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를 달래고 온기를 채우는 뜨끈한 한 그릇
❞본디 우리 상차림에서는 국과 밥을 따로 담아 차려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밥은 이러한 규칙을 깨고 국에 밥을 토렴하듯 말아 한 그릇에 담아낸 음식이다.
주로 장터 어귀에서 사람들과 밥상을 나누어 쓰며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던 국밥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추위와 허기를 동시에 달랠 수 있는 서민들의 외식 메뉴였다. 국밥은 전국에 5일장이 정착하면서 주막과 함께 확산했으며, 그 고장의 맛과 식문화를 대변하는 개성을 품기 시작했다.
음식이란 한 지역에서 입소문을 타면 시간이 지나 다른 곳에서도 맛볼 수 있는 파급력을 지니지만, 국밥은 본고장에 직접 찾아가 맛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향토적 풍미가 존재한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대표하는 국밥으로는 흔히 소머리국밥과 양평해장국을 꼽는다.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은 상류층 사대부들의 소고기 소비로 인해 그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 일대에는 도축장도 많았고, 여기서 나온 다양한 부산물을 활용해 국밥을 파는 탕반가도 즐비했다.
초창기 탕반가에서는 특히 소의 머리고기와 소뼈, 껍질, 우족을 가마솥에 넣고 오랜 시간 끓여낸 소머리국밥을 많이 팔았다. 간장으로 간하고 고춧가루로 얼큰하게 맛을 낸 소머리국밥은 별다른 찬이 없어도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일품요리였다.
경기도 양평은 조선 시대 때부터 한우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고기 맛만큼이나 소의 내장과 서지를 주재료로 한 해장국 역시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해 한양에까지 인기를 끌었다. 양평해장국은 매운 고추기름과 고추씨로 얼큰한 맛을 내고, 선지와 각종 내장, 콩나물, 우거지 등을 넣어 깊고 개운한 맛을 더한다.
전라도 국밥 하면 맑은 국물의 나주곰탕과 시원한 맛의 콩나물국밥이 바로 떠올려진다. 곰국에 밥을 말아 국밥 식으로 낸 것을 곰탕이라 일컫는데,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 국밥과 달리 소뼈와 파 뿌리, 양파, 마늘을 넣고 하루 동안 삶아낸 육수에 사태와 양지머리 부위만을 넣고 끓여 국물이 맑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나주곰탕은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나주의 5일장에서 상인과 서민들이 사 먹던 국밥 요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라남도에 나주곰탕이 있다면 전라북도에는 전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콩나물국밥이 있다. 전주는 물이 맑아 콩나물이 유난히 맛있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전주비빔밥에도 특산물인 콩나물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데, 그 맛이 진가를 발휘하는 음식이 바로 콩나물 특유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콩나물국밥이다.
콩나물을 삶아 뚝배기에 반쯤 채우고 밥을 넣어 한소끔 끓인 뒤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뿌려 내놓으면, 먹는 이는 여기에 달걀을 풀어 넣고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춘다. 전주 남부시장에서는 뚝배기에 밥을 넣어 끓이는 대신, 밥이 든 뚝배기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내며 별도의 용기에 수란을 제공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경상도 지역을 방문하면 흔히 맛볼 수 있는 국밥 요리가 따로국밥과 돼지국밥이다. 경북 지역에서는 소뼈와 도가니를 푹 곤 국물에 소고기를 넣고 재차 끓인 뒤 삶은 고기를 썰어 올리고 고춧가루 등으로 빨갛게 양념하여 끓인 국을 밥과 따로 내어준다.
따로국밥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차림새에서 비롯됐다. 국에 밥을 말아서 내놓으면 국물 맛을 방해해 따로 담아낸 것이라 한다. 밥을 말기 전에 한 술 뜨면 얼큰하고 걸쭉한 국물이 감칠맛을 더한다.
부산을 비롯한 경남 지역에서는 특이하게도 돼지 뼈로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수육을 넣고 밥을 말아 먹는 돼지국밥이 유명하다. 이러한 국밥 형태는 한국전쟁 중 피난민들이 비교적 구하기 쉬운 돼지 부산물로 설렁탕을 만들어 먹은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국밥은 다시 향신료와 내장을 풍성하게 넣는 대구식, 설렁탕을 닮은 뽀얀 국물의 밀양식, 곰탕처럼 맑은 국물의 부산식 등으로 가지를 치는데, 돼지 육수 특유의 향이 소고기국밥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다.
따뜻한 국물이 저절로 떠오르는 계절이 찾아왔다. 뜨끈뜨끈한 국물이 따뜻하게 데워주고 푸짐 재료들이 든든하게 채워주는 국밥이 떠오르는 때다. 전국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별 대표적인 국밥을 확인하고 지역의 특색이 담긴 국밥을 먹으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