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램프쿡 로고
    • 검색검색창 도움말
  •   
  • 한식 & 제철음식

  • SNS 공유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카카오스토리 카카오톡
  • 이전페이지
  • 목차
  • 다음페이지
  • Chapter 5. 먹거리 이야기
  • 이동

h2mark 음식을 익히는 가장 오래된 조리법, 구이와 숯불구이 & 떡갈비

음식을 익히는 가장 오래된 조리법, 구이와 숯불구이 & 떡갈비

불은 인류의 생활양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화산의 폭발이나 벼락으로 인해 불이 나면 두려움이 앞섰을 테지만, 우리 선조들은 점차 불의 놀라운 쓸모를 깨달았다. 따뜻한 불로 추위를 이겨냈고, 불을 밝혀 어둠과 사나운 짐승을 물리칠 수 있었다. 불은 식문화에서도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된 것이다.

♣ 인류, 불로 익힌 음식을 맛보다

우연히 불에 그을린 고기를 맛본 우리 선조들은 눈이 번쩍 떠졌을 것이다. 날것으로 먹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식감에 맛과 향까지 좋았다. 그렇게 불씨를 가져와 불을 피우고 고기를 비롯한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익히는 가장 오래된 조리법인 ‘구이’가 탄생한 것이다.

음식을 익혀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맛에 국한된 영역이 아니라 인류의 발달과 깊게 연관돼 있다. 음식을 불로 익혀 먹음(화식)으로써 인류는 병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동시에 더 많은 육식을 할 수 있게 됐다.

소화가 잘되니 영양분의 섭취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뇌용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며 인간은 보다 고차원적인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족보행, 도구의 사용 등을 인간의 특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부 영장류들도 두 발로 걷고,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하지만 화식을 하는 영장류는 인류가 유일하다. 과학자들이 화식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영장류들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곱창 구이

♣ 소중한 도구이자 신앙의 대상

우리 조상들은 불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며 더 나아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불씨는 절 때 꺼트려서는 안 되는 집안의 보물이었으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종가에서는 그 집의 맏아들이 분가할 때 이사하는 새집에 불씨 화로를 들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요즘에는 드물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이사나 개업을 할 때면 손님들이 성냥을 선물하곤 했는데, 불씨와 관련된 풍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통닭 구이

불은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솥을 걸 수 있도록 아궁이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턱인 부뚜막은 불을 다루는 곳이니만큼 부엌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 누구도 부뚜막에 걸터앉지 못하게 했고, 부뚜막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주부의 미덕으로 여겼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부뚜막에 부엌을 지키는 신인 조왕신을 모셨다. 부뚜막에 물을 담은 종지를 놓아 조왕신을 섬기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조왕보시기’ 또는 ‘조왕중발’이라 한다. 강원도 화전민촌에서는 부뚜막에 불씨를 보호하는 곳인 ‘화투’ 또는 ‘화티’를 만들어두기도 했다.

또 불을 담당하는 조왕신은 더러움을 씻어주는 정화의 신통력이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먼 여행에서 돌아오거나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들은 부정한 것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먼저 부엌에 들렸다 나오곤 했다.

생선 구이

♣ 구워 먹는 즐거움의 발달사

인류가 불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구이’는 여러 조리법 가운데 가장 일찍부터 발달된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냥과 수렵을 통해 얻어진 재료를 통으로 구워 먹기 시작했고, 이후 불에 돌을 올려놓아 달궈지면 그 위에 물고기나 짐승의 고기 또는 나무 열매 등을 얹어서 구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 소·돼지·닭·양·염소·오리 등의 가축을 기른 기록이 있고, 3~4세기 즈음 배를 만드는 기술이 향상되어 큰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되어 보다 다양한 육류를 구워서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의 유입으로 살생을 금하면서 육식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이러한 풍조는 불교문화가 융성한 고려시대에 이르러 더욱 강화되면서 육식은 점차 쇠퇴하기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상황이 반전된다. 숭유억불정책이 실시되며 다도의 문화에서 주안상의 문화로 바뀌었고, 다시금 구이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굽는 방법도 다양해진다.

조선 영조 때 유학자 유중림이 홍만선의 농업서인 <산림경제>를 증보하여 편찬한 <증보산림경제>에는 기름·간장·소금·파·후추 등을 밀가루죽에 섞어서 고기에 바른 다음 꼬치에 꽂아서 불꽃이 삭은 불 위에서 익혀 밀가루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 구이법이 소개되어 있다.

또 빙허각 이씨가 순조 때 가정 살림에 관해 저술한 조리서인 <규합총서>에는 고기를 익히다가 냉수에 잠깐씩 적셔서 다시 굽거나, 고기에 진흙을 발라 굽는 구이법 등이 소개돼 있다.

조선 후기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고기를 한지나 진흙으로 싸서 굽는 방법 그리고 송이버섯을 굴참나무 잎이나 박 잎으로 싼 후 진흙을 덧발라서 굽는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북어 구이
■ 뜨겁게 소중한 맛과 멋 ‘숯불구이’

고기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아무래도 개중에 으뜸은 구워 먹는 것이 아닐까. 굽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뭐니 뭐니 해도 숯불에 굽는 것이 최고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이 기막힌 맛을 발견했을까. 숯불구이와 숯의 내력을 따라가 본다.

♣ 숯불에 담긴 풍류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눈과 귀, 코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이 모습을 보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군침이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조선 후기 조수삼이 쓴 <추재집>에는,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이 되면 임금 앞에서 단향회를 열고, 불을 피워 설야멱을 먹는다고 했다. 단향회는 박달나무로 화로에 불을 지핀 것이고, 설야멱은 대나무에 쇠고기를 끼워 굽는 일종의 꼬치구이라고 했다.

설야멱은 설하멱, 설하멱적이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 눈 아래서 혹은 눈 오는 밤 찾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에는 전해오는 고사가 있는데, 송나라 태조가 눈 내리는 밤에 조보의 집을 찾아 주안상을 차려 놓고 국사를 논했던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이 어떠하건, 설야멱은 이름처럼 눈 오는 밤에 어울리는 음식인 듯싶다. 창밖에 눈이 날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 고기를 굽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풍류가 느껴지지 않나. 이는 박지원이 <연암집> ‘만휴당기’에 남긴 글로도 확인할 수 있다.

숯불 고기 구이

“눈 내리는 날, 김공 술부 씨와 함께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난로회를 했는데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 고기 굽는 냄새가 온몸에 배었다. 공이 북쪽 창문으로 가서 부채를 부치며 맑고 시원한 곳이 있으니 신선이 사는 곳이 멀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난로회’는 <동국세시기> 10월(음력) 조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한양풍속으로 숯불을 지핀 화로를 가운데 놓고 번철(솥뚜껑처럼 생긴 둥글고 넓적한 무쇠그릇)을 올려 쇠고기에 기름,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로 조미하여 굽거나 볶아서 둘러앉아 먹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고기 굽는 실력은 예로부터 널리 유명세를 떨친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 “고려가 원나라에 장가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해마다 탐라의 쇠고기를 원나라에 보냈는데 고기뿐만 아니라 고기를 굽는 사람 역시 고려인이었다”고 적고 있다.

고기 굽는 숯불

♣ 숯불로 구워야 제맛인 이유

고기는 프라이팬에 올려 가스불로, 요즘 흔히 쓰는 인덕션으로도 구울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숯불에 굽는 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뭘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전도열, 복사열, 대류열을 떠올려야 한다. 이중 전도열은 프라이팬으로 고기를 굽는 경우에 해당한다.

직접적인 열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프라이팬을 통해 전달되는 열로 고기가 조리되는 것. 이렇게 고기를 구우면 열이 겉부터 속까지 전달되는 시간이 길어 육즙이 빠져나가 아무래도 맛이 덜할 수밖에 없다.

반면 숯불에 고기를 굽는 것은 복사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름날 창가에서 햇볕을 쬐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떠올리면 쉽다. 직접 열을 쬐어 익히는 경우 중에서도 숯불구이가 더 맛있는 것은 숯불이 열과 원적외선을 사방으로 방사하며 순식간에 고기를 익히기 때문이다.

숯은 가스가 탈 때보다 훨씬 높은 온도를 낸다. 이렇게 높은 온도 덕분에 고기 표면을 빠르게 익혀 육즙을 가두는 효과를 내고 결과적으로 고기의 맛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숯불구이가 좋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힘을 조금 더 빌면 훨씬 좋은 맛을 낼 수 있는데, 숯의 양은 많이, 숯불과 고기의 거리를 최대한 짧게 해 강한 불로 익혀야 육즙이 더 풍부해진다니 기억해 두자.

숯불구이의 맛에는 특유의 향도 한몫을 한다. 그런데 이 향은 숯의 향이 아니라 재료가 지닌 휘발성 성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기를 숯불 위에서 익히면 육즙이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지방과 기름, 당분, 단백질 등이 가득 들어있는데, 이들이 기화해 다시 고기 표면에 붙어 특유의 향을 만드는 것이다.

고기를 달궈진 숯불 위에 얹으면 “치이~”하는 소리를 내며 연기와 향이 피어오른다. 이렇듯 향을 입어 숯불구이는 더욱 맛이 나지만 문제는 이때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도 함께 생겨난다는 점.

그래서 숯불구이를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리처럼 고기가 주식이 아니고, 매일 상당량의 숯불구이를 먹는 것은 아니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돼지고기 숯불구이

♣ 태초에 숯이 있었다

숯은 나무를 숯가마에 넣어 구워낸 연료를 일컫는다. ‘연료’로 정의되어 있지만, 한때 숯이 생활 전반에서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공기정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집 구석구석에 숯을 장식하고, 몸의 노폐물 제거에 좋다고 해 먹기도 했다. 유행이 조금 지났다 싶을 뿐 이러한 숯의 효능은 변함이 없다. 그만큼 숯은 고맙고 소중한 존재다.

숯은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이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600년 전부터 숯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숯은 한번 얻은 불씨를 보관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그 옛날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3대를 이어오는 불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숯불 보관은 한 가문의 품격을 상징하기도 했다. 불씨가 꺼져 옆집에 빌리러 가는 것이 일종의 수치였을 정도다.

숯은 흑탄과 백탄 두 종류로 나뉜다. 흑탄은 600∼700℃로 정련한 뒤 숯가마 안에 이삼일 두었다가 100℃ 정도 됐을 때 꺼낸 것이고, 백탄은 800∼1300℃의 높은 온도로 정련한 뒤 꺼내 흙·재·탄불을 혼합한 '소분'을 덮어 빠른 속도로 불기를 꺼버린 것이다. 이렇듯 숯은 만드는 데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음식점에서는 정통 숯보다 압축탄을 많이 사용해 아쉽지만 그렇다고 숯불구이를 포기할 순 없다. 이 겨울, 우리 조상들처럼 눈 내리는 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숯불구이로 풍류를 즐겨보면 어떨까. 고기를 굽지 않아도, 한적한 곳으로 캠핑을 떠나 즐기는 숯불 ‘불멍’이라면 더 좋을 듯.

삼겹살 숯불구이
■ 누구나 쉽게 즐기는 마음이 담긴 ‘떡갈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인 떡갈비는 지역에 따라 재료나 모양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음식으로 통한다. 조선 후기만 하더라도 왕을 위해 만든 궁중 음식이었다고 전해지나 최근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떡갈비는 언제 생겨났고, 왜 이름에 떡과 갈비가 들어갈까. 떡갈비를 둘러싼 이야기를 만나본다.

♣ 궁중 음식에서 향토 음식으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떡갈비를 ‘갈빗살을 다져서 양념한 후 갈비뼈에 얹어 구운 요리’라고 정의 내린다. ‘갈빗살을 다져서 양념한 후’와 ‘구운 요리’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갈비뼈에 얹어’라는 말에는 다소 의아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떡갈비에 뼈가 있었던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거에는 그랬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떡갈비의 유래와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기를 손질해 떡처럼 모양을 만들어 구워 먹는 떡갈비는 전라남도 담양과 해남, 강진 등지에서 발달한 향토 음식의 일종이다. 갈비는 뼈를 뜯어 살을 발라내야 하는 만큼 치아 건강이 좋지 않은 이에게는 부담스럽다. 반면 떡갈비는 곱게 다져서 부드럽기에 어린아이나 노년층도 손쉽게 먹을 수 있다.

‘떡갈비’란 이름은 고기를 떡처럼 뭉쳐서 만든다고 해 이름 붙여진 것으로 1960년대 후반 등장했고, 조선시대에는 ‘효갈비’ 또는 ‘노갈비’라고 불렸다. 치아가 약해 갈비뼈를 뜯어먹을 수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갈비 요리라는 뜻이다.

고구려인이 먹었다던 맥적(돼지고기를 된장 양념에 재운 뒤 구워 만든 전통 요리)이 문헌학적 조상이라는 설도 있으나 실제 떡갈비 레시피와는 차이가 있다. 떡갈비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조선시대 궁중 음식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왕실 사람들이 먹기 편하도록 소고기를 잘게 다져서 양념해 구워 먹었다는 것이다. 조선은 왕정 시대였고 계급에 따라 사람이 구별됐다. 고된 노동을 하는 서민들과 달리 왕과 왕실 사람들은 거동조차 드물었다. 운동량이 적으니 질긴 고기를 소화하기 어려웠을 테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진 떡갈비라는 설이다.

떡갈비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것은 구한말이다. 궁내부에서 궁중요리를 담당하던 안순환이라는 사람이 1909년경 명월관이라는 요릿집을 열었고, 그 밖에 궁내부의 나인들이 1911년 출궁하면서 대중을 상대로 한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떡갈비는 궁중의 음식을 넘어 대중의 음식이 됐다고 한다.

지역별 떡갈비의 다양한 매력

♣ 지역별 떡갈비의 다양한 매력

대중에게 전파된 떡갈비는 현재 경기도 떡갈비와 담양 떡갈비, 송정 떡갈비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경기도 떡갈비는 1911년 궁궐에서 해직된 나인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궁에서 배운 음식을 만들어 판 데서 유래한다. 대표적으로 의정부 떡갈비가 있는데 돼지갈비를 사용하며, 시루떡처럼 네모지고 납작하게 모양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담양 떡갈비는 조선시대 유배돼 내려온 양반들의 영향으로 전파됐다는 설이 있다. 노송당 송희경(1376~1445)이 1404년 담양에 유배돼 체류하던 때에 전해졌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궁중 떡갈비처럼 소고기만을 사용해 고기를 다진 후 동그랗고 두툼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본래 국어사전의 정의처럼 소 갈빗대에 붙여 만드는 방식이 전통적이라 볼 수 있으나, 최근에는 갈빗대를 제거하고 고기로만 만들어진 담양 떡갈비도 흔히 볼 수 있다. 두꺼운 정육면체 모양으로 소고기의 쫀득한 맛과 식감을 살리는 것이 특징인데, 잡고기는 섞지 않고 갈빗대에서 떼어낸 고기만 다져서 만든다.

한우만 사용하는 데다 고기 손질을 수작업으로 하기에 다른 지역의 떡갈비에 비해 가격대가 높게 형성돼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2000년대 이후로는 돼지고기를 사용한 떡갈비도 판매되고 있다.

송정 떡갈비는 현재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절반씩 섞어서 만들기에 가격 경쟁력이 좋다. 갈빗대는 사용하지 않으며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조화, 양념과 숯불의 향이 어우러져 독특한 식감을 선사해준다.

광주의 오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송정 떡갈비는 1950년대 한 할머니가 송정시장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기원으로 전해진다.

송정시장에는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어 고기를 구하기 쉬웠다. 고기에다 배, 다시마, 꿀 등 20여 가지의 재료를 넣어 맨손으로 오랫동안 버무려 자연스럽게 양념 맛이 배어들도록 만든다. 숯불에 굽는 동안에도 특제 소스를 발라가며 천천히 굽는다.

재료나 모양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온 세상 떡갈비에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 담겨 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나이가 들었든, 치아 상태가 좋든 아니든 간에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모두를 품는 그 넉넉함이 떡갈비의 맛과 향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h2mark 더 보기

No. 제목 보기
1 채식 레시피로 각광 받는 사찰 음식 바로가기
2 한식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추앙’해주세요! 바로가기
3 고려인삼이 다시금 세계 속에 우뚝 서려면 바로가기
4 무더위를 이겨내는 한여름의 얼음 바로가기
5 한식을 품고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흙 바로가기
6 보물처럼 귀한 얼음을 지키다, 석빙고 바로가기
7 곡식을 여물게 하고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 햇볕 바로가기
8 달콤해서 ‘좋은 것’의 대명사, 곶감 바로가기
9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김’인 걸 바로가기
10 바람이라는 요리사가 만들어내는 한식의 재료들 바로가기
11 수분은 날리고, 맛과 영양은 올리고 ‘건조의 기술’ 바로가기
12 생명의 근원이자, 한식의 바탕인 물 바로가기
13 바람으로 깊어지는 바다의 맛 3선 바로가기
14 황태가 되기까지, 명태의 여정 바로가기
15 찰지고 윤기가 좔좔! 밥맛 좋은 우리 쌀 품종 바로가기
16 김치에 담긴 영양학 이야기 바로가기
17 땅속에서 나와 주방까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김치 과학’ 바로가기
18 눈꽃 같은 소금, 빛나고 소중해 바로가기
19 새우젓 중에 으뜸! 토굴 새우젓의 고장 ‘광천읍 독배마을’ 바로가기
20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젓갈, 새우젓 이야기 바로가기
21 반찬으로 제격, 짭조름한 별미 젓갈 3선 바로가기
22 4,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건강 별식, 떡과 도구 & 풍속, 속담 바로가기
23 음식을 익히는 가장 오래된 조리법, 구이와 숯불구이 & 떡갈비 -
24 평범함을 거부하는 독특한 구이 요리 바로가기
25 수원 왕갈비에서 LA갈비까지 ‘가리구이’의 맛깔스러운 여정 바로가기
26 채소라고 다 같은 채소가 아니랍니다. 영양 많은 뿌리채소와 더덕 이야기 바로가기
27 저 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네, 산은 풍요로운 한식의 대지 바로가기
  • 이전페이지
  • 목차
  • 다음페이지
  • 자료출처 •한식진흥원 •농촌진흥청 •농사로
  • 자료출처 바로가기

향토음식 한반도통합본 후원금 모금안내 향토음식 한반도통합본 후원금 모금안내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