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풍속화가인 김준근이 그린 작품 <엿 만들기>는 강엿을 늘여 모양을 만드는 모습을 그렸다.
세 사람은 가족처럼 보인다.
상투 튼 머리에 띠를 두른 남자들은 강엿을 늘여서 가래엿으로 만들고 있다.
늘인 엿을 가위로 잘라 팔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자를 것이다.
머리를 땋은 아이는 판매할 엿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 호박엿, 황골엿, 무엿… 지역의 대표 엿들
엿은 전분을 함유한 곡식이나 감자류 등을 엿기름으로 삭혀서 고아 만든 식품이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특유의 맛 때문에 예부터 서민들의 간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엿기름이 필요하다.
겉보리를 싹 틔운 후 적당히 싹이 났을 때 손바닥으로 잘 비벼 헤치면서 말린다. 그렇게 가루를 낸 엿기름을 우려낸 후, 우려낸 물과 고두밥을 섞어 50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11시간이 지난 후 밥알이 동동 뜨면 한 번 끓여 식힌다. 이것이 바로 식혜이다. 그런 뒤 밥알을 모두 건져내고 걸쭉하게 될 때까지 끓이면 조청이 된다. 과거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음식 조리할 때 조청을 넣어 단맛을 냈다. 조청을 더 끓여서 되직하게 되면 ‘강엿’이 된다.
강엿이 굳기 전 여러 차례 잡아 늘여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 빛깔이 하얗게 된 게 흔히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흰엿’이다. 이 엿에 깨를 바르면 깨엿이 되고, 콩을 넣으면 콩엿이 된다. 행상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엿을 시장에 갖고 나와 사람들에게 팔았다.
각 지역별로 특색이 있는 엿의 종류도 다양하다. 강원도에서는 마른 옥수수를 곱게 갈아 죽처럼 쑤어 엿기름물에 삭혀 ‘옥수수엿’을 만든다.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자락의 황골마을에서 만든 ‘황골엿’이 유명하다.
경상도에서는 울릉도 특산물인 호박으로 만든 ‘호박엿’이 가장 알려져 있다. 끈적거림이 적고 부드러우며 뒷맛이 고소하다.
충청도에서는 물에 불린 쌀과 무채를 넣은 ‘무엿’이 있다. 조청처럼 묽어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전라도에서는 삶은 고구마를 메주처럼 으깨 쌀밥과 함께 넣어 삭힌 무안군의 ‘고구마엿’이 유명하다.
담양군의 ‘쌀엿’, 잘 달여진 엿을 늘였다 합쳤다를 반복한 광주의 ‘백당’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일찍이 동물성 엿이 발달해 보양식품으로 대접받기도 했다. 차조밥을 지어 꿩을 넣고 끓인 ‘꿩엿’이 대표적. 돼지고기, 닭고기를 넣은 엿도 만들었다.
♣ 복.기쁨 상징하는 겨울철 별미
엿은 시험 합격의 상징이다. 예부터 엿은 ‘복’과 ‘기쁨’을 뜻하는 음식으로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었다. 철썩 달라붙는 엿의 끈끈한 성질을 합격에 비유했다는 설도 있다. 단맛이 주는 기쁨이 복을 부르고 만복이 쩍쩍 붙어 살림이 늘어난다는 긍정의 의미도 갖고 있다.
실제로도 엿은 시험 전 먹으면 두뇌 회전에 효과적이다.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근원은 포도당이다. 엿의 단맛을 내는 맥아당(엿당)은 포도당 두 개가 결합된 것으로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설탕보다 포도당을 두 배 가까이 공급한다.
따라서 흡수속도가 빨라 먹는 즉시 두뇌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임금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 안에서 조청 두 숟가락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달콤한 엿으로 잠든 뇌를 깨운 것이다.
엿을 이용한 과자류는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는 ‘행당맥락杏塘麥酪’이란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당’은 단단한 강엿, ‘락’은 감주를 의미한다. 당시 엿기름을 이용한 엿이나 감주가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부터 엿은 세찬(설날 차례를 지내거나 이웃들과 함께 먹기 위해서 만드는 음식의 총칭)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음식으로 겨울철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엿을 만들어 항상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올 겨울엔 달콤한 엿으로 온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