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인 명태는 여러 방식으로 건조되며 매우 다양한 이름을 얻는다. 황태, 북어, 코다리, 먹태, 백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황태는 사람의 입에 들어가기까지 서른세 번의 손길이 필요하고, 이것도 모자라 하늘이 돕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니 그리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각 명칭을 얻기까지 명태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 명태라는 이름을 얻다
조선 시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임하필기>를 보면 명태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명천이라는 마을에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어떤 물고기를 잡아 도백(지금의 도지사)에게 바쳤는데, 도백이 맛있게 먹고 그 이름을 물으니 아는 이가 없었단다.
이에 명천의 태씨 어부가 잡았다고 하여 ‘명태’라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북해에서 나기 때문에 북어라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동해에 풍부했던 물고기였던 데 반해 명태 또는 북어라는 이름을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조선 전기 문신 이행·윤은보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여 1530년에 편찬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비로소 명태로 추정되는 무태어라는 물고기 이름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명태가 조선 초기의 문헌에 잘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름 없는 물고기는 먹어서 안 된다는 미신 때문에 명태를 먹지도 잡지도 않다가 이름이 붙은 이후부터는 많이 잡았다는 설이 있으며, 또 명태를 대구와 동일시하였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풍성한 어획량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종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인 서유구가 어류학에 관하여 1820년경에 저술한 연구서인 <난호어목지>를 보면 생것은 명태, 말린 것은 북어라고 하며, 명태가 다산하여 전국에 넘쳐흐르며 우리나라 수산물 중에서 청어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부터 명태 어업이 큰 성황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최근 어획량이 급격하게 감소해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명태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1980년 연간 어획량이 16만 톤에 이르렀던 명태는 1990년 1만 톤으로 줄어들었고, 2004년에는 100톤 미만으로까지 떨어졌다.
2008년에는 급기야 어획량이 0으로 기록됐다. 현재 용대리 등에서 건조되는 명태는 모두 러시아산이다. 하지만 황태는 우리 땅에서 우리의 바람으로 말려지니 ‘메이드 인 코리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황태, 강원도에 자리 잡다
겨울철 강원도의 산골 마을을 찾아가 보면 국도 양쪽 곳곳에서 명태를 걸어 말리고 있는 ‘덕장’을 쉽게 만나게 된다. 명태로 유명했던 함경북도 원산에서 월남한 이들이 강원도 여기저기에 덕장을 만들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1960년대 즈음 마지막으로 뿌리를 내린 곳이 진부령 용대리와 대관령 횡계리라고 한다.
특히 하늘이 내린 황태마을이라 불리는 인제군 북면의 용대리는 황태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황태가 만들어지는 데는 영하의 추위와 큰 일교차, 바람 그리고 많은 눈이 필수인데 이곳 용대리는 이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대체로 12월경 통나무로 덕장을 엮고 1월부터 본격적으로 ‘덕걸이(명태를 덕장에 거는 작업)’를 한다.
덕장에 걸린 명태는 밤에는 영하 10℃ 이하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가 한낮에는 따뜻한 햇살을 받아 녹기를 3개월 정도 계속하고, 하얗게 쌓인 눈은 조금씩 녹아 명태살로 배어들어 얼었다가 녹고 건조되며 노란빛을 띠는 연한 육질의 황태를 만들어낸다.
황태는 ‘하늘과 사람이 동업하는 비율이 7대 3이다’라는 말처럼 덕장이 자리한 곳의 기후조건은 사람들의 바지런한 손길과 정성보다도 중요한 요소이다.
♣ 명태가 황태가 되기까지
명태는 참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바닷고기이다. 명태의 생것은 ‘생태’, 명태의 새끼를 ‘노가리’, 생태를 그대로 얼리면 ‘동태’가 되고, 60일 정도 말리면 ‘북어’, 보름 정도 반쯤 말리면 ‘코다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태를 잡는 장소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북태평양과 베링해 등 먼 바다에서 잡히는 명태를 ‘원양태’라고 하고,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우리나라 동해 연안에서 잡아 올린 명태는 ‘지방태’라고 부른다.
황태가 되기까지 수많은 손길과 적잖은 시간을 거치면서도 명태는 여러 이름을 얻는다. 덕장에서 건조할 때 날씨가 너무 추우면 색깔이 하얗게 변해 버려서 ‘백태’라고 부른다. 백태와는 반대로 날씨가 따뜻하면 거무튀튀한 색을 띠어서 ‘먹태’ 또는 ‘찐태’라고 한다.
이외에도 작업 도중에 실수로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덕장에 걸려 건조된 것을 ‘통태’라고 부르며, 건조되다가 바람에 의해 덕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을 ‘낙태’라고 한단다.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을 걸어 건조시킨 것은 ‘무두태’, 흠집이 생겨 상품 가치가 떨어진 것은 ‘파태’, 수분이 쪽 빠져서 딱딱해져 버린 것은 ‘깡태’라고 한다. 이들 무두태, 파태, 깡태는 잘게 찢어 황태채로 만들거나 제수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황태도 이름이 여럿 된다. 노란색을 띠고 있어 ‘노랑태’라고 불리고, 더덕처럼 마른 북어라는 뜻의 ‘더덕북어’라고도 한다. 하늘이 도와 백태, 먹태, 낙태, 파태 등으로 도중하차(?)하지 않고 겨우내 얼부푼 황태는 노르스름한 빛깔에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육질을 자랑한다.
명태는 덕장에서 건조되면서 단백질의 양이 2배 가까이 늘어나 고단백식품인 황태로 변신하고, 메티오닌을 비롯한 풍부한 아미노산으로 간 기능을 향상시켜준다. 고단백 저칼로리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좋다니 이만한 건강식품이 없는 셈이다.
슬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 뜨끈한 황태국이나 황태미역국으로 몸을 데워보거나, 포슬포슬한 식감이 살아 있는 황태구이로 입맛을 돋우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