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향심으로 찾은 전북食의 뿌리

전주 사람이란 게 항상 자랑스러웠다. 고향이 전주라고 하면 누구나 “맛있는 음식 많이 먹겠다”며 부러워해서 기분이 좋았다. 자연스레 생긴 음식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생 때 독학으로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음식 스토리텔링’ 분야로는 국내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외의 식문화와 관련된 책만 탐독한 시절도 있었지만, 문득 내가 사는 고장의 음식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책방에서 최명희, 신석정, 이병기 등 전북 대표 문인들이 쓴 소설, 시집, 수필집을 뒤져가며 전주 음식과 관련된 내용을 한 줄 한 줄 찾았다.

그 내용을 정리해 명확한 출처 없이 떠도는 ‘전주 십미全州 十味’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은 뿌리 깊게 내려앉은 애향심을 바탕으로 전주 향토 음식 메뉴를 개발하고 전북 음식의 뿌리를 연구하고 있다. 송영애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교수를 전주 남부시장에서 만났다.

♣ 전주 남부시장은 어떤 곳인가?

전주에는 서울처럼 사대문이 있는데, 당시 남문 밖 시장이 오늘날의 남부시장이다. 지방에서도 시장이 허용된 1525년부터 장터로 이어오면서 서민들과 애환을 나눈 유서 깊은 곳이다. 1960-1970년대에는 호남 지역 최대 시장으로 위용을 떨쳤다.

당시 전국의 쌀 시세가 남부시장에서 결 정되었을 정도였다. 지금은 많이 축소됐지만 그 래도 8백여 개의 점포가 입점해 가구, 건어물, 채소, 과일, 약재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남부시장만의 독특한 특징은 전주천 주변에서 매일 새벽에 도깨비시장이 열린다는 점이다. 새벽 5시부터 열리고 오전 9시면 파한다. 시장 상인과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손수 가져와 저렴하면서도 신선도 높은 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

♣ 역사가 깊은 만큼 노포도 많을 것 같은데, 대표적인 노포를 소개해달라.

남부 건어물 마트(구 성만용 상회)를 소개하고 싶다. 70년간 대를 물려서 운영되는 곳이다. 대구포, 멸치, 홍합, 갑오징어, 청각 등 전국 산지에서 조달한 질 좋은 건어물을 만날 수 있다.

국물 맛을 내는 데 장만큼 중요한 건 건어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맛있는 된장도 맹물에 풀어서 끓인들 진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주의 육수는 여기서 다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식당이 이곳의 건어물을 이용한다. 이 밖에도 40년 전통의 피순댓집과 콩나물국밥집 등 30년이 훌쩍 넘은 노포가 많다.

♣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향토 식재료를 소개한다면?

전주 콩나물이다. 전주천변 쪽으로 나오면 콩나물 집들이 몰려 있다. 오전에는 콩나물을 사람 키보다 높게 쌓아두고 파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전주 콩나물은 확실히 맛이 다르다며 사가는 타 지역 분을 여럿 봤다. 아삭아삭하고 쫄깃해서 국으로 두 번 끓여도 뿌리가 물러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콩나물로 만든 국밥이나 비빔밥도 맛이 좋아 전주의 대표 음식이 됐다.

♣ 전주 콩나물이 유독 맛이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임실에서 나는 서목태(쥐눈이콩)를 물 좋은 전주 교동과 서학동에서 길러 남부시장에서 판 것이 바로 전주 콩나물이다. 교동에는 묵샘, 서학동에는 노내기샘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좋은 콩과 물이 만나고, 서학동 주민들의 정성이 더해져 잔뿌리 없이 통통한 콩나물이 길러졌다. “서학동에서 콩나물을 기르지 않으면 남부시장에 콩나물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전주 문인인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는 이런 전주 콩나물의 우수성이 생생하게 담긴구절이 있다.

‘물이 이처럼 영특하여 이곳 물로 기른 콩나물 역시 사정골(서학동) 노내기샘 콩나물과 더불어, 부성 인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미식美食이란 이름을 얻을 만하였다.’ ‘구성없이 막대기처럼 자라 뻗치지 않고, 잔뿌리 터럭 하나 달지 않으면서, 작달막하고 통통하고 고소한 전주 콩나물.’

송 교수는 일반인은 잘 모르는 귀한 토속 식재료를 맛보게 해주겠다며 천변 상가의 한 과일가게로 이끌었다. 송 교수가 인사를 건네자 주인장은 가게 안쪽에서 붉디붉은 홍시를 꺼내왔다.

1990년대에 이미 사라진 감으로 알려진 ‘파라시八月柿’였다. ‘음력 8월에 나오는 감’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말랑말랑한 껍질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니 과즙이 물처럼 흘러나와 급히 입을 댔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즙이 사르르 녹아 어느새 껍질만 남았다.

♣ 파라시는 이미 멸종된 감 아닌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주 동서학동,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에 몇 그루 남아 있다. 파라시는 물이 많고 시원하게 달며 씨가 별로 없어 먹기에 좋다. 올해 만해대상을 수상한 국문학자인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의 수필집 「난연기」에도 이런 파라시의 맛을 묘사한 구절이 있다.

‘술 마신 후의 입가심으로 선왕골 파라시면 술꾼에게 오히려 약이 되고 남을 것이다.’ 이처럼 맛은 뛰어나지만 상품성이 없다. 껍질이 얇아 익어서 떨어지면 바로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상품성이 있는 감에 밀려서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지금도 몇 그루에서 조금씩 열매가 맺히고, 남부시장에서 오랫동안 팔아온 가게도 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으니 없어진 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이 밖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전북의 다른 식재료에 대해 알려달라.

전북 김제에서 나는 ‘양하’라는 채소가 있다. 겉껍질이 보랏빛이며 씹을수록 생강과 셀러리를 섞어놓은 것 같은 특유의 향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식감이 쫄깃해 주로 김치나 장아찌로 담가 먹는다.

김제 사람들은 추석이 되면 상어 고기를 넣고 ‘양하 산적’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린다. 이 밖에도 전북에서 명절 제사상에 꼭 올리는 음식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갑오징어전이다.

갑오징어는 군산과 부안에서 많이 잡히는 특산물로 쫄깃하고 탱탱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마늘종과 갑오징어를 꼬치에 꽂아서 산적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 전북의 향토 음식 특징을 지역별로 나눠서 살펴본다면?

넓은 논과 평야가 있는 전주, 익산, 김제는 쌀이 풍부하게 생산됐다. 옛날에는 쌀이 부의 기준이었다. 삶이 넉넉했기 때문에 전해지는 향토 음식도 다양하다.

바닷가 쪽에 해당하는 군산, 부안, 고창은 언제나 신선한 해산물을 즐겼다. 반면 ‘무진장’으로 일컬어지는 무주, 진안, 장수에서는 신선한 생선보다는 소금에 절인 생선인 간고등어, 간갈치, 젓갈 등을 많이 먹기에 고향이 이 지역인 분들은 식감이 낯설다며 회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반면, 들과 산이 많은 임실, 남원, 정읍은 나물 요리가 많다. 특히 임실은 맛 좋은 나물을 가지고 ‘임실N나물 천지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정읍은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남원은 추어탕이 유명한데, 그 비결을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신선한 무의 무청과 함께 끓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

♣ 특히 전주는 국내 유일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지정될 정도로 향토 음식이 많다.

전주는 전북 중앙에 위치해 조선 시대에는 호남의 중심 도시이자,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였다. 산간 지대의 산물과 평야지대의 산물이 모두 모여 교환되는 곳이었다. 논과 밭농사는 기본이고, 산에서는 산나물이 나오며 인근 바닷가에서는 해산물이 올라왔다.

그만큼 식재료가 풍부했다. 또한 조선 왕조를 일으킨 전주 이씨의 본향이자, 조선 시대에는 전라도 전 지역을 총괄하는 전라감영이 있는 행정 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 영향을 받아 음식이 화려하고 맛도 좋았다.

음식의 호사를 누렸던 과거의 기억으로 지금도 음식 만큼은 화려하게 꾸미기 좋아하여 통깨, 실고추, 잣, 지단, 대추 등을 모양 내어 올리는 고명이 발달했다. 이곳 말로 ‘입사치를 부린다’고도 한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부녀자들의 빼어난 음식 솜씨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해 ‘맛의 고장, 전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 옛 문헌에서 전주 음식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 연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전주는 아쉽게도 타 지역의 「음식디미방」이나 「수운잡방」과 같은 고문헌은 전해지지 않는다. 솜씨 좋은 명인도 많지만, 진정한 뿌리를 찾기 위해선 문헌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근현대 문헌을 뒤지게 됐다. 백여 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에서 전주 음식과 관련된 내용은 두세 줄에 불과하지만 나에겐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예를 들어 전주에 폐백 명인이 있지만, 이분은 어머니에게 폐백 음식을 배워 그 사실만으론 전주 폐백이 옛날부터 우수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긴 힘들었는데 드디어 문헌 속에서 관련된 구절을 찾았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하곤이 18세기 초에 쓴 「남유록」에는 ‘전주에서는 박산薄散을 이용하여 공사公私의 잔치와 고임상에 차려 쓰는데, 오직 전주사람들이 이것을 잘 만든다’는 기록이 있다. 이 한 문장 덕에 전주가 오래전부터 폐백에 오르는 고임 음식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 최근엔 ‘전주 십미’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꽤 오래전부터 ‘전주에서 유명한 10가지 맛’으로 일컬어지는 전주 십미가 전해져왔다. 십미는 파라시, 열무, 녹두묵, 애호박, 서초(담배), 모자(모래무지), 게, 무, 콩나물, 미나리 등이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근거로 정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의 출처를 찾는 것이 전주 음식의 뿌리를 입증하는 기초 연구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알려진 전주 십미가 기록된 문헌은 3권에 불과했으나, 연구를 통해 23권을 찾아서 정리했다. 앞으로는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한 인용 및 구전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 대학에서는 어떤 강의로 무엇을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전주대에서 ‘전주 음식 실습’과 ‘한식당 창업 경영’ 등을 가르친다. 제자들이 우리 식재료를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들깨와 참깨도 구분을 못하고, 콩나물로 기르는 콩과 메주를 만들기 위한 콩이 같다고 생각하며, 삼겹살을 싸 먹는 깻잎이 들깻잎인지 참깻잎인지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심한 경우에는 뿌리 작물의 잎만 보고는 땅속에 덮인 생강과 당근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한 기본 식재료의 맛과 특성을 알고, 다른 여러 식재료와의 조합으로 맛을 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전라북도 14개 시군에서 사라져가는 향토 음식을 찾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할머니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꾸준하게 쌓아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