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안 출신. 부모님 권유로 고등학교 때 초등학생 동생 4명을 데리고 마산으로 유학을 떠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살림을 책임지기엔 한참 어린 아이.
한데 꽤 의젓하게도 고생하는 부모님을 생각해 동생들의 끼니를 챙기고 도시락을 싸는 건 당연한 몫이라 여겼다. 365일 맡은 식사 당번. 부모님이 보낸 제철 채소로 나물도 무치고, 겉절이도 조금씩 담그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번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간장과 된장까지 만들어 먹었다.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커지고 적성을 찾아갔다.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에 가정학과를 지원했다. 졸업 후 거제도에서 요리학원 강사로 일하며 식재료와 조리법을 다시 전문적으로 익혔고, 가르침만큼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요리 연구가 궤도에 올랐을 즈음 제2의 고향인 통영에서 조리학교를 세웠다. 제자 양성에 매진하면서도 향토 식재료 발굴과 개발에 몰두했고, 1996년부터 ‘한려수도 굴 축제’에 감각적인 굴 요리를 내놓으며 통영 굴의 역사를 새로이 썼다.
400년 전통을 이으며 통영의 딸,
박경리 선생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통영인으로 거듭난 황영숙 교장.
이젠 영역을 넓혀 경상남도 향토 음식을 집대성할 목표가 생겼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통 음식에도 눈을 돌려 통제사 음식의 대가 제옥례 선생을 만났고, 그녀의 제자가 되어 그 시절의 영광을 찬란하게 재현했다.
400년 전통을 이으며 통영의 딸, 박경리 선생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통영인으로 거듭난 황영숙 교장. 이젠 영역을 넓혀 경상남도 향토 음식을 집대성할 목표가 생겼다. 그녀의 나이 59세, 쉼 없이 도전하는 붉은 열정에서 세월을 잊은 푸른 꿈이 보였다.
통영의 역사와 지리, 산업, 문화, 음식 등을 공부하는 데 빠져들었다.
그때 확신했다.
통영이 경상남도 향토 식재료와 전통 식문화를 연구하는 데 가치 있는 곳임을.
❞Q. ‘통영 향토 음식 전문가’를 물으면 누구나 황영숙 교장을 떠올릴 만큼, 통영 식문화의 산 증인이 됐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통영이 아니다. 하지만 ‘통영’을 제2의 보금자리이자 또 하나의 고향으로 삼은 건 분명하다.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이 고장에 살면서 미식의 도시 통영에 자연스레 애정을 갖게 됐다. 요리 연구가로서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이곳의 음식이 경상남도 다른 지역보다 버라이어티하고 맛깔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어찌 보면 요리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던 것 같다.
수업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통영의 역사와 지리, 산업, 문화, 음식 등을 공부하는 데 빠져들었다. 그때 확신했다. 통영이 경상남도 향토 식재료와 전통 식문화를 연구하는 데 가치 있는 곳임을.
‘통영 굴 수하식 수협’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고,
1996년 오랜 노력 끝에 주식, 안주와 찬, 간식으로 4가지 섹션을 나눠
30가지가 넘는 굴 요리 레시피를 내놓았다.
❞Q. 다채롭고 품격 있는 ‘굴 요리’로도 향토 요리사에 한 획을 그었다.
사실 통영 사람들은 굴을 요리해 먹을 줄 몰랐다. 굴이 워낙 싱싱해 날것 그대로 먹어도 충분히 훌륭한데 굳이 조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바닷가 근처 사람들은 대개 바다의 식재료를 잡는 즉시 생으로 즐겨 먹는다.
일종의 특권이랄까. 유통 과정이 필요 없으니 선도 높은 해산물은 양념도, 조리도 없이 자연 그대로 최상의 맛을 냈다. 하지만 현지에서 이토록 맛 좋은 ‘굴’을 제대로 유통시켜 수익을 내려면, 또 통영이 대표적인 굴 산지로 자리매김하려면, 굴 요리를 개발해 전국 각지로 보급해야만 했다.
이렇게 ‘통영 굴 수하식 수협’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고, 1996년 오랜 노력 끝에 주식, 안주와 찬, 간식으로 4가지 섹션을 나눠 30가지가 넘는 굴 요리 레시피를 내놓았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의 체인 레스토랑 <굴사랑>에서도 굴 메뉴 의뢰가 들어왔다.
Q. 2013년 국내 굴 소비 촉진과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2013 교육 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굴사랑>은 국내 최초 굴 요리 전문점이었다. 수십 개의 체인점이 방방곡곡에 들어서 다른 브랜드의 굴 전문 레스토랑도 속속들이 등장했는데, 이러한 결과가 모여 수출에 의존하던 굴 소비량을 내수시장으로 돌릴 수 있었다.
또 「굴과 키조개, 미더덕을 활용한 수산 가공품 연구 개발」 논문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고맙게도 작은 노력상 하나까지 세세히 인정해준 것 같다.
Q. 당시 가장 공들여 개발해 특색 있는 굴 요리를 소개한다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을 만큼 모두 내 자식 같은 요리들. 그래도 그중 ‘한려수도 굴 축제’ 때마다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메뉴는 ‘굴 탕수’와 ‘굴 깐풍’이었다.
특히 굴 탕수는 고구마 녹말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가 두었다 윗물은 버리고 앙금만 쓰는 ‘된녹말’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계란물을 넣어 반죽을 더 걸쭉하게 만든다.
단 ‘굴 탕수’는 다른 탕수에 비해선 반죽물을 약간 무르게 할 것. 굴의 질감이 연해 터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튀김옷을 입힌 굴을 두 번 튀겨 바삭한 식감을 살리고, 참기름을 뿌려 고소한 맛을 더하면 완성. 소스엔 물과 설탕, 식초, 간장, 물녹말 외에도 토마토케첩을 1.5술 정도 살짝 섞어 새콤달콤한 풍미를 살리는 게 포인트다.
통영 전통 음식의 산증인인 제옥례 선생의 집을 찾아가 전수자로 인정받았고,
감성돔의 뒤쪽으로만 칼집 내 통영산 조갯살과 제철 나물로 도미 뱃속을 채우는 ‘도미찜’
말린 대구 껍질을 벗겨 만두피로 쓰는 ‘대구껍질 누르미(누름)’ 등
수십 가지 요리를 반복해서 배웠다.
❞Q. 유서 깊은 ‘통제사 상차림’을 전수받은 제옥례 선생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통영 전통 음식은 한양의 궁중 음식과 많은 부분 맞닿아 있다. 당시 한양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해 통영으로 내려온 관리들이 궁중 나들이를 하며 익힌 맛을 주부들을 통해 재현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식 하나하나는 시어머니의 손에서 며느리로, 며느리의 손에서 손자며느리로 전해져 통영의 일상 음식으로 내려왔고, 제옥례 선생은 그 손맛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특히 제옥례 선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최초로 ‘통제사 상차림’과 관련된 식재료와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록을 남겼다. 이렇듯 통영 전통 음식의 산증인인 제옥례 선생과의 만남은 숙명처럼 다가왔다.
선생의 집을 찾아가 손끝이 야물다는 칭찬을 들으며 전수자로 인정받았고, 감성돔의 뒤쪽으로만 칼집 내 통영산 조갯살과 제철 나물로 도미 뱃속을 채우는 ‘도미찜’, 말린 대구 껍질을 벗겨 만두피로 쓰는 ‘대구껍질 누르미(누름)’ 등 수십 가지 요리를 반복해서 배웠다.
Q. 통제사 음식의 특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나?
궁중 음식의 기본을 따르되 크게 다른 점이라면 통영의 바다 산물을 더욱 풍성하게 사용하는 것. 일례로 시인 김춘수가 좋아한 ‘방풍 탕평채’는 봄에 나오는 털게를 쪄서 살을 발라낸 뒤, 찐 방풍나물과 데친 해삼, 볶은 조갯살을 더해 참기름과 간장 양념으로 깔끔하게 무쳐 낸다.
한데 방풍잎(방풍나물)은 섬가와 갯가에 많이 나는 것으로, 바다 근처가 아니면 과거엔 쉽게 먹을 수 없는 나물이었다.
또 설음식이자 차례 음식으로도 올린 ‘해삼통지짐’은 삶은 해삼 속에 다진 소고기와 조갯살, 두부, 야채 등을 채워 기름을 두른 팬에 지진 것. 이 요리도 주재료인 싱싱한 해삼이 없으면 존재조차 할 수 없는 요리였다.
통제영은 전라·경상·충청 등 3도의 수군 주둔지를
독자적으로 다스렸기 때문에 전국 각지의 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왔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통영의 다채로운 식재료와 여러 지방의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쳐졌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맛의 정수만 남아 통영의 미식을 완성했다.
❞Q. 백석 시인의 「통영」을 보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 할 만큼 통영의 맛을 군침 돌게 표현했다. ‘경상남도의 전주’로도 불리는 통영의 음식은 왜 맛있기로 소문이 났을까?
통제사 음식도 통영 남해 바다의 짙은 색채가 묻어난다. 다시 말해 버라이어티한 남해산 식재료가 산해진미의 일등공신. 봄엔 도다리 쑥국, 여름엔 하모회와 하모탕, 가을엔 멸치무침, 겨울엔 물메기탕과 대구탕 등 철마다 달라지는 향토 요리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겁다.
또 통제영은 전라·경상·충청 등 3도의 수군 주둔지를 독자적으로 다스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국 각지의 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왔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통영의 다채로운 식재료와 여러 지방의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쳐졌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맛의 정수만 남아 통영의 미식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통영 요리의 결정판은 바로 다찌. 고급스러운 통제사 음식부터 서민들이 즐긴 향토 음식까지 총 망라해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10월이면 본격적으로 굴이 출하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찬바람 부는 12~2월 초까지 황홀한 맛을 뽐내는 자연산 굴을 맛볼 수 있다.
또 봄엔 구이로 먹는 뽈락(볼락)을, 가을엔 뽈락김치(볼락김치)를 담가 먹는다.
❞Q. 가을을 맞아 제철인 ‘맛있는’ 통영 식재료를 소개해달라.
남해 죽방멸치가 좋다고 소문이 났지만, 권현망으로 잡는 통영 멸치도 이에 못지않다. 멸치 중 큰놈인 대멸을 데려와 내장을 빼고 익혀서 파와 고춧가루,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면 그대로 밥도둑이다. 또 10월이면 본격적으로 굴이 출하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찬바람 부는 12~2월 초까지 황홀한 맛을 뽐내는 자연산 굴을 맛볼 수 있다. 또 봄엔 구이로 먹는 뽈락(볼락)을, 가을엔 뽈락김치(볼락김치)를 담가 먹는데, 무와 함께 삭혀 뼈가 완전히 물러질 때 기가 막힌 맛을 낸다.
Q. 이미 오래 전부터 통영 향토 음식은 물론 경남 전역의 음식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연구해왔다고 들었다.
낙동강 유역의 곡창지대를 비롯해 밭에서 지천으로 자라나는 풍부한 농산물, 지리산과 가야산, 덕유산이 내놓은 산채와 버섯, 동남쪽 바다인 남해에서 건져 올린 신선한 수산물까지. 전국 팔도 가운데 날 때부터 제대로 복 받은 땅덩이였다.
특히 밀양부를 중심으로 한 경남 동북부, 진주 목사를 중심으로 한 경남 서남부, 이 두 지역에 남아 있는 양반가의 향토 음식은 영구 보존할 가치가 있다.
또 경남 향토 음식은 젓갈을 다양하게 쓰진 않지만, 김치를 비롯한 각종 요리에 멸치젓갈이 빠짐없이 들어간다. 대체로 매콤하고 짭짤한 맛을 선호하는데, 경남 내륙지방은 육고기를 즐길 만큼 여유로웠고 상대적으로 해안지방은 생선을 고기라 부르며 만족했다.
‘멸장’은 멸치젓갈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담근 간장으로,
요리의 감칠맛을 내는 데 여전히 많이 쓰인다.
또 바닷가 근처에선 비린내나 잡내 등을 잡으려 ‘방아잎’을 넣는데,
동남아 향신료인 고수 못지않게 향이 독특하다.
❞Q. 경상남도 향토 음식에서 내륙과 해안의 차이점이라면?
다르게 쓰는 간장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진주와 밀양, 산청, 합천, 김해 등 내륙지방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만드는 콩 간장을 썼고, 남해와 사천, 통영, 마산, 거제 등 해안지방은 멸장(멸간장)과 어간장을 만들어 썼다.
그중 ‘멸장’은 멸치젓갈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담근 간장으로, 요리의 감칠맛을 내는 데 여전히 많이 쓰인다. 또 바닷가 근처에선 비린내나 잡내 등을 잡으려 ‘방아잎’을 흔히 넣는데, 동남아 향신료인 고수 못지않게 향이 독특해 호불호가 갈리는 향신채다.
Q. 끝으로 경남 향토 요리 연구가로서 가진 목표는 무엇인가?
요리해온 세월만 37년, 통영에 사는 제자만 해도 4만 명이 넘는다. 학교에선 언제나 초심으로 훌륭한 제자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 제옥례 선생에게 전수받은 통제사 음식을 원형 그대로 후대에 전수하는 것. 통영전통음식연구회를 통해 더 많은 제자들과 전통의 기록을 나누고 공유할 계획이다. 또 경상남도엔 현지인조차 가물가물한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 많다.
부족한 사료를 탓할 게 아니라 학회와 구전되는 자료를 찾아다니며, 경상남도 향토 음식을 집대성할 만한 연구 기록을 남기고 싶다.
요리에 대한 애정과 욕심만큼은 10대 때 그대로다. 통영산 식재료에 선조의 지혜를 더하고, 나의 아이디어를 입혀 새로운 경상남도 향토 음식을 개발하는 데도 사명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