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뒤에 여기저기 돋아나는 죽순을 ‘우후죽순’이라 한다. 봄에 죽순 채취가 가장 활발한 이유이다. 싱그러운 봄기운을 담뿍 머금은 죽순을 맛보기에도, 피톤치드로 가득한 대숲 산책을 즐기기에도 요즘이 제격. 거제도 맹종죽테마파크를 찾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절이다.
♣ 맹종죽의 맹주, 거제도 하청면
경남 통영에서 신거제대교를 건너 거제대로를 따라 달린다. 바닷가로부터 멀어진 도로가 하청면으로 들어서며 다시 바다로 바투 다가설 즈음, 거제맹종죽테마공원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맹종죽’이란 대나무 종류 중 가장 굵은 종으로 다 자라면 지름은 20cm, 높이는 10~20m에 이른다고 한다.
전남 담양에서 많이 자라는 대나무인 ‘솜대’의 지름이 10cm 정도라고 하니 맹종죽은 ‘아름드리 대나무’인 셈이다. 다른 대나무에 비해 탄력성이 적어 잘 휘어지지 않고 부러지기 쉽다는 것도 맹종죽의 특징이다.
대나무 이름에 얽힌 이야기엔 마음이 짠해진다. 중국 삼국시대에 효심이 남다른 맹종이란 자가 병든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죽순이 먹고 싶다는 게 아닌가. 대밭으로 나서긴 했지만, 엄동설한에 죽순이 있을 리 없었다.
맹종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하늘도 감동해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죽순이 돋아났고 그것을 먹은 어머니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맹종설순’, 그렇게 맹종죽은 효의 상징물이 되었다.
거제 하청면은 맹종죽의 맹주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맹종죽이 자라는 총면적이 약 291만㎡인데, 이 가운데 거제도가 약 80%를 차지한다. 단단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죽순의 생산량 역시 전국의 80%를 훌쩍 넘는다.
중국이 원산지인 맹종죽을 하청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1926년 하청면 주민인 신용우 선생이 일본으로 산업시찰을 갔다가 맹종죽 3주를 들여와 심은 데서 비롯된다. 온화하고 해풍이 부는 거제의 기후와 맹종죽은 찰떡궁합을 이뤘고, 머지않아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군락을 이루게 된 것이다.
♣ 바다와 대숲의 싱그러운 하모니
거제맹종죽테마파크는 약 10만㎡ 부지에 3만여 그루의 맹종죽이 빽빽하게 자리한 테마공원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곧장 울울창창한 대숲이 시작된다. 산책길에는 댓잎이 폭신하게 깔려 있어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하고, 좌우로는 굵직하면서도 하늘로 쭉쭉 뻗어 오른 맹종죽이 촘촘하게 군락을 이루며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댓잎들이 춤을 추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귀를 싱그럽게 하고, 바닷가가 지척인지라 코끝을 스치는 갯내도 반갑다. 1.4km에 이르는 대나무 울타리 산책로와 편백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편안해진다.
대숲 속은 밖의 온도보다 약 4~7℃ 정도 낮아 늦봄의 이른 더위를 피해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대나무 지압로에서는 신발을 벗고 걷길 권한다. 맨발로 대나무를 느끼며 걷노라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다.
맹종죽을 이용한 공예품 만들기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공예체험장에서 부채, 목걸이, 밥그릇, 연필꽂이, 시계 등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다 보면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의 고마움을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모험의 숲은 아이들의 심신 단련 체험 놀이터로 인기가 높다.
이곳은 맹종죽보다는 소나무가 많은데, 나무와 나무를 그물, 출렁다리 등으로 연결해 아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짚라인을 타고 숲을 가로지르다 보면 스파이더맨이나 타잔이라도 된 것처럼 짜릿하다. 정상 전망대까지는 조금 힘들더라도 꼭 올라가볼 것을 권한다. 숲 너머로 펼쳐지는 거제도 앞바다의 풍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 그 밖의 풍성한 볼거리
거제도에는 맹종죽테마파크 외에도 둘러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먼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해금강’ 유람선 타기이다. 지형이 칡뿌리가 뻗어 내린 형상을 하고 있어 '갈도'라고도 불리는 해금강은 이름 그대로 바다의 금강산이라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오랜 세월 파도가 조각한 바위는 사자바위, 미륵바위, 촛대바위, 돛대바위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특히 유람선을 타고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십자동굴을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외도 보타니아’는 스파리티움, 마호니아 등 희귀한 아열대 식물들이 섬의 지세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해상공원이다. 여기에 이국적인 조각 작품과 건축물들이 더해지면서 어디를 가나 포토존이어서 사진을 찍다 보면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해금강 유람선 선착장과 가까운 ‘바람의언덕’ 역시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지형에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풍차는 꽤 동화적이다. 바람의언덕 뒤쪽의 신선대는 과연 신선이 놀던 자리라는 이름값을 한다. 바위와 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에 다름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비참했던 포로수용소의 전말을 당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현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들러 거제의 아픈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실물 크기에 가까운 인형들로 수용소의 생활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디오라마관에서는 포로들의 절절한 눈빛까지 그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탱크전시관, 포로설득관, 포로생활관 등 역사교육의 마당들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