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기간이면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손길은 항상 분주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의 눈길을 피해 곶감을 슬쩍 손으로 짚다가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곶감의 다디단 맛은 유년 시절을 따뜻하게 품어줬다. 제사음식은 물론 주전부리로도 사람들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았기에, 곶감은 ‘달콤한 속담’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
전래동화 속 곶감은 달콤함의 대명사였다. 어둑한 밤, 어슬렁거리며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 호랑이는 한 집에서 발길을 멈춘다. 아이가 정신없이 울어댄다.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호랑이가 ‘어흥’ 한다면서 겁을 주지만 별 효과가 없다.
반면 곶감을 주겠다는 말에는 울음을 뚝 그친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호랑이도 곶감만큼은 당해낼 수 없었던 셈이다.
곶감은 생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과일로, 수분이 많아 잘 썩기 쉬운 감을 선조들이 오랫동안 두고 먹기 위해 만들어진 보존식품이다. ‘건시’라고도 부르며, 과당과 포도당 등의 당류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매우 달다는 특징이 있다.
선조들은 곶감을 주전부리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제사에도 올릴 정도로 아꼈다. 감에는 껍질이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이 있다. 곶감용으로는 껍질이 얇고 육질이 치밀하며 당분이 많은 봉옥·미농 등의 품종이 좋다. 그리고 완숙하기 전에 채취한 떫은 감을 주로 사용한다.
곶감은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는 1682년(숙종 8년) 중국에 보내는 예물 목록에 곶감이 포함된 점, 19세기 초 문헌 <주영편>에 종묘제사에 바치는 계절 식료품 중 하나로 기록된 점을 볼 때 조선 시대에 많이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1809년(순조 9년) 만들어진 조리서 <규합총서>에는 곶감 만드는 법이 소개되고 있으며, 이 방법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생감의 껍질을 얇게 벗겨낸 뒤 꼬챙이에 꿰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매달아 말린다. 수분이 3분의 1 정도만 남아 있을 때 속의 씨를 빼내고 손질해 다시 말린다.
손질한 곶감을 볏짚에 싸서 상자에 늘어놓고 밀폐된 상태로 두면 감이 완전히 건조되면서 표면에 포도당의 흰 가루가 생기는데, 곶감의 표면이 하얗게 변하면 곶감을 다시 말려 상자에 넣고 밀폐해둔다. 그러면 우리에게 익숙한 달콤한 곶감이 완성된다. 곶감은 이렇듯 만드는 방법에서 유래해 만들어진 단어다.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이란 뜻으로 ‘꽂다’의 옛말인 ‘곶다’와 감이 합쳐졌다.
중국 명나라 때의 약학서 <본초강목>에서는 곶감을 두고 ‘체력을 보하고 위장을 튼튼히 하며 배 속에 고여 있는 나쁜 피를 없애준다. 기침과 가래를 삭이고 각혈을 멈추게 하며 목을 편안하게 해준다. 곶감을 식초에 담근 즙은 벌레에 물린 데 효과가 있다’고 기록한다.
이렇듯 곶감은 달콤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고 탄닌 성분이 있어 설사 치료도 효과적이다. 고혈압 예방은 물론 기관지에도 좋다.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각종 질병과 감기 예방에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 달콤해서 그리 좋으냐
곶감은 과육에 탄력이 있고 당도가 높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그 때문인지 속담에서도 그 달콤한 맛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은 앞서 언급했듯 전래동화의 영향으로 널리 알려진 속담이다.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무서운 호랑이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은 곶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면 한결 이해하기 쉽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 꼬치에 꽂아서 처마 밑에 걸어두고 수십 일 동안 말리는 등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곶감을 야금야금 먹어버리면 겨우내 먹어야 할 간식이 다 사라져버린다. 이렇듯 위 속담은 애써 알뜰히 모아둔 재산을 실속 없이 써서 없앤다는 뜻이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라는 속담에서 곶감은 얼핏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이는 앞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당장 좋은 것(곶감)만 먼저 취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른다. 그러니까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처럼 당장 눈앞에 있는 곶감을 다 먹어 치우지 말라는 뜻이다.
‘곶감 죽을 먹고 엿목판에 엎드러졌다’는 새해 속담으로 알려져 있다. 엿목판은 엿을 담는 속이 얕은 목판을 이르는 것으로, 달콤한 곶감으로 만든 죽을 먹은 사람이 또다시 엿목판에 엎어져서 달콤한 엿 맛을 본다는 뜻이다. 즉, 잇따라 먹을 복이 쏟아지거나 연달아 좋은 수가 생길 거라는 새해 덕담과도 같은 속담이다.
‘곶감이 접 반이라도 입이 쓰다’는 맛있는 곶감이 접시의 반이나 있는데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으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를 이르는 속담이다. 제아무리 맛난 곶감이 눈앞에 있더라도 기분이 안 좋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곶감죽을 쑤어먹었나’는 당연히 곶감죽과 관련이 있다. 곶감죽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감기 예방에도 좋다고 해서 선조들이 즐겨 만들었던 요리다. 1460년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의서 <식료찬요>에도 곶감은 일상에 쉽게 찾을 수 있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곶감죽은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달콤한 맛도 일품이다. 그러니까 위 속담은 달콤한 곶감으로 죽을 쑤어 먹어 기분이 좋아진 사람이 실없이 웃자, ‘그리 좋으냐’며 핀잔하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