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과 음식, 소중한 이와 즐기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귀한 손님이 오면 술을 내어 대접하는 것을 예절로 알았다. 집집마다 빚던 가양주도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조상께 예를 갖추기 위해 탄생한 술이다.
술이 몸에 해가 되지 않도록 그에 어울리는 음식도 함께 즐겼는데, 그중에서도 전은 만들기도 쉽고 술의 종류에 따라 재료를 달리해 맛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좋은 안주였다.
우리 술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전통주는 크게 곡물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 양조곡주와 이를 증류시킨 증류주류로 나누는데, 양조곡주는 다시 빚는 방법에 따라 발효주와 증류주, 혼양주, 이양주로 가지를 치고, 거르는 방법에 따라 탁주와 청주, 소주로 분류된다.
빛깔과 맛, 향을 기준으로 다양하게 갈래를 뻗는 우리 술과 마찬가지로 전 또한 육류, 어패류, 채소류 등 재료에 따라 변화무쌍한 맛과 형태를 지녀 서로 어울리는 짝을 찾기 쉽다.
♣ 감칠맛 감싸는 풍부한 식감 탁주와 해물파전
빛깔이 뿌옇거나 흐린 상태의 술을 일컫는 ‘탁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막걸리다. 막걸리는 그 이름처럼 막 거른 상태로 마시기 때문에 입안에 텁텁함이 남는데, 이때 다양한 식감과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해물파전이 이러한 여운을 덮기에 제격이다.
기름을 충분히 둘러 겉은 바삭하고, 여러 재료들을 한 데 섞어 부치니 촉촉한 반죽에 그 다채로운 맛을 품고 있어 탁주의 감칠맛에 지지 않을 정도다.
막걸리는 술을 거르는 과정에서 물을 섞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낮고 저장성이 떨어지지만, 향긋하면서도 구수한 곡주 특유의 발효 향이 입맛을 돋우며 영양가 또한 높아 전 계층에 사랑받아 왔다.
특히 비 오는 날에 ‘막걸리와 파전’이 공식처럼 떠오르는데, 이는 농번기에 비가 내리면 일손을 멈추고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쉬던 휴식의 감흥이 시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듯하다. 파전 역시 손쉽게 재료를 구해 만들 수 있는 안주였기에 그 만남은 음식궁합만큼이나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 맑은 향에 어우러지는 담백함 청주와 생선전
명절과 집안 제사에 정성껏 빚은 맑은 술을 올리는 것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의식이었다. 청주는 조상이 주식으로 먹어왔던 쌀밥을 원료로 하며, 누룩으로 발효시킨 술밑을 맑게 여과한 술이다.
우리 전통주는 신맛과 단맛이 적절히 어우러져 즐기기 좋고 독특한 과실 향이 나는데, 그중에서도 청주는 향과 맛이 독특해 향미를 해치지 않는 담백한 안주가 잘 어울린다.
그 대표적인 음식으로 생선전을 꼽을 수 있다. 명태나 대구, 도미와 같은 흰 살 생선을 사용하며, 얇게 포 뜬 뒤 밀가루로 한 번 옷을 입히고 달걀물을 묻혀 기름에 노릇하게 구워내면 담백한 맛이 일품인 생선전이 완성된다.
흰 살 생선은 비교적 비린내가 적지만 청주의 알코올 성분이 옅은 비린 향까지 잡아주어 맛과 향이 조화를 이룬다. 한편, 생선전과 더불어 독성이 없는 꽃을 찹쌀가루 반죽으로 옷을 입혀 튀긴 화전 역시 청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생선전만으로 뭔가 아쉽다면 보는 즐거움을 더하는 화전을 곁들이면 좋다.
♣ 강한 술맛 돋우는 씹는 즐거움 소주와 육전
인류가 과실이나 곡물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은 역사는 꽤 유구하지만, 술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소주는 상당히 진보된 후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한국 증류주인 소주는 ‘불로 익혀 만든 진한 술’이라는 뜻으로, 곡물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인 증류식 소주와 주정을 물에 희석하여 제조한 희석식 소주가 있다.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 이를 희석시킬 수 있는 육류가 안주로 안성맞춤이다.
소고기의 깊은 맛이 살아있는 육전은 얇게 저민 고기에 밑간을 한 뒤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 지져낸 음식으로, 고기의 육즙과 적절한 기름기가 강한 술로 자극받은 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육전은 만들기는 쉽지만 소고기와 기름 등 들어가는 재료가 귀했던 과거에는 고급 음식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혼례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었는데, 전통 혼례에 쓰이는 육전은 소고기를 곱게 다져 두부와 함께 양념한 뒤 얇게 부쳐내기에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배가 된다. 경사스러운 날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일까, 기름지지만 담백한 육전을 앞에 두면 절로 소주를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