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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1997년 이후 한국의 외식 메뉴 1위는 치킨이고

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 가장 친숙한 음식이자 대표적인 닭 요리, 프라이드치킨

‘치킨 먹으러 갑시다!’라고 누군가 외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러 가자는 뜻으로 이해할 것이다. ‘치킨 chicken’은 닭 자체를 뜻하는 영어 단어다.

하지만 한국에서 치킨은 프라이드치킨 자체를 뜻한다. 닭 요리가 프라이드치킨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한국의 닭 요리에는 삼계탕도 있고 닭갈비도 있다. 매운 양념에 탕처럼 끓여 먹는 닭도리탕도 있다. 하지만 유독 프라이드치킨만은 ‘치킨’으로 통칭되곤 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에게 프라이드치킨은 가장 친숙한 음식이자 대표적인 닭 요리다. 심지어 치킨을 떠올리면 행복지수가 올라간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한국의 치킨 사랑은 절대 사랑에 가깝다.

1997년 이후 한국의 외식 메뉴 1위는 치킨이고 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만큼 남녀노소 즐기는 일상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까지도 치킨은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그때는 치킨이라 부르기보다는 ‘통닭’이라는 말로 더 많이 불렀다.

1980년대 이전에는 닭을 식용유로 튀기기보다는 통째로 전기로 구워 팔거나 별다른 양념 없이 생닭에 밑간을 하여 그대로 튀겨낸 통닭의 형태였다. 지금도 여전히 ‘옛날통닭’ 혹은 ‘시장통닭’으로 부르며 조각 닭이 아닌 통째로 튀긴 닭을 팔고 있다.

전기구이 통닭
▲ 전기구이 통닭

♣ 한국의 역사와 치킨과의 상관관계

농업국가였던 한국은 식민지와 6.25 한국전쟁을 겪은 뒤, 공업화에 기반한 산업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1960년대 말부터 수출을 목표로 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해 왔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에 접어든다. 한정된 자본은 농업이 아닌 공업에 집중되었다.

농민들은 공장이 있는 대도시로 이주해 도시의 노동자가 되었고 값싼 밀가루로 배를 채웠다. 이들이 만든 공산품을 해외에 내다 파는 대신 기초 식량은 외국에서 들여왔다.

현대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 식량은 콩과 옥수수다. 콩과 옥수수는 사람도 먹지만 무엇보다 가축들의 사료로도 중요하다. 1970년대 들어서서 콩과 옥수수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사료 산업이 확장되고 그만큼 축산업도 발전하였다.

콩과 옥수수로 닭과 돼지, 소를 길렀고 그중 닭을 가장 많이 길렀다. 1980년대 이전에는 양계업 중에서도 계란을 얻기 위한 ‘산란계업’이 중심이었지만,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닭고기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고깃닭’, 즉 ‘육계업’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식용유도 이전보다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1971년에 처음 출시된 콩기름은 지금처럼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잔치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기름에 굽거나 튀긴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량으로 콩을 수입해서 식용유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서 볶음 요리나 튀김요리도 그 이전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닭과 밀가루, 그리고 식용유가 만나 프라이드치킨이 되었다. 닭을 물에 넣어 끓인 백숙보다도, 껍질은 고소할지 모르지만 살은 퍽퍽한 전기구이 통닭보다도, 기름에 튀긴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한 프라이드치킨의 환상적인 맛을 본 뒤에는 사람들은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프라이드치킨
▲ 프라이드치킨

♣ “반반 무 많이 주세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유독 느끼함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밥상에 김치를 꼭 빠뜨리지 않는데 치킨은 물성만 보면 상당히 느끼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다.

지방질로 구성된 닭 껍질까지 기름에 튀겨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치킨무’라는 마성의 곁들이가 있다. 새콤달콤하고 아삭한 치킨무는 한국 치킨을 더욱 한국 치킨답게 만든 주인공이다.

여기에 1980년대 중반부터 퍼지기 시작한 양념치킨은 고추장과 물엿을 기본으로 한 양념소스를 발라 치킨의 느끼함을 한 방에 물리치면서 단숨에 한국인의 입맛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맛보고 싶어 하는 한식 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으로 양념치킨을 꼽을 정도로 양념치킨은 한식 세계화의 가장 가능성 있는 한식이다. 프라이드치킨도 먹고 싶고 양념치킨도 먹고 싶을 때 우리는 이 한 마디만 외치면 된다. ‘반반 무 많이 주세요!’

반반치킨
▲ 반반치킨

♣ 치킨에 담긴 특별한 날의 풍경

종종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재즈나 R&B, 힙합 장르의 음악으로 오디션을 치르는 뮤지션에게 심사위원들이 ‘소울이 충만하다’라는 말로 상찬을 하곤 한다.

‘소울(soul)’은 직역하자면 영혼을 뜻하지만 치킨이 ‘프라이드치킨’을 뜻하듯, 소울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흑인들의 역사와 문화에 맥락이 닿는다.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느닷없이 백인 노예상들에게 납치되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와 고통과 슬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음악을 ‘소울뮤직’이라 한다. ‘소울푸드’도 흑인 노예들이 고향을 그리며 자신들의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먹던 방식으로 재현해 먹은 음식을 뜻한다.

그중 대표적인 소울푸드가 바로 ‘프라이드치킨’이다. 속설에 따르면 미국 남부 지역의 백인 농장주가 닭 가슴살 같은 부드러운 부위를 먹고 닭의 나머지 부위를 흑인 노예들에게 먹으라고 던져주었고, 흑인 노예들이 고향에서 해먹던 방식대로 강한 향신료(스파이스)에 양념을 해서 기름에 바짝 튀겨먹은 데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확대 재생산된 면이 있다. 흑인 노예들이 먹던 음식 중에는 프라이드치킨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돼지의 내장이나 발, 꼬리, 껍데기 등을 돼지기름인 ‘라드’에 볶아 먹기도 했고 고기를 통째로 굽는 바비큐도 흑인들의 고유한 음식문화다.

하지만 유독 프라이드치킨만이 흑인들의 소울푸드로 알려진 이유는 치킨이 가장 먼저 상업화되고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프라이드치킨을 팔면서 흑인 노예들의 스토리와 이미지도 함께 팔았기 때문이다.

소울푸드는 흑인들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프라이드치킨은 노예의 음식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 사람들에게 마늘 냄새가 난다, 김치 냄새가 난다며 한국인과 김치를 바로 연관시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음식은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할 수도 있고 모욕할 수도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소울푸드는 노예 음식 slavery food의 강력한 이미지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말이기 때문에 유념해야 한다.

어쨌든 소울 충만한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흑인 노예들에게는 고향이 그리운 날이었을 텐데 특별히 누군가의 혼인 잔치나 장례식, 그리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중요한 의례가 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특별한 날을 떠올리며 영혼이 흔들리는 것은 인류 공통의 감각이다. 즐거웠던 날이나 슬펐던 날들이야말로 눈가도 촉촉해지고 영혼도 충만해지는 날이다. 한국 사람들이 치킨 혹은 통닭을 소울푸드로 꼽는 이유도 바로 그립고 특별한 날과의 연상 작용 때문일 것이다.

반반치킨
▲ KFC Chicken

♣ 특별식이었던 치킨

지금은 치킨은 가장 흔한 음식이 되어 식사로도 먹지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도 특별식이었다. 일단 치킨을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날은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운동회와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또한 생일잔치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기도 했고 방학식 때 성적표를 잘 받아와서 부모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지금보다는 형제자매들도 많아서 한 마리를 시키면 한 사람당 두어 조각 먹으면 한 마리는 금방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닭을 좀 더 잘게 잘라달라 특별히 주문을 했다. 한 사람 당 두어 조각이라도 집어먹자면 그 방법뿐이다. 두 마리를 시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을 텐데, 빠듯한 살림에 통닭이란 별식에 돈을 많이 쓸 수 없어서였을 테다.

게다가 닭 다리는 대체로 남자 형제들이나 어른 남자의 몫이어서 4,50대 여성들에게 닭 다리는 조금 한이 맺힌 부위다.

하지만 이제 한 자녀 가정도 많고 남아선호사상은 가장 빨리 소멸된 관습 중 하나다. 실제로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닭 다리는 누가 먹는지 물어보면 성별과 상관없이 자기가 다 맛볼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치킨 한 조각은 맛볼 수 있었을까? 그나마 살이 많지 않은 ‘닭 모가지’를 먹거나 자기 몫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살아계신다면 닭 다리를 냉큼 집어 어머니 손에 쥐어드릴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치킨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추억에 잠기곤 한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날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킨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소울’도 충만하다.

♣ 허물없는 사이에 먹기에 맞춤한 음식

아무리 1인 1닭 시대라고는 하지만 치킨은 친밀한 관계가 아닌 다음에는 먹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다.

예를 들어 첫 소개팅 자리를 상상해 보라. 처음 만난 소개팅 상대에게 허물없이 치킨을 먹으러 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유는 치킨을 먹는 방법 때문이다.

요즘은 간편하게 포크로 찍어 먹을 수 있는 순살 치킨도 있지만 여전히 치킨은 뼈째 튀겨져 나와 맨손으로 들고 먹는다. 여기에 양념치킨을 손으로 들고 먹으면 손에는 끈적끈적한 양념이 묻는다. 그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손가락을 입에 넣고 그대로 빨아먹기도 한다.

종종 치킨무를 손가락 그대로 집어먹기도 한다. 치킨을 먹는 방식만 놓고 본다면 매우 원초적이고 원시적이다. 그래서 허물없는 사이인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오랜 연인들이 함께 먹기에 맞춤한 음식이다.

이제 ‘1인 1닭’시대라 하여 혼자서 치킨을 먹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혼자 먹기에는 양도 많아 누군가와 함께 할 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공동체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국 사람들은 치킨을 스포츠와 함께 즐긴다. 야구 경기장에서 치킨을 먹으면서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는 것은 한국인들이 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게다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치킨을 먹으면서 거리 응원에 나섰고 한국 축구팀은 역대 최강인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래서 치킨 먹기가 더 즐거워졌다. 이후에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에는 치킨을 함께 즐기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Fried Chicken Set
▲ Fried Chicken Set

♣ 눈물 반, 웃음 반의 음식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기억 중에 하나였을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진 이 참사로 나라 전체가 큰 슬픔에 빠졌다. 심지어 이때 치킨점의 매출이 급감하기도 했다.

즐겁고 왁자지껄하게 먹어야 제맛인 치킨을 먹기에는 너무도 깊은 슬픈 나날들이었기 때문이다. 진도 팽목항 부두에 부모와 가족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갖다 놓은 음식도 치킨이었다.

내 자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갖다 놓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식어가는 치킨 한 마리에 모두 담겼다. 그리고 그해 추석, 세월호 희생 학생의 합동 차례상에 차려진 음식도 바로 치킨이었다. 그렇게 치킨은 한 시대의 슬픔과 분노를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인구의 4분의 1이 종사하고 있는 자영업의 대표적 상징도 바로 ‘치킨집’이다. 숙련된 기술과 자본이 부족할 때 그나마 접근하기가 쉽다는 이유만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손해만 보고 가게를 접는 일이 수두룩하다.

오늘은 혹여 대박이 터질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닭을 튀기는 치킨집 사장님들이 전국에 4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닭을 기르는 농민들의 처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음식에서 1차 생산물이 농산물이 차지하는 몫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치킨값이 올랐다며 불만이 많지만 정작 열심히 닭을 기르는 농민들은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도 없고 빚만 쌓여가는 것이 지금의 먹거리 현실이다.

여기에 다니던 직장을 잃고 생계가 절실할 때 사람들이 나서는 일이 바로 배달업이다. 어쩌면 지금 배달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저 사내는 한때는 어엿한 치킨점 사장님이었을지도 모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치킨 배달 오토바이는 목숨을 걸고 도로 위를 위험하게 질주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빨리 가져오라며 재촉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 시킨 ‘반반 치킨’은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이기도 하지만 우리 이웃의 눈물과 땀이 반반씩 튀겨져 온 치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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