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세가 대단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는 쉴 새 없이 열기를 뿜어내고, 한밤중에도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파고든다. 폭염의 계절. 그저 에어컨 아래에서 문명의 이기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도 멋진 하늘이다. 이번 여름, 어디든 떠나야겠다면 제천이 좋겠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서늘하다는 얼음골이 제천에 있다.
♣ 한여름에도 물이 얼 정도라니!
전국에 얼음골이라고 불리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밀양 영남알프스 자락에 숨어 있는 얼음골이 가장 유명하고, 의성과 진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맺혀 있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곳인데, 원리는 비슷하다.
주변의 지대가 높아 햇볕을 가로막고, 냉기를 머금을 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첫 번째 조건이다. 주로 바위가 많은 너덜(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 지대가 이런 조건을 충족한다.
겨우내 너덜 내부에 쌓인 냉기는 한여름이 될 때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얼음조차 녹지 않는 ‘보냉’ 효과가 여름철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여름철의 뜨거운 공기를 만나면 대류 현상이 일어나며 차가운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얼음골에 ‘천연 에어컨’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다.
제천의 얼음골 또한 금수산 깊숙한 곳에 형성된 너덜에 있다. 능강계곡의 시작점이다. 이 일대는 ‘능강구곡’이라고 불릴 정도로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여름철 피서지로도 인기가 높은 계곡이다.
능강계곡 일대는 금수산과 주변의 봉우리들이 골짜기의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형세를 하고 있다. 얼음골이 만들어지기에 좋은 조건인 셈이다.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천 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을 향해 능강구곡을 따라 청풍호자드락길 3코스 ‘얼음골 생태길’이 조성되어 있다.
능강계곡의 청량한 공기를 벗 삼아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아쉽게도 아홉 개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구곡’의 본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 충주댐 건설로 인해 청풍면 일대가 물에 잠겨버린 탓이다. 그러나 여전히 계곡 상류에 남아 있는 비경은 능강구곡의 명성을 오롯이 뽐내고 있다.
얼음골 생태길을 따라 제6곡 금병대, 제7곡 연자탑, 제8곡 만당암 그리고 제9곡 취적대가 차례로 이어진다. 트레킹 구간의 대부분이 평지 또는 완만한 경사로로 이루어져 있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녀올 만하다.
발걸음을 방해하는 것은 역시 차디찬 계곡물이다. 시원한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이어지는가 하면, 너른 바위 곁을 흐르는 계곡은 그 자리에 앉아 쉬어가고 싶게 만든다. 아예 바위에 누워 신선놀음 하는 피서객들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쉬엄쉬엄 걸어보자. 능강구곡의 절경에, 시원한 물줄기에 잠시 몸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청풍호자드락길 3코스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돈다. 바깥은 30℃를 훌쩍 넘기는 폭염이지만, 이곳에서는 한기마저 느껴진다. 마지막 언덕길을 따라 오르고서야 얼음골이 등장한다.
얼음골에 도착하면,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말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가는 이가 많은지 얼음골의 바람구멍 옆에는 작은 통나무도 놓여 있다. 잠시 앉아서 쉬다 가라는 의미인 듯하다.
아쉽게도 얼음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얼음을 먹으면 만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온난화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래도 괜찮다. 얼음을 만들어낼 만큼 차가운 공기가 청풍호자드락길 3코스를 따라 올라온 여행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선사하니까.
♣ 제천의 식도락과 충주댐이 빚어낸 풍경
한반도 중부 내륙에 자리한 제천은 식도락 여행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예부터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가 나는 곳으로 유명한데 산과 들판, 강과 호수가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환경 덕분이다.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뜻이다.
제천 식도락의 대표주자는 민물고기 매운탕이다. 드넓은 충주호에서 잡은 자연산 쏘가리, 빠가사리(동자개), 메기를 넣고 푹 끓여낸 매운탕은 분명 바닷물고기로 만드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제천에서 나는 여러 채소류를 넣어 맛과 향을 더하기까지 하니, 제천의 산과 호수가 냄비 가득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우만 놓고 보면 인근 지역인 횡성, 영월 등이 더 유명하다지만, 제천도 만만치 않다. 제천에서도 꽤 오랫동안 한우를 길렀다. 산촌에서 기르는 한우는 맛 좋은 갈비탕이나 소고기수육, 떡갈비 등으로 식탁에 올라온다. 충주호 주변에 떡갈비 맛집이라 불리는 곳도, 갈비탕을 전문으로 하는 곳도 많은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제천, 그것도 얼음골 주변에는 충주댐이 만들어 낸 절경으로 가득하다. 가장 먼저 가보아야 할 곳은 충주호 중심에 솟은 비봉산 정상이다. 힘겹게 오를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청풍호반케이블카가 하부 승강장인 물태리역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10분 만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과 충주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곳에서 만나보자.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청풍면 일대는 예부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수많은 선비가 이곳을 거치며 시와 그림을 남겼을 정도. 그 흔적을 청풍문화재단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수몰 위기에 처했던 여러 문화재를 옮겨둔 곳이다. 보물로 지정된 청풍 한벽루를 비롯해 향교와 관아, 민가 등등 사료적 가치가 있는 여러 고건축물이 이곳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