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에도 반갑지 않은 폭염이 찾아왔다. 무더위를 알리는 뉴스 화면엔 어김없이 물가에 나와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물놀이는 최고의 피서다. ‘냉방’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우리 조상은 천렵을 즐기며 더위를 이겨냈다. 맑은 물과 물고기가 많아 예로부터 천렵하기 좋았다는 충북 옥천을 찾아 잠시나마 더위를 잊어본다.
♣ 보청천 따라 물길 여행
충북 옥천은 동쪽 소백산맥을 경계로 경북 상주시, 서쪽 대전광역시와 금산군 그리고 남쪽 영동군, 북쪽 보은군과 맞닿아 있다. 그중에서도 옥천 동쪽에 있는 청산면은 속리산 자락에서 발원해 금강으로 흘러드는 보청천을 품고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물이 맑고 물고기가 많았다. 덕분에 물고기로 만든 음식도 유명하다.
그 유명한 음식도 맛보고 물 구경도 하러 맨 먼저 찾아간 곳은 보청천. 하천을 끼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니 멀리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강 한가운데 오뚝하게 솟은 언덕 위에 작은 정자가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동양화 한 폭 같다.
정자 이름은 상춘정. ‘주변 풍경이 늘 봄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1970년대 박춘식 청성면장의 주도로 세웠다고 한다. 상춘정이 서 있는 언덕처럼 보이는 것은 알고 보니 ‘독산’이란 어엿한 이름을 가진 산이었다.
그런데 이 독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독산은 원래 속리산에 있었는데, 어느 해 장마로 이곳까지 떠내려왔다고 한다. 그러자 속리산 절의 주지승이 사람을 보내 이 산이 자기네 것이라며 해마다 세금을 걷어갔다. 그러던 중 고을에 새 현감이 부임했다.
독산의 사정을 들은 현감은 주지승에게 “독산은 우리가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왔으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했다. 결국 그 후로 마을 주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잔잔한 강물 위로 독산과 상춘정의 모습이 드리워 아름다움이 곱절이다. 사방이 고요하고 한적하다. 두고두고 마음속에 저장해두고 싶은 장면이다. 상춘정은 일출 명소로도 손꼽히고 별, 은하수를 보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니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때맞춰 찾아가 보자.
♣ 맑은 물이 키운 별미
고운 풍경을 기억에 담았으니 이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차례. 보청천이 휘감아 도는 옥천 동쪽 끝 마을인 청산면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청산생선국수 음식거리’다. 청산면 사람들은 예전부터 모내기가 끝나면 보청천으로 천렵을 나갔다고 한다.
바닥의 자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보청천에는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물고기가 많았다. 천렵으로 잡은 고기는 채소와 갖은양념을 넣고 푹 끓여 매운탕을 만들어 먹었는데, 1960년대 쌀 대신 면을 넣은 것이 생선국수의 시작이란다.
생선국수 맛집은 청산면 지전리에서 교평리 일대에 모여 있다. 옥천군은 2018년 이곳을 ‘청산생선국수 음식거리’로 지정했다. 사실 생선국수는 이곳 외에 영동, 금산, 무주에서도 많이 먹는다. 그렇지만 생선국수의 본향은 바로 이곳 청산면이라는 것이 옥천군의 설명이다.
아무래도 본향의 맛은 타지와는 다를 터. 민물 생선을 뼈째 푹 우려낸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생선국수는 단백질, 칼슘, 지방, 비타민이 풍부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기력 보충에 이만한 음식도 없을 듯.
몸에 좋으면 맛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선국수는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다. 진한 국물은 잡내가 하나 없이 구수하고 시원하다. 국수라고는 하지만 담백하면서도 깊은 국물을 들이키고 나면 그 어떤 보양식도 부럽지 않다.
생선국수와 더불어 이곳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은 도리뱅뱅이다. 먹어보지는 못했어도 그 독특한 이름과 담음새는 한번 보면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도리뱅뱅이는 빙어나 피라미 같은 작은 생선에 양념장을 발라 바싹 튀긴 요리다.
바삭한 식감에 짭조름하고 달착지근한 것이 강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은 생선들을 동그랗게 펼쳐놓을 생각을 맨 처음 누가 했는지, 그 재치가 놀랍기만 하다. ‘도리’는 목조 건물 지붕의 서까래를 받치는 기다란 나무를 일컫는다.
여기에 뱅뱅 도는 물건이나 놀이기구를 가리키는 ‘뱅뱅이’가 합쳐져 탄생한 이름. 이렇게 도리뱅뱅이는 이름, 맛, 보는 재미까지 고루 갖춘 별미 중에 별미다.
생선국수, 도리뱅뱅이만으로 어쩐지 서운하다면 작은 생선을 통째로 튀긴 생선튀김을 곁들여보자. 맑은 내가 품고 내어준 소중한 양식들이 몸과 마음을 부듯하게 채워준다.
♣ 더불어 여유와 힐링을 선사할 장소들
눈과 입이 호강할 수 있는 옥천에는 볼거리가 곳곳에 알차게 숨어 있다. 정지용 생가와 그 옆에 자리한 정지용문학관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옥천의 명소.
그 유명한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의 시구 그대로 실개천 가에 자리한 정지용 생가는 돌담과 사립문, 초가, 우물, 장독대 등이 소담스럽게 자리해 방문객을 시인이 살던 시공간으로 데려다준다.
정지용 생가와 더불어 옥천향교, 옥주사마소(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인 사마시 합격자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곳) 등 문화 유적과 맛집, 카페가 즐비한 구읍(옥천 옛 시가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코스가 될 듯.
옥천의 빼어난 자연을 감상하며 힐링을 맛보고 싶다면 수생식물학습원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꽃과 나무, 호수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수생식물학습원은 옥천군 서쪽 군북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수생식물과 열대지방 대표 수생식물을 재배하고, 번식·보급하는 관경농업장으로 시작해 2008년 충청북도교육청이 체험학습장으로 지정했다.
‘천상의 정원 둘레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드넓은 대청호를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를 조성해 놓아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수련, 가시연, 연꽃, 부레옥잠화, 물양귀비 등 이름은 익숙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수생식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이곳의 장점. 수생식물학습원은 예약제로 운영되니 홈페이지에서 방문 전 사전 예약하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