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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국과 찌개, 그것이 문제로다

국과 찌개, 그것이 문제로다

♣ 국물이냐 건더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음식들은 적당한 국물과 건더기가 있어야 한다. 국물만 있다면 누군가 먹다 남긴 것으로 보이고, 건더기만 있다면 요리하다 한눈을 팔아 쫄아 든 것으로 보인다.

국물이 맛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건더기가 없으면 심심하다.

육수나 채수를 따로 내어 국물을 내기도 하지만 건더기 자체에서 우러난 국물도 함께 있어야 한다. 그 이름은 건더기에 따라 붙여질 때가 많으나 그것이 국물에 잠겨 있어야 온전한 이름으로 불리니 결국 승부가 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말에서도 그렇다. ‘국물도 없다’는 말은 건더기의 격을 높이는 말이다. 어떤 일을 하고 무언가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몫이나 이득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이 말을 쓴다.

‘국물도’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건더기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한 말이다. ‘말할 건더기가 없다’는 말도 재미있다. 이때의 ‘건더기’는 ‘거리’로 바꿀 수 있는데 ‘거리’는 ‘재료’와 뜻이 통한다.

건더기가 없으면 재료가 없는 것이니 국이 될 수 없다. 국물과 건더기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는 취향의 문제이다. 그러나 결국 국물과 건더기 모두가 국을 이루는 것이니 아낌없이 먹는 것이 ‘국물도 있게’ 먹는 것임은 ‘더 말할 건더기’가 없다.

국과 찌개, 그것이 문제로다 No1.

♣ 따로냐 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본디 국과 밥은 따로 나온다. 서로 다른 그릇에 따로 담겨 나와 번갈아 먹으니 본래 따로다. 그러나 밥을 먹다 어느 시점에서 흰밥을 듬뿍 떠서 국에 말아 먹는다.

숟가락이 번갈아 오가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지만 밥과 국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쁜 장터에 ‘국밥’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름 그대로 밥과 국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온다. 바쁠 때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 주기도 하고 속도 풀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다 어느 날 ‘따로국밥’이 등장한다. 본디 둘이었던 것이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둘이 된 것이다.

밥과 국 시절의 국은 밥의 조연이다. 그 이름 자체도 ‘밥상’인 상에서 밥을 훌훌 잘 넘기게 하기 위한 보조 음식일 뿐이다.

그 둘이 국밥이란 이름으로 만났을 때는 공동 주인공이 된다. 끼니로 밥을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인들이 다른 반찬은 포기하더라도 국만은 포기 못하고 함께 먹으니 그렇다.

비록 국그릇에 밥 한 덩이가 담기는 것이지만 그 둘이 조화를 이뤄야 국밥이 되니 어깨를 나란히 겨룬다. 그러나 따로국밥에 이르러서는 국이 주연이 된다. 밥은 당연히 따라 나오는 것이니 무슨 재료로 국을 끓였느냐가 이 음식의 승패를 결정지으니 그렇다.

국과 찌개, 그것이 문제로다 No2.

♣ 뜨거우냐 시원하냐 그것이 문제로다

음식에 따라 차갑게 먹을 것은 차갑게 먹고 뜨겁게 먹을 것은 뜨겁게 먹는다지만 이 음식은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밥상에 식구들이 둘러앉을 무렵까지 끓이다 따끈하게 내야 한다.

그것도 부족해 열 보존이 잘 되는 뚝배기에 끓여내 밥상 위에서도 보글보글 소리가 나게 한다. 더 심할 때는 펄펄 끓는 지옥의 물처럼 보이는 그것을 쇠 집게로 집어 받침 위에 얹어 식탁이 타는 것을 막기도 한다.

아니, 아예 한국인의 발명품 ‘부루스타’를 밥상 한가운데 떡하니 놓고 끝까지 끓이며 먹는다. 바쁜 장터에서도 국밥을 만들 때 뚝배기에 국물을 몇 차례 담았다 쏟았다를 반복하는 토렴을 해서 따끈한 국밥을 만든다. 뜨거움은 이 음식의 생명이다.

그러나 이 음식은 시원해야 한다. 뜨끈뜨끈한 국물이 혀와 입천장을 공격하고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시원하다고 말한다.

고춧가루를 잔뜩 풀어 넣어 입에서는 불이 나는데 그것이 식도를 지나 위에 도달하면 시원하다고 말한다. 체온보다 높은 열탕에 몸을 담그며 나지막하게 외치는 그 말과 같다.

상식적으로는 절대로 성립될 수 없는 표현이지만 한국인들은 이 말의 뜻을 알고 쓴다. 한국에 오래 머물며 한국 음식과 한국의 삶에 익숙해진 이들도 비로소 이 말을 쓴다. 이 말의 참뜻을 몸으로 체험하고 입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완전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국과 찌개, 그것이 문제로다 No3.

♣ 경계가 어디냐 그것이 문제로다

뜨겁지만 시원한 맛을 아는 한국인도 영원히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김치, 두부, 돼지고기 등 들어간 재료는 똑같은데 그 음식의 이름은 국, 찌개, 전골, 탕 등 제각각이다.

‘국’은 본래 국이니 더는 분석할 수 없지만 ‘찌개’는 ‘찌다’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쪄서 하는 요리는 김을 올려서 조리를 하니 국물이 생길 수 없다. 따라서 ‘찌다’에서 유래했지만 실제 음식은 단어의 본뜻과는 멀어졌다.

게다가 찌개란 말이 본래 있었던 말이자 음식이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옛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 찌개란 말이 아예 없고 모두 국으로만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전골과 탕이 끼어들면 더 복잡해진다. 전골도 과거에는 쓰이지 않는 말이었고 어원도 불분명하다. 한자어처럼 보이고 ‘煎骨’이라 쓰기도 했었는데 한자 각각의 뜻을 뜯어보아도 의미가 잘 안 들어온다.

이에 비해 ‘탕 湯’은 한자에서 온 것이니 그 유래는 분명하다. 그러나 쓰임이 너무 넓다. 설렁탕에서는 국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듯한데 매운탕을 생각해 보면 찌개와 같은 뜻으로도 쓴다.

결국 답이 없고 경계도 모호하다. 같은 재료로 끓였는데 국물이 많으면 국이고 적으면 찌개다. 같은 음식을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돈을 내고 먹었으면 전골이고 뭔가 오래된 느낌을 내려면 탕이다.

국과 찌개, 그것이 문제로다 No4.

♣ 정이냐 영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끼니마다 국물이 필요하지만 얼큰한 국물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때가 있으니 바로 과음한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는 그 시점이다.

이런 날 먹어야 한다고 믿는 음식은 ‘해장국’이란 이름으로 따로 불린다. 주된 재료는 여러 가지여서 그 앞에 북어, 선지, 콩나물 등이 붙지만 이 음식의 목적은 전날의 술기운을 가시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그 주된 대상이 뱃속이냐 머리냐가 문제이다.

마실 때는 즐겁지만 과하면 독이 되는 이 술은 머리에는 지독한 두통을 남기고 배속에는 심한 울렁거림을 남기기 때문이다.

국은 고유어이지만 ‘해장’은 한자어일 것으로 보인다. 짧은 한자 실력으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解帳’ 즉 ‘장을 풀다’의 뜻이다.

뜨끈한 해장국 한술을 떠 넣으면 식도와 위까지 찌르르 한 기분에 얽혔던 장이 풀어지는 느낌이 나니 개연성이 더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아니다. 해장은 본래 ‘해정 解酲’이었다. 어려운 한자 ‘酲’은 숙취를 뜻하니 숙취를 풀어주는 국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해정’이 ‘해장’의 본래 말이라고 하면 왠지 얼크러진 정신을 푼다는 의미의 ‘解精’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숙취의 증세가 배와 머리로 나타나니 그것을 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밥이 있어야 국이 있다. 좌밥우국이 그렇고, 국밥과 따로국밥이 그렇다. 빵이 있으면 국이 없고 대신 수프가 있다. 밥상에는 밥과 국이 어울리지만 식탁 혹은 테이블에는 왠지 빵과 수프여야 할 듯하다.

식구들이 ‘식구 食口’가 되어 저마다의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던 찌개는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자꾸 지적을 받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국과 찌개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침에 문득 뜨거운 국물로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질 때까지는 국과 찌개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국과 찌개, 그것이 문제로다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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