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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섬의 제사 음식

섬의 제사 음식
▲ 죽도 ⓒ 울릉군청

♣ 옛 무덤에서 나온 음식의 유물들

2020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은 재 발굴 결과 경주 서봉총에서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신라 왕족의 제사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서봉총 남분의 큰 항아리 안에서 조개류 1,883점, 물고기류 5,700점 등 동물 유체가 7,700여 점이나 나왔다. 이것들은 1,500년 전 신라 왕족이나 귀족이 준비한 제사 음식의 유물이었다. 청어, 방어, 감성돔 등의 생선은 물론이고 돌고래, 남생이, 성게, 복어, 전복, 가리비, 굴, 주름다슬기까지 출토됐다.

무덤에서 발굴된 이 음식의 유물들은 단지 제사 음식이 아니라 당시 신라 왕족이나 귀족들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고급 요리에 속하는 고래 고기와 성게알, 복어 요리까지 즐겼다.

특히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복어까지 발견된 것은 당시 음식문화의 높은 수준을 말해준다, 그런데 제사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육지에서 서식하는 소나 돼지, 닭 같은 동물의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특이하다.

서봉총에서는 백제 조문객이 가져온 민어의 흔적도 나왔다. 1500년 전부터 서남해 지역 사람들이 민어 요리를 즐겼고 그 민어가 경주까지 와서 요리되었다는 뜻이다. 해산물 위주의 이 제사 음식 유물들은 바닷가 지역 음식문화의 시원을 추정케 해주는 귀한 발견이다.

경주는 내륙에 있었지만 바다가 가까워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한 해양 도시였다. 그러므로 서봉총의 제사 음식은 고대 해양 문화권의 제사 음식들이기도 하다. 옛날 섬의 제사 음식 또한 이 음식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해양에서 나온 재료를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 죽도의 제사 음식 군소꼬지
▲ 통영 죽도의 군소꼬지

♣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제사

제사는 원시시대부터 지내져온 기원의 양식인데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며 정성을 드리는 의식이다. 과학이 발전하기 전 원시 고대인들은 자연현상의 변화와 천재지변 등에 어떤 초월자가 개입하고 있다 상상하고 그 초월자, 절대자를 신으로 모시고 기원하는 의례를 만들어냈다.

사후 세계도 있다고 믿으며 귀신을 섬기게 됐다.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는 사상이 합치되어 일정한 격식을 갖춘 제도로 정착된 것이 제사 의식인 것이다.

우리 민족 또한 고대부터 제천 의식을 거행했고 농경 사회가 정착한 뒤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도 생겨났다. 고대국가인 부여의 영고 迎鼓, 고구려의 동맹 東盟, 예의 무천 舞天 등이 모두 제천 의식이다.

이후 국가의 형태가 완비된 뒤에는 사직과 종묘 등에서 제례가 행해졌고 가정의 제례도 규칙이 마련되어 거행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거행하는 제사 의식은 유교가 국가 이념이 된 조선시대에 와서 규칙화된 의례인데 주자(주희)의 『가례』를 기본으로 삼아 만들어진 것이다.

가례에 따라 제사는 기본적으로 사대봉사 四代奉祀 를 원칙으로 한다.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다. 4대가 넘어가면 신위를 땅에 옮겨 묻고 더 이상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 대신 5대조 이상의 조상은 문중에서 지내는 시제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모신다. 시제는 아직도 문중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집단 제의다. 시제는 음력 10월에 행해진다.

하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조상은 4대가 지나도 계속 집에서 제사를 모신다. 이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불천위 不遷位 사당 祠堂 이라 하는데 이 사당들은 조선시대 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보존될 수 있었다. 그만큼 신성시됐던 것이다.

옛날 일반 가정집에서는 따로 사당을 두지 않고 집안에서 모셨지만 종가에서는 다들 사당을 두고 제사를 모셨다. 사당에는 고조 이하 4대 조의 신위를 모신 뒤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하고 각 조상의 기일 忌日 에 제사를 드렸다. 집안에 중대사나 특별한 음식이 생겼을 때도 제사를 모셨다.

그 밖에도 시조제 始祖祭, 조제 先祖祭, 이제 禰祭 등의 다양한 제사 형식이 있었다. 제사를 모시는 시간은 해시 亥時 말에서 자시 子時 초였다. 밤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의 첫 시각에 지낸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편리를 위해 대부분 저녁 시간에 지내고 있다.

통영 죽도의 제사 음식 문어초
▲ 통영 죽도의 문어초

♣ 꽃게와 꽃게장, 우럭젓국

충청의 서해안은 꽃게의 주산지다. 원래 게장은 민물 게인 참게로 담그는 것이었는데, 참게에 디스토마 원인균이 많고 1960년대 꽃게의 대량 수확으로 서산 꽃게와 꽃게장이 게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태안, 서산에서는 ‘우럭젓국’을 즐긴다. 두툼한 살은 찜으로 먹고, 머리와 뼈는 제사상에 올렸던 두부를 내려 푹 끓인 후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먹은 것이 유래라고 한다. 요즘은 우럭젓국에 바지락 등을 넣기도 한다.

♣ 섬의 제사 음식

제사 음식은 제수라고도 하는데 고춧가루와 마늘, 파, 부추 같은 향신료 성 양념은 쓰지 못한다. 김치도 백김치만 올린다. 귀신을 쫓는다고 여겨지는 팥이나 복숭아도 올릴 수 없다. 제사상의 기본 차림은 과일, 산적, 나물, 생선, 포, 떡, 전, 탕과 밥, 국, 술 등이다.

육지와 섬 제사상은 해산물을 쓰는 양에서 두드러지게 차이가 난다. 내륙에서는 돼지나 쇠고기를 두툼하게 썰어서 양념을 하고 석쇠에 구워내는 산적뿐만 아니라 탕도 소고기, 닭 등의 육류를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섬에서는 산적이나 탕도 해산물이 주재료다.

생선은 민어, 가자미, 방어, 도미 등 다양한 생선이 올라가고 조개류도 탕이나 꼬지로 조리되어 올라간다. 지금이야 양식 때문에 흔해졌지만 귀하디 귀한 전복을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

통영 죽도 별신굿
▲ 통영 죽도 별신굿

♣ 울릉도의 제수

한국의 대표적 섬인 제주도와 울릉도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울릉도나 제주도 또한 요즈음은 육지와 별반 차이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육지의 제사상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울릉도의 제수는 울릉도의 산과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과 산나물이 주였다.

바람 때문에 과수 재배가 잘되지 않으니 과일이 귀했다. 그래서 제사상에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올릴 수 없었다. 땅속에 묻어 보관하는 밤 정도만 올렸다. 궁핍한 집에서는 밤도 올리기 어려워 제사상에 과일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통영 죽도의 제사 음식 군소꼬지
▲ 통영 죽도의 군소꼬지

가장 일반적인 재료는 생선이었다. 삶은 문어와 오징어포는 기본이었다. 생선도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말렸다가 구워서 올렸다. 산적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로는 만들 수 없었고 잘해야 닭고기 정도를 사용했다.

통영 죽도의 제사 음식 도미찜
▲ 통영 죽도의 도미찜

그래서 생선 산적이 발달했다. 방어, 오징어, 문어 등 많이 잡히는 생선으로 산적을 만들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쇠고기를 대신하는 제사 음식도 있었다. 산나물 중에서도 쇠고기 맛이 나는 고비나물을 쇠고기 대신이 올린 것이다. 제사 음식의 기본인 탕도 육지처럼 고기를 넣지 못하고 오징어를 다져서 만들었다.

통영 죽도의 제사 음식 홍합꼬지
▲ 통영 죽도의 홍합꼬지

♣ 제주도의 제수

제주도 또한 섬이라는 특성상 제사 음식이 육지와 차이가 컸다. 울릉도처럼 해산물이 특히 많고 과일은 적었다. 돼지고기도 올랐지만 생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생선은 옥돔, 우럭, 북바리 등을 염장해서 건조한 뒤 구워서 올렸다.

산적은 육적도 드물게 올랐지만 울릉도처럼 해산물로 만든 어적이 더 많았다. 상어적, 오징어적, 문어적이 기본으로 올랐다. 어떤 때는 심지어 고래고기로 만든 고래적이 오르기도 했다.

추자도 제사상
▲ 추자도 제사상

제주도 해안가에서는 국도 쇠고기국이 아니라 옥돔이나 북바리 등으로 끓인 생선국이 올랐다. 제사상에 생선국이 오르는 것은 육지 제사상과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다. 과일도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구할 수 없으니 당유자를 사용했다.

제사떡 또한 쌀이 귀한 섬인지라 쌀떡이 아니라 좁쌀이나 메밀, 고구마 등을 재료로 만들었다. 메밀인절미, 세미떡, 고구마침떡 등이 제주의 제사상에 오르던 떡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제사에 참여하는 친척들은 빙떡이나 상애떡(보리떡) 등을 부조 했다.

제사 다음 날이면 동네에 밥과 떡을 나누는 ‘떡반 돌림’이란 풍습도 있었다. 상호 부조가 있는 것이 섬의 제사문화였다. 제사 음식을 동네 사람과 나누어 먹는 문화는 섬뿐만 아니라 육지에도 있었던 아름다운 풍습이지만 육지에서는 진즉에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섬에서는 지금까지도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아침을 대접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풍습인 동시에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의례이기도 했던 것이다.

추자도 제사음식
▲ 추자도 제사음식

섬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수산물이 풍성하게 나오는 추자도나 거문도, 안도, 외연도 등의 섬 지방에서는 제사상이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당제가 남아 있는 섬들의 당제 음식에도 섬 지방 특유의 제사 음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작년 겨울 통영의 섬 죽도에서 열린 남해안 별신굿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별신굿도 굿이지만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제사 음식이었다.

섬사람들은 집집마다 별도의 제사상을 차려 내와 굿청에다 바쳤다. 거기 수백 년 이어온 섬의 제사 음식이 다 들어 있었다.

개불꼬지, 문어초, 바지락 오가재비, 군소꼬지 등등… 육지의 제사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별한 음식들이었다. 섬의 제사 음식에는 우리 한식의 원형이 깃들어 있다. 섬의 제사 음식이야말로 사멸해 가는 고유한 한식문화를 재생 시킬 처방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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