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김치. 우리 선조들은 사시사철 김치의 맛을 지키기 위해 뛰어난 지혜를 발휘했다. 바로 옹기 김칫독과 김치광을 이용해 김치를 보관한 것. 오늘날 김치냉장고로 고스란히 이어진 그 기술과 과학적 원리를 알아본다.
♣ 그 옛날 쨍했던 김치맛은 어디로
맛있는 김치를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매콤, 새콤하고 감칠맛이 돌고 아삭아삭한…. 여기에 개인적으로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바로 ‘쨍’한 맛이다. 어릴 적, 한겨울 김칫독에서 갓 꺼낸 김치에는 분명 그 맛이 있었다.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완벽했던 그 쨍한 김치 맛은 요즘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게 기막힌 김치 맛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요즘은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집이 드물다. 만들기 번거로운 데다 맛을 보장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로 잘 담근다고 해도 적당한 온도에서 2~3주나 잘 익혀야 하고, 시지 않도록 보관도 잘해야 한다. 김치는 온도가 높으면 시고, 낮으면 언다. 특히 김장김치는 겨우내 얼지 않게 잘 보관해야 한다. 지금도 쉽지 않은 이 어려운 일을 우리 선조들은 훌륭히 해냈다. 김치 맛을 지켜내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고안했으니 바로 땅에 묻는 것이었다.
♣ 김치 맛의 비밀,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김치 맛을 좌우하는 것이 유산균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산균은 영하 1℃에서 생장이 가장 활발하다고 한다. 따라서 영하 1℃에서 김치를 보관하면 유산균이 김치의 맛과 향을 제대로 돋워준다.
이러한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던 우리 선조들은 맛있는 김치를 먹기 위해 약 30cm 깊이로 땅을 파고 김칫독을 묻었다. 이 깊이에서는 늘 영하 1℃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김칫독을 묻고는 그 위에 움집을 짓기도 했는데 이를 김치광이라 한다.
김치광은 주로 경기도 지역에서 만들었다. ‘김치각’, ‘김치움’이라 부르기도 했던 김치광은 김치를 꺼내오기 편하도록 주로 부엌 뒤, 빗물이 스미지 않는 높은 지대에 만들었다.
김칫독을 묻고 그 위에 세 개의 장대를 세우고 이엉을 엮어 둘렀는데, 출입구는 찬바람이 직접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는 안을 바로 볼 수 없도록 작게 만들었다. 이렇듯 김치광은 적정 온도가 유지되고, 비와 눈을 막아주어 김치를 보관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었다.
물론 김치를 담은 김칫독도 김치 맛과 유지에 큰 몫을 했다. 바로 숨 쉬는 그릇 옹기가 산소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유산균이 살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러한 선조의 지혜는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김치냉장고가 옹기 김칫독과 김치광을 대신해 우리 곁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 옹기와 김치광의 지혜 담긴 김치냉장고
아파트가 일반화되기 전, 대부분의 주택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김장을 하고 난 뒤에는 김칫독을 땅에 묻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서울 강남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이후 아파트가 주거 공간의 주류가 되면서 장독대는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김치를 먹지 않을 수는 없는 일. 덕분에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전용저장고인 김치냉장고가 탄생하게 되었다. 김치냉장고는 옹기 김칫독과 김치광에서 핵심 원리를 따왔다.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를 통해 김치를 가장 맛있게 보관할 수 있는 영하 1℃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반 냉장고는 음식을 꺼내기 위해 수시로 여닫아 내부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다. 일반 냉장고의 냉장실 내부 온도는 평균 5℃다. 일반 냉장고는 문을 30분 열어두면 닫아두었을 때와의 온도 차가 20℃ 이상 나지만 같은 시간 김치냉장고의 경우는 2~5℃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렇듯 김치냉장고는 여닫을 때 온도 변화를 최대한 억제하도록 만들어졌다. 지금은 일반 냉장고처럼 생긴 김치냉장고가 흔하지만, 초창기엔 김칫독처럼 뚜껑을 위로 열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옆으로 열었을 때 대류 현상에 의한 온도 변화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다.
그 옛날 김칫독은 땅속에 묻혀 있고, 뚜껑이 위에 있어 열었을 때 공기 유입이 적었다. 덕분에 온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원리를 김치냉장고에 응용한 것이다.
일반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의 차이는 또 있다. 일반 냉장고는 냉기를 내뿜어 냉장하지만, 김치냉장고는 냉장실 자체를 차갑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하는 것이 냉장고 안의 온도를 조절하기에 더 쉽기 때문이다.
♣ 덕분에 오래도록 지켜질 김치 맛
선조의 지혜에 더해 오늘날 김치냉장고에는 더욱 놀라운 기술이 추가되었다. 김치의 숙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포 측정 센서를 장착해 김치의 숙성 정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최신 김치냉장고에는 더 많은 첨단 기술이 장착되고 있다.
냉기를 원활하게 순환시켜 공기 유입과 유출을 차단해 온도 편차를 줄이는 에어커튼, 김치 양과 온도를 24시간 감지해 최적의 김치 맛을 찾아주는 스마트 보관 기능에, 김치 종류에 따른 맞춤 숙성 모드에 이르기까지…. 이쯤 되면 앞으로 김치냉장고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김치냉장고 시장 규모는 연간 1조 7,000억 원이고, 판매 대수는 약 110만 대에 달한다고 한다.
비록 땅에 묻을 수는 없지만, 첨단 김칫독을 집안에 소장해 김치 맛을 즐기고 싶은 욕구는 쉽게 멈추지 않을 모양이다. 전통이 사라진다고 아쉬워들 하지만 다행히, 김치 맛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