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 물은 곧 신과도 같았다.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풍성한 수산물을 내어주는 동시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바다와 강은 언제나 외경의 대상이었다. 물이 용왕 또는 용신으로 불리며 섬김의 대상이 되었던 까닭이다.
이렇듯 물은 생명의 근원이었고, 농업과 어업이라는 주요 산업의 근간이었다. 특히 3면이 바다이며, 굵직한 강줄기가 국토를 가로지르는 우리나라는 물에서 다채로운 한식의 재료들을 건져 올린다.
♣ 신앙행위의 대상이자 매체인 물
인류가 원시적인 농업기술과 산업기술을 바탕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곳은 어김없이 큰 하천의 유역이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해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의 인도 문명, 중국 황하강의 황하 문명 등 세계의 4대 문명이 모두 그러하다. 인체가 생리적으로 물을 필요로 하고, 농경과 수렵에 있어 물은 필수불가결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도 대륙의 북방으로부터 한반도로 이주해오며 큰 하천 유역에 터전을 잡고 농경생활을 하거나,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어업에 종사했다. 농업과 어업 모두 물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었으니, 물은 자연스럽게 섬김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우리 어머니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맑은 물 한 사발, 즉 ‘정화수’를 떠 놓고 양손을 마주 대고 돌리듯 비비며 기도를 올렸다. 맑은 물은 그 자체로 신앙행위의 대상이었으며, 신령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매체이기도 했다. 또 깨끗한 물은 부정을 쫓거나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정화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정화수를 손가락 끝으로 세 번 흩뿌리는 주술적인 행위를 통해 가족에게 닥칠지도 모를 병이나 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개인적 치성의 정화수가 가족과 마을 단위로 확장된 것이 정월 세시풍속의 하나인 ‘우물제’, ‘용왕제’, ‘용왕먹이기’ 등으로 불리는 제의로 볼 수 있다. 우물제는 우물에 있는 용신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제의로 샘제 또는 용제라고도 불린다.
우물가에 음식을 차려놓고 물의 풍족함을 비롯해 풍농, 액막이, 무병장수 등을 기원하기 위해 가족이나 마을 단위로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해안 지역에서는 주로 바닷가에서 용왕제를 올리며 풍어를 기원하는 간절함이 더해진다.
♣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한반도의 어업
한반도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깊고도 너른 강줄기들이 국토를 가로지른다. 어업에 매우 적합한 자연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한반도로 이주한 우리 조상들은 하천 및 해안에 풍부한 어류 및 패조류를 주요한 식량으로 삼았을 것이다.
한반도 어업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이주한 역사와 그 기점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시기는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시대 이후로는 주로 연안 지역에 남아 있는 패총 즉, 당시 사람들이 버린 조개껍질과 기타 폐품으로 이뤄진 유적을 통해 당시의 어로 활동을 짐작해볼 수 있다. 패총에서 발견되는 패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대부분 오늘날에도 우리가 먹는 것들로 가장 많은 것은 굴과 대합이다.
신석기시대의 패총에서는 도미·삼치·대구·가오리·졸복·성게·따개비·고래·바다표범 등이 출토되었으며, 청동기시대의 패총에서는 명태·방어·상어·가자미·은어 등이 발견되었고, 초기 철기시대의 패총에서는 참돔·농어·다랑어·대구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넘치도록 다채로운 동·서·남해안
우리나라 국토의 면적은 약 1,000만ha이다. 세계에서 100위 정도로, 가장 넓은 러시아(약 17억ha)의 17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식재료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깊고도 너른 강줄기가 국토를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특히 동해, 서해, 남해는 서로 다른 특징으로 철마다 맛깔스러운 한식의 재료를 선사한다.
먼저 푸른 빛을 자랑하는 동해는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하지 않고 넓은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는 반면, 갯벌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남북 방향의 단조로운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섬이라고는 울릉도와 독도가 전부이다. 주요 어종은 꽁치·방어·삼치·고등어·정어리·대구·도루묵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오징어와 대게가 지역 특산물로 유명하다. 속초·주문진 등에서는 오징어와 관련된 축제가 열리며, 오징어 몸통에 소를 채워 익힌 오징어순대는 강원도의 별미다. 영덕·울진 등은 겨울철이면 대게를 맛보기 위해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명태도 동해에서 가장 흔한 대표 어종이었으나 해수온 상승 및 난류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인제, 대관령의 황태 덕장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러시아산 명태를 이용하지만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겨울철 얼고 녹기를 반복해 만들어지는 황태는 국산에 가깝다. 국, 조림, 양념구이 등의 요리에 사용되는 황태는 포슬포슬한 식감에 구수한 맛을 자랑한다.
서해는 들쭉날쭉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갖추고 있으며, 수심이 얕고 조류가 급해 바닷물이 항상 혼탁하여 ‘황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해의 가장 큰 특징은 갯벌이 잘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갯벌은 바닷가의 평편하고 물의 흐름이 완만한 곳에 물속의 퇴적물이 내려앉아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 갯벌에는 720여 종의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고 있어 자연의 보물창고라 일컫는다. 갯벌을 들추기만 하면 조개, 낙지 등의 먹거리가 쏟아지니 수산물 창고라 해도 손색이 없다.
서해는 민어·전갱이·멸치·광어·삼치·도미 등 많은 온대성 어종들이 산란을 하고 성장하는 바다로 해양 생물의 좋은 번식장 역할을 맡고 있다. 또 넓은 대륙붕의 영향으로 참조개·백합·홍합·전복·키조개·피조개·바지락·가리비 등 패류의 훌륭한 서식처가 되어준다.
낙지, 주꾸미, 꽃게, 대하 등은 철마다 서해안을 붐비게 한다. 매년 봄이면 서천군에서는 주꾸미축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홍성, 태안 등지에서 대하축제가 열린다. 논산 강경은 새우젓, 황석어젓, 까나리액젓 등 서해의 풍성한 해산물을 활용한 젓갈로 유명하다.
남해는 서해와 유사하게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전국 총도서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섬이 많은 다도해이다. 연중 난류가 흘러 수온이 알맞아 우리나라에서 양식업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해의 주요 어종은 멸치와 갈치인데, 멸치는 진해 앞 바다를 중심으로 남해안 전역에서 어획되고 있다. 이 밖에 많이 잡히는 어종으로는 전갱이·고등어·상어·도미·방어·가자미·삼치·조기·광어·숭어·복어·문어·오징어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남해안에서의 양식업은 굴·조개·홍합 등의 패류와 김·미역·다시마 등의 해조류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굴과 김이 유명한데, 굴은 통영을 중심으로 거제·진해 등에 이르는 청정수역에서 양식되며, 김은 완도와 고흥을 중심으로 양식이 성행하고 있다.
♣ 강물에서 길어 올리는 별미들
우리나라의 하천은 현재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유역으로 크게 구분·관리되고 있다. 각각의 도도한 물줄기들은 골짜기를 따라 꺾이고 휘어지며 기름진 땅을 품고,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을 품는다. 바다와는 다른 향과 맛의 먹거리 또한 길러내 민물의 풋풋한 향을 전해준다.
강 하구에 서식하는 참게는 주로 게장을 담그거나 매운탕을 끓여 먹고, 충청도 지역에서는 올갱이, 남쪽 지방에서 대사리라 불리는 다슬기는 해장국, 전, 수제비 등으로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한강과 임진강에서 많이 잡히는 황복은 회, 복국, 튀김 등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특히 황복의 독성은 청산가리보다 10배 이상 강해 반드시 전문가가 조리해야 하지만, 그 맛이 어찌나 좋은지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금강이 흐르는 옥천, 무주, 금산 등은 손가락만한 잡어들로 만든 생선국수, 도리뱅뱅이, 생선튀김 등이 유명하다. 무더운 날이면 농사일을 마치고 물가로 고기잡이를 나섰던 천렵 문화에서 비롯된 음식들이다. 섬진강은 강굴, 재첩, 은어 등이 철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강굴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서 자라는데, 서너 개가 한데 모여 자라는 모습이 물속에 핀 벚꽃과 같다 하여 벚굴이라 불린다. 봄철 별미로 손꼽히며, 손바닥만한 거대한 크기에 비린 맛이 적어 인기다.
재첩은 간 해독작용을 하는 타우린이 들어 있어 해장국으로 많이 먹는다. 예부터 임금님께 올리는 주요 진상품 중에 하나였던 은어는 여름이 제철이다.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여 회, 튀김, 구이 등의 요리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