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한식, 이북 음식을 말하다. 탈북 여성 최초로 이화여대 식품영양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이끄는 이애란 원장에게 이북 음식을 물었다.
조부모가 월남해 그녀 나이 11살에 일가족이 산간지대로 추방당했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도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공부. 출신 성분 때문에 이공계 대학만 진학할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없이 ‘식품 공학’을 전공했다.
1997년 탈북을 감행한 뒤 남한에서 정착하려 택한 것도 음식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많은 탈북자들과 함께 정착하기 위해 결정한 방향인 만큼 제대로 북한 음식을 가르치고 선보이는 일에 매달려왔다. 이렇게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설립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Q.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은 무얼 하는 곳인가?
말 그대로 북한의 전통 음식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탈북자의 80%가 여성인데, 연령까지 높아 소위 말하는 ‘좋은 일자리’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에선 그간 직업 훈련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해왔다.
연구원을 설립한 2009년 당시 한국 정부가 관광 산업 활성화 정책을 활발하게 펼치던 때였다. 관광에서 먹거리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고, 가기 힘든 북한의 음식을 한국에서 맛볼 수 있다면 귀한 관광자원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는 아쉽게도 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아 중단하고 연구원 아래층에서 <능라밥상>만 운영 중이다.
Q. 2012년 오픈한 <능라밥상>에선 어떤 음식을 선보이나?
탈북자 6명과 함께 운영하며 북한의 전통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24년간 요리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많이 배우고 먹어볼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전수 받은 걸 바탕으로 식품 공학을 전공한 만큼, 식재료의 물성을 고려해 재료를 조합한다.
쉬운 예로 돼지고기는 사과와, 소고기는 배와 궁합을 맞춘다. 대표 메뉴인 평양냉면과 온면의 경우 메밀 100% 면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어복쟁반은 유래 그대로 소의 뱃살을 삶아 만들고 있다. 마지막에 메밀 면을 넣어 건져 먹는 음식인데, 바닥에 잘 달라붙어 이것만 당면으로 대체했다. 당면은 북한에서도 먹는다. 담백한 맛을 즐기는 분들이 해주비빔밥도 좋아한다.
삶은 닭고기와 때마다 달라지는 나물 몇 가지를 얹고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다. 본래 돼지기름으로 밥을 볶기도 하는데, 호불호가 있는 만큼 흰쌀밥으로 낸다. 북한 고위 간부들의 술안주인 ‘돼지앞다리찜’은 독일의 학센과 비슷해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좋다.
앞다리를 삶은 후 간장 양념에 졸여 쫄깃하고 감칠맛 있는 껍데기와 간이 속까지 깊게 밴 짭조름한 살코기 맛을 즐길 수 있다. 한약 등을 넣고 삶는 족발과는 다르다. 사람마다 몸에 맞는 약재가 다른 만큼 대중음식점에서 약초를 사용하는 건 삼가고 싶다.
Q. 평양냉면이 유행하면서 ‘심심한 맛’을 이북 음식의 상징처럼 여기기도 한다.
평양냉면도 본래 꼭 동치미 국물을 30% 가량 넣어야 한다. 무가 메밀의 독을 해소시켜줄 뿐 아니라 국물에 간을 더하는 역할을 하니 사실 ‘심심하다’는 말도 알맞지 않다.
함경도 지방의 음식은 맵고 짜다. 동해안에서 나는 생선들이 크기가 매우 크고 비리기 때문에 고춧가루를 많이 쓸 수밖에 없다.
반면 서해안에서 나는 생선들은 작고 맛이 달아 고춧가루를 많이 쓰면 오히려 맛이 상한다. 그래서 평안도, 황해도, 개성 지역은 대부분 음식 빛깔이 하얗다. 물론 간은 다 되어 있다.
평양냉면과 온면의 경우 메밀 100% 면을 개발해 사용한다.
평양냉면도 본래 꼭 동치미 국물을 30% 가량 넣어야 한다.
❞Q. 우리가 먹는 이북 음식은 정말 이북의 맛인가?
이북의 맛일 수도 있겠으나, 환경이 다른데 어찌 같다고 할 수 있겠나. 그보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건 대개 지금 우리가 먹는 이북 음식들이 아주 전통적이고, 흔히 잘 사는 집에서 먹던 음식이라는 점이다. 일반 사람들은 지금도 풀죽을 먹고 옥수수밥을 먹는 게 현실이다.
배급제에서 전통 음식 문화가 꽃피울 리 없다. 어복쟁반은 지금 북한 사람들은 먹어본 적도, 누군가에게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음식일 게다. 세월이 지났으니 <옥류관> 등에서 선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전에는 북한에서도 문헌상으로만 존재한 음식이었다.
도살장에서 백정이 소고기를 팔고 상품 가치가 없는 얇고 쭈글쭈글한 뱃살을 끓여 먹던 것인데, 양반이 지나가다 얻어 먹어보니 그 맛이 하도 기가 막혀 임금에게 진상해서 어복쟁반이란 설도 있다.
대개 지금 우리가 먹는 이북 음식이 흔히 잘사는 집에서 먹던 전통 음식이다.
어복쟁반은 현재 북한 사람들은 먹어본 적도 없는 문헌상의 음식이거나
들어본 적도 없는 음식일 것이다.
❞Q. 「북한식객」이란 책을 펴냈다.
이북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엮었다.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등 사회상은 음식에도 나타나기 마련, 북한을 알리는 또 하나의 도구로 음식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 작업했다. 2011년 현 한식진흥원과 북한 음식 아카이브도 제작했다.
방대한 양의 레시피 작업을 했는데, 사람들이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도록 일부러 쉬운 걸 많이 골랐다. 예를 들어 평양온반은 소금을 넣고 삶은 닭고기, 녹두전, 숙주나물만 넣고 국물을 부어 먹기만 하면 된다. 취향에 따라 나물을 추가해도 좋다.
종종 출장 강의를 나가 온반을 직접 만들어 먹는 시간을 가지면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더라. 어려운 점도 있었다. 노루나 사슴처럼 북한엔 산짐승 요리가 많고 특정 지역에서 많이 나는 특수한 식재료를 구하느라 애썼던 기억이 있다.
Q. 산짐승 말고도 북한만의 고기 문화가 있나?
주로 돼지고기를 먹고 그마저도 명절이나 잔칫날에야 고기 요리를 먹는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는 죽어야 먹고, 간부들이 먹는 소고기는 대부분 미국산 소를 비육한 거다. 그러니 이북 음식을 선보이는 데 꼭 한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는 어복쟁반이나 국밥, 순대처럼 주로 고기에 집중한 이북 음식이 유행하고 있는데, 북한에선 생선도 아주 많이 먹는다. 명태순대, 숭어찜, 빙어탕 등 다양한 생선 요리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Q. 향후 계획은?
거창한 건 없다. 지금처럼 <능라밥상>에서 이북 음식을 넘어 ‘정직한 음식’이 무언지 보여주고 싶다. 음식이 곧 사람의 몸을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