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처럼 미꾸라지와 관련된 속담은 대개 부정적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봐도 ‘자기 자신에게 이롭지 않으면 요리조리 살살 피하거나 잘 빠져나가는 사람’을 미꾸라지에 비유한다고 표기돼 있다.
미꾸라지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음식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폐·하수의 오염물질 제거 및 유기농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람에게 큰 이로움을 주는 존재니 말이다.
♣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미꾸라지는 미꾸릿과의 민물고기로 몸의 길이는 10~20cm이고, 등은 푸른빛을 띤 검은색이다. 가늘고 길며, 앞부분이 옆으로 약간 납작하다. 머리와 배 부분을 제외한 몸에는 선명하지 않은 작은 흑점이 있다.
늪이나 논 혹은 농수로 등 진흙이 깔린 곳에 주로 서식하고, 더러운 물이나 산소가 부족해도 잘 견딜 수 있다.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미꾸라지가 아가미 호흡만 하는 대부분의 어류와는 달리 보조호흡으로 ‘장호흡’을 하는 어류기 때문이다.
덕분에 산소가 녹기 힘든 탁한 물에서도 직접 수면에 입을 대고 호흡하면서 생존할 수 있다. 주로 밤에 진흙 바닥에 붙어 있는 조류나 유기물 등을 먹고 산다. 때로는 식물의 싹이나 열매, 해캄 등을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분포하며 주로 강의 하류 또는 연못가, 논두렁, 도랑, 수로 등 물의 흐름이 느리거나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산다. 온도가 낮아지거나 가뭄이 들면 진흙으로 들어가 휴면을 취한다.
♣ 사실 미꾸라지는 억울하다
미꾸라지는 그간 주로 부정적인 비유나 속담에 활용돼왔다. ‘미꾸라지 용 됐다’는 속담은 보잘것없던 사람이 큰 사람이 됐다는 것을 뜻하는 말로 보잘것없던 사람을 미꾸라지에 비유한다.
역시 같은 뜻으로 활용된 ‘미꾸라짓국 먹고 용트림한다’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잘난 체하며 허세 부린다는 뜻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에 물 한 동이를 붓는다’는 처지에 맞지 않는 야단스러운 대비를 비꼰다.
그 밖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용이 개천에 떨어지면 미꾸라지가 된다’는 좋은 처지에 있던 사람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뜻이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못된 사람 하나가 집안이나 사회 전체에 큰 폐를 끼친다는 뜻이다.
그 밖의 많은 속담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늘고 미끈한 몸을 활용해 요리조리 휘젓고 다니는 모습, 흐리거나 더러운 물에 서도 잘사는 습성 탓이다.
하지만 이런 습성 덕분에 미꾸라지는 오히려 생태계 유지에 큰 도움을 주는 존재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하루에 모기 유충 1,100여 마리를 잡아먹는 데다, 습지의 퇴적물을 파헤치는 습성 덕분에 하천 바닥에 산소를 공급하면서 수질 개선과 하천 정화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유기농법에 활용하기도 한다. 논에 미꾸라지를 풀어놓으면 진흙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 때문에 벼뿌리에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벼 줄기가 튼튼해진다. 또한 미꾸라지가 잡초의 어린싹을 뜯어먹기 때문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도 잡초를 제거할 수 있다.
먹거리 측면에서도 미꾸라지는 우리에게 귀한 보양식이다. 중국 명나라의 이시진이 질병의 치료에 쓰이는 약물을 관찰·수집하고 문헌을 참고해 저술한 의서 <본초강목>에서는 미꾸라지를 일컬어 “양기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하며, 초롱의 등심에 익힌 것이 제일 맛있고, 양사에 좋다”고 언급했다.
단백질과 비타민A, 무기질 함량이 높은 미꾸라지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주요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단백질 중 필수 아미노산이 절반 정도 되고, 성장기 어린이나 노인에게 중요한 라이신이 풍부하다.
또 타우린이 들어 있어 간장을 보호하고 혈압을 내리며, 시력을 보호하는 작용도 한다. 미꾸라지에 들어 있는 지방은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아서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미꾸라지를 영양식으로 이용했다. 추어탕 재료로 유명하며, 튀김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요리 재료로 쓸 때는 며칠 동안 물속에 넣어 냄새를 제거하거나 소금을 뿌려서 해감한다.
이렇듯 속설과 달리 미꾸라지는 생태계와 사람들에게 큰 이로움을 안겨준다. 그런데도 부정적인 속설과 속담에 줄곧 활용됐으니 미꾸라지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일이다. 미꾸라지 관련 속담 중 ‘미꾸라지 천 년이면 용 된다’는 말이 있다.
오랜 시일을 두고 힘써 노력하면 훌륭한 성과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이 속담은 앞서 언급한 속담들처럼 오류를 끌어안고 있다.
미꾸라지는 이미 우리에게 놀라운 존재이니 말이다.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미꾸라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이롭게 한다. 사람들이 평생 닿을 수 없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보다는, 지금 우리 곁에서 행복을 전해주는 미꾸라지의 소중함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