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불교의 사찰음식은 재료부터 만드는 방식,
담아내는 상차림에 이르기까지 소박하며 고즈넉한 정서를 자아낸다.
채식이 인기를 끌며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채식 레시피로 주목받는 사찰음식에 대해 탐구해보자.
❞♣ 사찰음식 전문점이 ‘핫 플레이스’?
사찰음식은 절에서 먹는 음식을 뜻한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 정신에 따라 육식을 하지 않고 인공 조미료도 넣지 않는 채식 음식이다. 많은 양을 욕심내지 않으며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일반적인 채식과 사찰음식의 다른 점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사찰음식에서는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무릇)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채소들은 자극이 강하고 향이 세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마음을 흩뜨려 수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이 다섯 가지 재료를 쓰지 않는다.
채식 중에서도 맛이 강한 채소를 피해 풍미가 담백하고 소화에도 이롭다는 것이 사찰음식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채식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덩달아 사찰음식이 인기다. 채식의 단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단계인 비건(vegan)은 우유, 달걀 등의 유제품을 포함한 모든 육식을 하지 않는다.
사찰음식 또한 채소만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까다로운 수준의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 주변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 채식을 기본으로 한 사찰음식 전문점이 늘고 있다.
♣ MZ세대와 가치소비, 채식 열풍으로 이어져
과거 채식은 건강을 위해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채소 위주의 식단은 지방의 섭취량을 줄이고, 소화에도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소비의 일환으로 채식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소, 돼지, 닭 등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된다는 것이나 살생을 통해 고기가 식탁에 오른다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또한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등이 환경 파괴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채식을 하는 이유로 많이 꼽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 <축산업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 environmental issues and options)>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 중 축산업에서의 비율은 18%로, 이 수치는 운송업이 차지하는 비율(14%)보다 높다고 한다.
가치소비는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가치 판단을 토대로 제품을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 방식’을 뜻한다. MZ세대가 주로 지향하는 가치인 윤리, 환경 보호, 선한 영향력 등이 채식과 맞닿으며 채식 인구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한국식 채식 중 하나인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는 분석이다.
♣ 외국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사찰음식
해외는 우리나라보다 빨리 채식이 보편화됐다. 채식과 관련된 협회나 단체도 많아 채식에 관한 정보도 많고 채식 식당도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에 채식이 느리게 도입된 데는 문화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식이 본래 채소를 주재료로 한 경우가 많다는 이유도 있다.
주식인 밥은 물론 반찬도 채소 중심의 나물류가 많고, 부식으로 즐기는 부침개나 전도 마찬가지기에 굳이 채식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지 않아도 이미 채소 위주의 식단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한식은 채식 식단을 꾸리기에 쉽다. 양념에서 육류(고기 육수 등), 해물류(새우젓 등)를 빼면 더욱 다양한 종류의 채식을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 문화가 세계로 퍼지며 한국 콘텐츠 속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도 높다. 그중에서도 사찰음식은 템플스테이와 결합한 형태로 체험해볼 수도 있고, 사찰음식을 통해 한식 상차림 문화를 배울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프랑스 파리의 유명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홍승 스님이 방문해 한국의 전통 장으로 만드는 사찰 음식을 소개했다. 이어 르 코르동 블루는 사찰음식을 ‘채식전문과정(Plant-Based Culinary Arts)’의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 사찰음식은 앞서 말했듯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아 다른 한식에 비해 맛이 강하지 않다. 이 점이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한식인 김치 등은 매운 양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외국인들에게는 진입장벽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사찰음식은 매운맛이 적고 마늘과 파 등의 향신료가 적게 들어가 외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기에 한식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기에도 좋다.
♣ 자연의 재료로 건강하고 정갈하게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찰음식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으로는 산나물을 이용한 산채비빔밥이 있다. 사찰의 상당수가 산속에 위치하고 있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에서 나는 나물을 캐서 요리에 두루 활용해왔다.
나물을 그대로 삶아 간단히 양념해 먹을 수도 있지만, 나물 하면 비빔밥이 자연스레 연상될 만큼 밥과의 궁합도 좋다. 산나물은 각각의 향과 맛이 짙다. 조금은 거칠고 못난 모양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산의 정기를 그대로 받아 영양성분 면에서도 뛰어나다.
산채비빔밥은 주재료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계절과 맛의 조화를 생각해 자유롭게 조합하여 구성할 수 있고, 혹시 못 먹는 나물이 있다면 뺄 수도 있다. 특히 외국인에게 산채비빔밥을 소개할 때는 그들이 한국의 산에서 나는 다양한 나물들을 낯설고 어렵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먹기 편한 종류의 나물로 구성하여 그릇에 담아내면 좋다.
장 문화는 한식의 중요한 부분이다. 자연의 재료를 오랫동안 살펴 발효해내는 장은 외국의 소스 문화처럼 쓰일 수 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의 주재료는 콩이다.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인 콩은 단백질이 많아 채식으로 채우기 힘든 영양소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다. 특히 고추장의 캡사이신 성분은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밀가루 반죽에 고추장을 넣어 만드는 장떡은 반죽 그대로도 맛있고 채소를 넣어 섞어 부쳐도 맛있다. 반죽에 봄나물을 넣으면 봄나물 장떡이 되고, 두릅을 넣으면 두릅 장떡이 된다. 중국, 일본,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많이 자라는 방아잎을 넣으면 방아 장떡이 된다.
방아잎은 소화에 좋고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있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다. 방아잎의 독특한 향취는 심심할 수 있는 장떡에 맛의 포인트가 되어줄 수 있다. 사찰음식은 채소를 여러 방법으로 요리해 다양한 맛을 빚어낸다. 자연의 재료를 가져와 욕심내지 않고 정갈하게 차려 먹는 사찰음식 문화와 채식이 만나 한국식 채식의 세계화를 피워낼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