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속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김치의 재료를 선택하고 쓰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계절에 맞게 그 맛과 여운을 담으려는 정성이 담겨있다.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농업 백과전서 《임원경제지》를 저술한 서유구 선생의 요리백과사전 <정조지> 속에는 이것도 김치가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서 시작해 김치의 범주를 어디까지 잡을까 하는 고민이 담겨있다. <정조지> 속 김치를 만들어 보며 인간을 위한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겨보자.
엄장채(醃藏菜)는 《임원경제지》<정조지> 제4권 채소음식 중 첫 번째 항목에 해당한다.
서유구 선생은 자신의 저서인 《옹치잡지》에서 인용하여 엄장채편의 기사인 총론편을 시작으로 엄장채 편을 기술하고 있는데, 엄장채는 김치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주옹의 봄 올 부추와 가을 늦 배추는 맛있기도 하다! 그러나 동산의 초목이 마르면 그치니 이 때문에 엄장법이 있게 되었다.” 서유구의 《옹치잡지》
엄장채는 말 그대로 나물(채소)를 절여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절일 때는 소금, 술지게미, 향료 등을 사용한다. 소금에만 절이거나 소금과 술지게미를 같이해서 버무리고 여기에 감초・시라・회향 같은 향료가 들어가기도 한다.
채과나 마늘, 가지에 석회나 백반가루를 넣어 맵고 아린 맛을 빼주고 독성도 없애주며 색도 안정화시킨다. 술지게미가 가진 향미와 보존성을 이용해서 다양한 저장 반찬을 만들었고 재료가 가진 독성을 법제하는 방법이 빼어났다.
상추 100 뿌리에 소금 1.4근을 넣고 하룻밤에 절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볕에 말려 거둔 뒤, 원래의 소금물을 끓여 식혀서 다시 상추를 넣고 볕에 말려 단지 안에 거둔다. 따로 매괴(해당화)를 써서 사이사이에 섞어 한 단지에 같이 쟁여놓으면 그 맛이 더욱 좋고 향기롭다.《다능집》
우리는 주로 상추 잎만을 먹고 상추 대는 잘 먹지 않는다. 한 세대 전만해도 상추는 대궁이 올라오면 겉껍질을 벗겨 잎과 함께 김치를 담가 먹거나 회로 먹었다.
상추 뿌리는 땅속에 버려지기 마련인데 상추 뿌리까지 절여 김치를 담가 먹었다. 상추 뿌리는 가늘고 연약한 대신에 질긴 특성이 있다. 뿌리에 벤 짠맛과 쓴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같이 넣어준 해당화의 향이 그윽하다.
상추의 여린 풀빛과 해당화 꽃잎의 붉은 색이 어우러져 눈으로 먹고 향으로 즐기는 김치가 아닌가 싶다. 쓴맛이 감춰진 상추 뿌리에 단맛이 감도는 상추 잎, 해당화의 향과 빛을 더해준 멋스런 김치다.
♣ 재료 및 분량
상추 뿌리 100개, 소금 525g, 해당화 20송이
♣ 만드는 법
1. 상추 뿌리 100개에 소금 525g을 넣고 하룻밤에 절인다.
2. 절인 상추 뿌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볕에 말리고 단지에 넣은 후 소금물을 끓이고 다시 식혀서 붓는다.
3. 상추 뿌리를 햇볕에 말리고 다시 소금물에 넣기를 2~3번 반복한다.
4. 해당화를 사이사이에 넣으면 맛이 더욱 좋고 향기롭다.
♣ 팁 & 참고
상추 뿌리의 유효성분을 취할 수 있는 김치로 쓴맛이 싫으면 쌀뜨물에 담가 쓴맛을 뺀 후 김치를 담근다.
4월에 누에를 발에 올릴 때 곰취 잎을 따서 깨지고 상한 것은 제거하고 정하고 좋은 것을 택하여 여러 겹을 포갠 뒤, 약간의 물에 담가 표주박 안에서 갈아 그 즙을 다 뺀다.
이를 항아리에 넣고 돌고 누른 뒤 물을 부어 잠기게 하되, 물이 잎 위에 오도록 한다. 겨울이 되어 꺼내면 색이 누렇고 연하여, 밥을 싸서 먹으면 매우 좋다.《산림경제보》
소금을 넣지 않은 곰취 잎을 문질러 연화시켜서 물만 붓고 돌로 눌러 숙성시킨 형태다.
잎이 다소 억세 국을 끓이거나 저장 채소를 만들 때 쓰는 방법인데 표주박에 문질러서 풋내를 제거하고 억센 줄기를 먹기 좋게 만들었다. 쇤 채소도 버리지 않고 반찬으로 만드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 재료 및 분량
곰취 100장, 물 5컵
♣ 만드는 법
1. 깨끗한 곰취 잎을 골라 씻는다.
2. 물기를 빼두었다가 여러 겹을 포개서 물을 조금 붓고 표주박 안에 문질러 즙을 뺀다.
3. 잎이 부드러워지면 항아리에 넣고 돌로 누른 뒤 물을 부어 잠기게 한다.
4. 겨울이 돼서 잎이 누래지면 꺼내 밥을 싸먹는다.
제채(薺菜)는 <정조지> 제4권 채소음식 중 다섯 번째 항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유구 선생은 “제(薺)와 자는 동류이나 자(鮓)는 소금과 쌀로 삭혀 이룬 것일 뿐이고 제는 젓갈, 장, 생강, 마늘의 일체의 짜고 매운 것으로… 이것이 그 다른 점이다”라고 서술했다.
자체(鮓菜)가 ‘발효’를 특징으로 한다면, 제채편에 이르러 비로소 오늘의 김치와 유사하게 소금, 장, 생강, 마늘과 짜고 매운 것들을 넣는다.
동아를 항아리 삼아 담근 김치, 해즙동과방 서리가 내린 후에 큰 동아를 취하여 꼭지 주위를 반지름 1촌 정도 되도록 동그랗게 도려내되 껍질이 상하지 않게 한다.
다시 칼로 속과 씨를 파낸 뒤, 젓갈 즙 1큰 사발을 달여 동아의 배 속에 부어 넣고 다시 생강산초볶은 참깨 등의 재료를 넣는다. 도려냈던 꼭지 쪽 껍질을 원래의 흔적에 따라 도로 뚜껑을 닫아 꼬챙이로 꿰어 고정시킨 뒤,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곳에 내어 둔다.
젓갈즙이 동아 살 속에 다 배어 들어가면 칼로 잘라 먹는데 크기는 마음 가는 대로 한다. 《옹치잡지》
큰 과채류의 속을 파내고 속에 양념을 넣어 절여 먹는 재미있는 방식의 김치다. 지금은 동아를 보기도 힘들지만 조선시대에는 김치를 담그거나 정과를 만드는 등 식재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동아는 박과의 식물로 90% 이상이 수분이라 칼로리가 낮다.
몸을 차게 하는 식품이므로 몸이 찬 사람은 익혀서 먹으면 좋다. 아삭하고 연하면서 수분이 많아 김치로 담가 먹으면 시원한 맛이 있다.
♣ 재료 및 분량
동아 1개(3kg) , 소금물 400ml, 생강채 1/2 큰술, 산초 1/2큰술, 볶은 참깨 적당량, 조기젓갈 즙 2컵
♣ 만드는 법
1. 동아는 겉면을 잘 씻은 후 꼭지 주변을 적당한 크기로 도려내서 속을 파낸다.
2. 소금물을 소금과 물의 비율을 1:6으로 해서 동아 크기에 맞춰 붓는다.
3. 젓갈 즙을 준비해 함께 붓고 생강, 산초, 볶은 참깨를 넣는다.
4. 꼭지를 닫아 상온에 둔다.
5. 젓갈 즙이 동아 속에 배면 잘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