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잣으로 꽃을 수놓은 약밥, 마른 대구포나 육포를 일일이 찢고 두들겨 솜처럼 만든 보푸름, 구절판에 곱게 담긴 색색의 정과들. “요리들이 예술 그 자체 아닙니까? 보기에만 예쁜 게 아니라 고명 하나에도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지요.”
안동 풍산 류씨 이정숙 종부의 음식 사진을 보며 허성미 안동과학대 식품영양과 교수는 감탄했다. 대구 출신인 허 교수는 수십 년간 경상북도 종가 및 향토 음식과 관련된 식문화를 연구해온 학자다.
종가 음식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안동의 종가들을 찾아 종부들과 친밀한 인연을 맺으며 내림음식 문화를 탐색해왔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의 ‘종가음식 명품화 사업’과 영양군의 ‘반가음식(음식디미방) 계량화 및 매뉴얼화’ 등에 참여해 종가 문화를 알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안동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에서 허 교수를 만났다.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하라’는 유교사상의 중요 덕목 정성이 들어간 음식으로 상대방을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다. 음식 위에 곱게 고명을 올리는 것도 ‘손님에게 새로 차린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 종갓집 종부들과 인연이 각별해 보인다.
아마도 십수 년 전일 것이다. 안동의 종가 음식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 양진당 종가를 찾아 인사드리며 내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그때는 이정숙 종부님이 차종부였고, 위 종부님이 계셨다. 이후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안동의 종가들과 지속해서 인연을 맺었다.
종가 음식은 파고들면 들수록 의미가 깊어 아직도 배울 점이 많다. 종부님들이 어른들을 어렵게 모시며 갈고닦은 내공이 상당하다. 학자로서 종가 음식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 경북의 종가음식을 비롯한 향토음식 문화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등의 국제적인 큰 행사를 치르면서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가치를 찾고 발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문화를 체험하러 온 외국인들에게 서양의 스테이크를 권할 수는 없지 않나.
당시에 가정학과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식문화를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같은 고조리서를 접하면서 전통 한식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석박사 과정 때는 대구의 제사음식과 경주 양동마을 향토음식 등에 대한 조사 및 논문을 썼고, 안동과학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안동 종가음식에 대해 연구했다.
♣ 경북에 종가가 유독 많은 이유는?
유교적인 영향이 크다.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많은 유학자가 안동 종가에서 배출되다 보니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존경심이 커서 어른의 말씀은 그대로 따르고, 우리 가문의 정신을 지키고 이어가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이런 정신적인 뒷받침이 있으니 종가 문화가 지금까지 계승되는 게 아닐까.
경북에 종가가 유동 많은 이유는 유교적인 영향이 크다.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많은 유학자가 안동의 종가에서 배출되다 보니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 종가 문화가 반영된 경북 향토 음식의 특징은?
한마디로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宾客’이다.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하라’는 유교 사상의 중요 덕목이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으로 상대방을 대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다.
지금도 경북의 종가는 물론이고 어른을 모시는 가정에서는 손님 대접과 제사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손님상이나 제사상에 아무 음식이나 올릴 수 없다보니 품격 있는 요리가 발달했다.
음식 위에 달걀지단, 깨, 실고추 등으로 곱게 고명을 올리는 것도 ‘손님에게 새로 차린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제사상에는 문어 요리가 꼭 올라간다. 문어의 ‘문’은 한자로 글월 문(文)을 쓰는데, 그만큼 학문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이 담겨 있다.
♣ 제사와 접빈에 있어 술은 빠질 수 없는데, 경북 종가만의 독특한 전통주, 가양주를 소개한다면?
종가마다 나름의 비법으로 만든 가양주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맥이 끊긴 경우가 많다. 일제강점기 때 민가에서 술 빚는 걸 제한했으며, 해방 후에도 주세법에 묶여 마음대로 술을 빚을 수 없었다.
솔잎과 송홧가루를 넣어 빚은 안동의 송화주,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감향주 등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한 술은 있지만,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는 않다. 다행히 안동소주와 경주 교동법주는 잘 보존되어 경북을 대표하는 전통주가 됐다.
♣ 일부에서는 제사에 오르는 내림 음식을 현대인이 그대로 따르기에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내림 음식을 현대에 맞게 계승하는 방법은?
경제적, 환경적인 이유로 지금의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은 당연히 변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음식에 담긴 정신이나 의미를 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종가 음식이 무조건 화려하기만 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검소함이 깔려 있다.
퇴계 이황 선생도 평소 검소한 밥상을 지향했다. 또한 제사 음식에는 나눔 정신이 담겼다. 제사를 지낸 후 집안사람뿐만 아니라 이웃, 손님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음복飮福’을 꼭 거쳤다.
손님에게도 무조건 비싼 음식을 대접한 게 아니라, 집안 형편에 맞춰 정성을 들인 음식을 내왔다. 고기, 생선 껍질조차 버리지 않고 요리로 알뜰하게 만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 때문에 내림 음식은 계승할 가치가 있다.
♣ 종가 음식은 문중에서만 이뤄졌는데, 최근 들어 문을 열고 외부에 종가 음식을 선보이는 종가가 늘고 있다.
그렇다. 내가 2009년 참여했던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의 ‘종가음식 명품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종가 음식의 관광 상품화와 취업 창출을 위한 사업이었다.
안동에 대표적인 종가 음식이 무엇이 있는지 조사하고, 종부님들이 직접 종가의 내림 음식을 가르쳐주는 수업을 열기도 했다. 종가를 바깥으로 이끌어내던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내림 음식의 레시피가 공개되니 일반 영업장에서 그 음식을 아무런 상의 없이 상품화해버릴 우려가 있었다.
집안의 내림 음식을 다른 곳에서 판다는 게 그분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종가 음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종가를 보호하는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한다.
종가 음식이 무조건 화려하기만 한 건 아니다. 검소함이 깔려 있다. 퇴계 이황 선생도 평소 검소한 밥상을 지향했다. 또한 제사 음식에는 나눔 정신이 담겼다
❞♣ 영양 석계 종가의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레시피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음식을 복원했나?
복원 과정에서 현대인 시각으로 해석되는 것을 가능한 배제하고 원전의 내용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3백 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 시대의 음식을 만들고 맛보며 현대의 음식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전을 읽고 또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했다. 보면 볼수록 장계향 선생은 천재라는 생각을 했다. 식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조리 과정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야제육(멧돼지)’과 ‘가제육(집돼지)’이라는 요리가 나오는데, 집에서 키우는 돼지고기보다 질긴 야제육법은 깨끗이 씻어 여러 번 팔팔 삶다가 약한 불로 잘 무르도록 삶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요리 초보자들은 그걸 모른다.
그래서 고서에는 ‘끓는 물에 넣어 한소끔 끓여라’라고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적혀 있다. 간을 최소화한 점도 인상 깊었다. 기름간장이나 생강 등을 양념으로 가끔 넣고, 소금도 거의 쓰지 않는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간을 할 것인지, 원전대로 갈 것인지 고민 많이 했다. 그러다 서양 식탁에 소금이 항상 있듯이, 조선 시대 반상에도 간장 종지를 꼭 올린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먹는 사람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원전 그대로 복원해야겠다는 결심이 강해졌다. 그렇게 복원된 레시피 70여 종을 영양군에 넘겼고, 현재는 그걸 토대로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복원에 성공한 요리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요리는?
많은 요리가 애착이 가지만 하나를 선정하라면 잡채를 소개하고 싶다. 「음식디미방」의 잡채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당면을 넣은 잡채와는 다르다.
제철 채소들을 섞어 먹는 요리다. 맛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화려하다. 동아에 분홍색 맨드라미 꽃물을 들이기도 한다. 각 재료가 가진 고유의 색감이 잘 드러나도록 배치되어 있다. 현대 어느 밥상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 복원에 실패한 요리도 있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은 복원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웅장’이라는 곰 발바닥 요리가 있다. 면 요리도 어려웠다. 당시에는 우리 토종 밀이 있었다. 지금은 종자가 달라져서 그런지 고서에 나온 대로 면을 만들면 자꾸 뚝뚝 끊겼다.
옛 요리를 복원하기 위해선 여러 학계의 협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분야만 독식할 수 없는 방대한 연구다.
식품영양학, 조리학뿐만 아니라 고조리서의 내용을 현대어로 바꿀 국문학과 학문학, 그 당시의 문화를 들여다볼 민속학과 역사학, 토종 식재료를 복원하거나 연구할 농업, 임업, 수산업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다.
복원 과정에서 현대인 시각으로 해석되는 것을 가능한 배제하고 원전의 내용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3백 전으로 돌아가서 그 시대의 음식을 만들고 맛보며 현대의 음식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식재료는 무엇이 있나?
경상북도는 동서남북 방향에서 보면 바다, 산, 강 등 지리적인 입지가 다양해 식재료가 다채롭다. 특히 타 지역에 비해 밭과 산에서 나는 특용 작물이 많다.
안동 마, 청송 사과, 풍기 인삼, 영양 고추와 산나물, 문경 오미자, 봉화의 송이버섯 등이 대표적이다. 은어, 메기, 쏘가리, 다슬기 등 낙동강 지류에 사는 민물 어패류도 풍부하다. 동해안 쪽으로는 울릉도의 오징어, 포항 과메기, 영덕•울진의 대게 등 바다 어패류도 풍부하다.
또한 지형적으로 내륙이 많기 때문에 바다 고기를 상하지 않고 보관하기 위한 염장 생선도 다양하다. 상어를 토막 내고 포를 떠 소금에 절인 돔베기와 안동의 간고등어 등이 있다.
♣ 김장철이 다가오는데, 경북의 김치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궁금하다.
경북의 내륙 지방은 김치에 멸치젓갈을 넣어 담근다. 경주 감포 쪽에서 멸치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멸치젓이 흔하다.
동해안 쪽에선 꽁치젓, 전갱이젓을 넣기도 한다. 같은 동해안이라도 포항, 경주 쪽에서는 갈치를, 울진, 후포 쪽에서는 다양한 바다 생선을 넣고 담그는 것이 특이하다. 신기하게도 비리지 않고 깊은 맛이 난다.
♣ 경북의 종가 및 향토 음식 연구와 관련된 목표와 향후 계획은?
경북 종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잘 계승되어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맥을 잇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종가의 어른들은 이미 연로한데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 이유로 다음 세대로 계승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종가는 우리의 뿌리이다. 종가 문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그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