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혼주도 건들 수 없다?
❞제주도의 혼례는 돼지를 잡는 일에서부터 시작 되는데 이날을 ‘돗 잡는날’이라고 부른다.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장만하는 모든 일은 마을의 ‘도감(都監)’어르신이 관장하게 되는데 이 도감이라는 직책은 잔치의 음식, 그중에서도 돼지고기에 관해서는 행사의 주인인 혼주보다도 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직책이었기 때문에 도감어르신 큰기침 한 번에 그 집 혼사가 좌우된다고 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존재이다.
도감의 가장 중요한 일은 준비한 음식을 하객의 수에 맞춰 똑같이 배분하여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에 혼주라고 해도 마음대로 음식에 손을 대지 못한다.
도감어르신의 지휘에 따라 돼지를 부위별로 삶아내고 순대도 삶아내는 작업이 하루 종일 진행되면 국물이 진국이 되는데 여기에 모자반을 넣고 밤새 끓이면 제주의 전통음식인 ‘몸국’이 완성된다.
완성된 몸국에는 메밀가루를 풀어 넣고 신김치를 다져 넣어 양념장을 대신하게 된다. 그렇게 끓여낸 몸국과 함께 ‘초불밥’과 ‘괴기반’을 차려내고 손님을 치르는 ‘가문잔치’가 시작 된다.
가문잔치란 말 그대로 집안의 잔치라는 의미이고 초불밥은 잔칫날 지은 첫 밥이라는 뜻이다. 독특한 것은 바로 ‘괴기반’이다. ‘반’은 접시를 뜻하고 ‘괴기’는 ‘고기’를 말하는 것으로 직역하면 ‘고기접시’라는 의미인데 한 사람 분량의 고기를 담은 접시라는 뜻이다.
괴기반에는 돼지수육 석 점과 수애(순대) 한 점, 마른두부 한 점을 담아낸다. 하객 한사람 분의 음식으로 밥, 국과 한두가지 반찬과 함께 괴기반을 나눠주는데 이것을 ‘반을 테운다’고 표현했다.
괴기반에 얹는 돼지고기 또한 특이하게 비스듬히 포를 뜨듯이 썰어 각 부위가 넓적하게 보여 얇지만 풍성하게 보이도록 했다. 이렇게 썰어놓으면 표면적이 좁지만 도톰하게 써는 것보다 껍질과 비계 살코기를 겹쳐 씹을 수 있어 씹는 감이 색다르다.
♣ 몸은 따로 여도 음식은 함께
일반적으로 돼지 한 마리로 200여명 분량의 괴기반을 썰어냈으니 대단한 내공이 아닐 수 없는데 이는 음식 앞에서 모든 이가 공평하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마을 구성원 중에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 몫은 싸서 보내주기까지 했으니 귀한 음식일수록 소외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제주사람들의 공동체 의식과 도감어르신의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담긴 전통 음식문화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