.
만둣국이라는 명칭이 보편화된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 만두피를 반달 모양으로 접어 빚은 만둣국을 궁중에서는 병시(餠匙)라 했다. 작은 석류 모양으로 빚어 만든 만둣국은 석류탕이라 불렀다.
별개의 음식 재료인 떡과 만두를 함께 넣어 떡만둣국으로 먹는 발상은 북쪽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쌀농사가 적은 북쪽 산간지방에서는 떡국 대신 만둣국이 새해 절식이었다.
명절임에도 가래떡을 뽑을 수 없는 집은 차례상에 만둣국을 올리고 떡을 장만할 수 있는 집은 만둣국에 떡을 넣은 떡만둣국으로 차례를 지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떡만둣국은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귀만두, 둥근 만두, 미만두, 김치만두, 고기만두, 꿩만두 등 만두의 종류도 모양, 속 재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조선 시대 조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만두 종류만도 70여 종 이상이라고 한다.
떡만둣국에 들어가는 만두는 수저 위에 얹어 먹기 편하게 대체로 둥근 것이다. 떡만둣국을 만드는 방법은 떡국과 거의 유사하다. 만두피 안에 있는 속 재료의 맛이 퍼져 국물 맛은 더 깊다.
♣ 새해를 힘차게 열어주는 우리의 한식
묵은 것은 뒤로하고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 첫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민족만이 즐길 수 있는 한식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건강과 풍요의 복이 가득 담긴 떡국과 떡만둣국을 먹으며 한 해를 활기차게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