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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 전문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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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주와 막걸리가 다르다고?, 허시명(술평론가,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

동동주나 막걸리나 사용되는 재료는 똑같다

♣ 전통 술에 담긴 소통의 힘

여럿이 함께 동동주를 빚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 와인전문가, 일식요리사, 출판기획자, 칸트 전공 철학자, 가정주부, 특허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그리고 유명한 대금 연주자도 있었다.

술에 있어 최고의 안주는 소리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단연 대금주자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에게 술잔을 건네고 피리소리를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큰 무대가 아니고는 마음이 움직여야 피리를 부는 그인지라 차마 부탁을 하지는 못했다.

대신 나는 앞날을 기약하며 그에게 동동주 빚는 법을 꼼꼼히 가르쳐주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술에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하였고, 준비한 막걸리를 맛볼 때마다 조기 찜이나 홍어 찜 같은 안주를 연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동동주와 막걸리 No1.

♣ 작은 단지에 담겨 나온 동동주, 쌀알이 동동 떠있다.

동동주는 고려시대에도 존재했던 술이다. 고문헌에 남은 이름은 부의주(浮蟻酒)이다. 고려 말 충신 목은 이색(1328~1396)선생의 <목은집>에도 나오고, 조선시대 책자인 『수운잡방』, 『고사촬요』, 『산림경제』, 『임원경제지』에도 등장한다.

♣ 쌀알이 동동 떠있어서 동동주라 했고, 그 모습이 개미가 뜬 것 같아서 부의주라 하였다.

흰 쌀알의 모습을 보고 개미라니! 쌀알 크기만 한 왕개미가 있는 줄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개미가 하얗지는 않은데, 하며 나 또한 의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흩어진 쌀알 같이 하얀 개미 알을 보고서야 부의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리 술에 관심 갖기 시작하는 이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 “동동주와 막걸리가 어떻게 다릅니까?”이다. 동동주는 쌀알이 동동 떠있는 형상을 보고 지은 이름이고, 막걸리는 막 걸러낸 행위와 시간의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제조법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동동주나 막걸리나 사용되는 재료는 똑같다. 밀로 누룩을 만들고 쌀로 고두밥을 지어 물과 섞어 빚는다. 술이 익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 고두밥이 누룩 물을 흠씬 빨아들인 상태를 유지하다가, 누룩 물에 의해 고두밥이 삭혀지면서 술밥이 아래로 가라앉고, 액체 술이 점차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술이 다 될 무렵, 그러니까 20도 정도의 상온에서 2주일쯤 경과할 무렵이면 삭은 고두밥은 거의 침몰하고 액체 술이 위를 점령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덜 삭은 고두밥 알갱이가 술덧 위에 동동 떠있는데, 이때 국자로 쌀알과 함께 술을 떠내면 동동주가 된다.

술을 떠내지 않고 그냥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쌀알이 가라앉고 맑은 술이 된다. 맑은 술이 된 윗부분만 떠내면 청주(淸酒)가 되고, 그 밑에 가라앉은 지게미를 술덧과 함께 체에 걸러내면 막걸리가 된다.

동동주와 막걸리 No2.

그러므로 동동주, 청주, 탁주가 한 항아리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동동주는 완전히 발효되지 않아 알코올 도수가 청주보다는 낮고, 아직 알코올로 넘어가지 않는 잔당이 있어서 청주보다 달콤하다. 막 거른 술이 아니니 막걸리는 아니고, 위에서 떠냈으니 막걸리보다는 맑지만 청주보다는 흐리다.

동동주는 그 나름의 영역이 있다. 술 빚는 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술을 거르지 않고 그냥 떠서 마시기 편하도록, 거친 밀기울이 들어있는 누룩을 물에 푼 뒤에 그 물만 짜내서 술을 빚는다. 또는 거름망에 누룩을 넣은 채로 술 속에 담아 술을 빚기도 한다.

우리 일행은 쌀 두말 16kg으로 고두밥을 지어 동동주를 빚어놓고서, 이런 가정을 해보았다. ‘우리가 목은 선생이 살았던 1300년대로 돌아간다면, 우리 중에 누가 가장 잘 소통할 수 있을까?’ 대금주자가 단연 1순위로 꼽혔다.

악기는 세계 어디에서도, 언어가 달라도 소통이 가능하지 않는가. 그것은 감성을 건드리는 음악의 힘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음악이 심금을 울리고 바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금 같은 전통 악기라야 고려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으리라.

동동주와 막걸리 No3.

♣ 이쯤에서 누군가 대금보다 더 소통하기 쉬운 게 술이며, 그것도 동동주와 같은 전통술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지! 목은 선생께 부의주를 드리며, 어떠십니까? 지난번 맛본 술과 어떻게 다릅니까? 하며 묻는 순간, 소통은 시작되지 않을까? 출판업자는 문자가 다르고 컴퓨터 전문가는 말을 잇지 못하겠지만,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 않는가.

전통 문화의 힘은 그것이 오랜 세월 속에서 단련된 콘텐츠라는 점이다. 동동주 빚는 원리는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전분이나 당분이 효모에 의해 알코올이 되는 이치는 식물과 미생물이 존재했던 천만 년 전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던 현상이다.

다만 오늘날 조금 더 치밀하게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전통은 그것이 음악이건 술이건 간에, 오랜 세월 속에 유무형의 형태로 우리와 함께 단련되었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다.

부의주 한 병 들고 역사 속을 거슬러 올라가도 소통할 수 있고, 미래로 흘러가도 소통이 될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하루아침에 쓸모없어지는 지식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술 빚기는 한번 배우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목은 선생이 마셨던 그 동동주를 우리 함께 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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