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여름이 되면, 가을이 되면, 겨울이 되면 딱 생각나는 요리가 있다. 제철에 나는 음식재료로 밥상을 차려온 한식에는 이렇게 계절의 맛이 담긴다.
특정 계절에만 나던 음식재료가 지금에서는 계절과 관계없이 나고 있어 제철의 의미가 축소됐지만, 그래도 봄에, 여름에, 가을에, 겨울에 입맛을 동하게 만드는 제철음식의 맛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먹는 이의 건강을 위하는 마음과 배려.’ 한식에 담긴 약식동원(藥食同源), 식치(食治), 약선(藥膳)의 개념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이러한 마음과 뜻과 정성이 담긴다. 제철 영양을 꽉 채운 신선한 제철 음식재료는 이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담는 출발점이다. 한식의 건강한 맛에 계절의 맛이 담기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 계절의 특산식품으로 만들거나 또는 상용 식품을 계절의 변화에 맞춰서 먹는 시식(時食) 풍속이 있다. 시식 풍속이 생겨난 데는 농자천하지대본을 근간으로 해 온 생활환경과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농경 생활은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게 만들었고, 이 민감성은 계절마다 다르게 나는 음식재료의 변화에도 주목하게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제철 음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고, 이것이 결국 계절마다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특유의 식생활 풍속으로 연결됐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시식 풍속은 《동국세시기》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각 계절에 나는 제철 음식재료로 만든 음식, 술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동국세시기》에서는 여름철 시식으로 닭 국물에 애호박을 넣고 끓인 칼국수, 애호박을 채 썰어 넣고 기름에 얇게 지진 밀전병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름은 애호박이 가장 맛이 좋을 때이다.
각 계절의 식감과 향과 색감을 간직한 싱싱하고 신선한 제철 음식재료는 곧 그 계절 밥상의 맛이자 멋이다. 계절이 변화하면 달라지는 우리네 밥상 풍경이 한식의 다채로움을 형성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단순히 철마다 달리 나는 음식재료로 다양한 계절 음식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제철 음식재료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조리법을 발굴했는데, 한 가지 음식재료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냈다.
이를테면 여름이 제철인 애호박은 밥, 죽, 탕, 찌개, 숙채, 볶음, 구이, 전, 조림, 찜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다양한 여름의 맛을 내며, 상추는 쌈채소로서는 물론 겉절이, 김치, 장아찌 등으로도 먹을 수 있다.
또 제철이 아닌 계절에도 즐길 수 있는 보관법·저장법도 개발했으며, 이는 발효, 절임, 말랭이 등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한식의 개성, 고유성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어떤 음식재료의 영양이 최고조에 이루는 때, 그때가 바로 그 음식재료의 제철이다. 사계절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철철이 달라지는 음식재료에는 각 계절에 필요한 영양이 담겼고, 이 음식재료로 만들어지는 제철음식은 곧 건강식 그 자체였다.
그 계절에 필요한 영양을 제철음식재료로 채운 것이다. 그러니까 제철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제철 건강을 챙긴다는 의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햇나물로 만드는 봄철 시식은 겨울 동안 부족했던 비타민을 보충하고, 여름의 보양 시식은 더위로 인하여 떨어진 체력을 회복시키고, 겨울철의 시식은 지방이 풍부하여 추위를 덜 타게 하는 음식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제철 음식재료가 있고 제철음식이 있다. 이는 또 그 나라의 건강 밥상이다. 하지만 같은 음식재료라도 우리나라의 토양, 기후 등에 맞춰 나고 자란 우리나라의 제철 음식재료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 맛도 성질도 쓰임도 다르다. 같은 음식재료라도 말이다.
한국에서 나는 제철 음식재료로 만드는 한국의 제철음식이 우리 몸에 더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