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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워낙 흔해서 많이 먹으나 별맛이 없다. 박상현 칼럼리스트

워낙 흔해서 많이 먹으나 별맛이 없다, 명란젓 박상현(맛칼럼리스트)

이 젓이 워낙 흔해서 많이 먹으나 맛은 별맛이 없다

인류가 먹거리를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시절. 그 시절 인류에게는 공통된 고민이 있었다. 먹거리를 인간의 의지보다는 자연의 형편에 의존해야 하는 까닭에 이를 좀 더 오래 두고 먹는 법을 고안해야 했다.

인류는 마침내 두 가지 해결책을 찾았다. 하나는 채소나 고기를 말려서 건조하는 것이었고 하나는 소금에 절이는 것이었다. 육포나 시래기처럼 식재료를 말려서 그냥 먹거나 조리해서 먹는 방식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거듭해 온 식문화의 원형이다.

그런데 소금에 절이는 방식에서는 뜻하지 않은 혁신이 일어났다. 소금에 절여 둔 채소나 고기에 미생물이 관여해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변화의 원인도 변화가 가져온 결과의 안전성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은 그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냥 소금에 절였을 때에 비해 감칠맛이 몇 배나 증가한 것이다. 인류는 적절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미생물의 활동은 야채나 고기의 숨겨진 맛을 끌어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명란젓 소금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소금이 부패를 막고 미생물에 의해 단백질에 결합되어 있던 아미노산이 분리돼 감칠맛이 증가하는 일련의 과정이 발효임을 밝혔다.

발효를 발견한 후 인류의 식생활을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채소와 고기를 보다 오래 그리고 더 맛있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발효의 종류와 대상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급격하게 확장되었다.

쌀을 비롯한 각종 곡식을 가루내지 않고 낱알 그대로 익혀 먹는 입식이 주식이었던 한반도에서 발효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채소 발효로부터 비롯된 대표 김치는 한민족을 대표하는 발효음식이 되었고 콩을 발효시켜 만든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은 거의 모든 한국음식에 활용되었다

♣ 콩 발효 이전에는 생선 발효가 있었다.

삼 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는 생선은 흔한 식재료였다. 콩처럼 따로 재배할 필요도 없었고 콩 발효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소금에 절여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반도 근해에서 잡히는 거의 모든 생선은 발효의 재료가 되었다. 이를 통틀어 젓갈이라 불렀다.

다양한 젓갈 종류

♣ 다양한 생선 가운데서도 명태는 특히 각별했다.

비록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명태는 한반도 근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생선이었다.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북어변증설>에는 “한군데 몰려 있어 한 마리를 잡으면 수십 마리가 따라와서 사방이 가득 찬다.

매일같이 밥반찬으로 쓰인다. 여항의 가난한 백성들은 신령에게 제사를 모실 때 말린 것으로 중요한 제수로 삼는다. 가난한 선비의 집에서도 제사 때 올려야 하는 각종 고기 제물을 이것으로 대신한다. 그러니 값은 싼데 비해 귀하게 쓰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보다 더 구체적인 증거는 명태를 부르는 명칭이다. 명태는 어획 시기, 어획 장소, 어획 방법, 크기, 건조 정도, 냉동 여부, 포장 방식, 가공 방식 등에 따라 수백 가지의 이름 있다. 세상 그 어떤 생선도 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사례가 없다.

그만큼 한반도 민중의 삶과 친숙했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친숙한 생선이다 보니 명태 한 마리를 두고 부위별로 다양한 젓갈을 만들었다. 살코기로는 식혜, 알로는 명란젓, 아가미로는 서리젓, 창자로는 창란젓을 만들었다. 명태 한 마리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 섬세한 쓰임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명태

♣ 명태로 만든 젓갈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것은 명란젓이다.

겨울에 잡은 명태에서 꺼낸 알집을 소금에 절여 삭힌 명란젓은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홍선표의 <조선요리학> 등의 근대 한식 문헌에서 겨울철 대표 젓갈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일본에서 훨씬 더 많이 소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1876년 강화도조약의 체결로 조선은 부산항에 이어 1880년 원산항을 개항한다. 당시 원산항은 명태의 최대 집산지였다. 원산항으로 이주해 온 일본 상인들은 명태를 말려 황태나 북어로 먹는 조선인 특유의 식습관을 목격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뛰어들던 그들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명태 잡이와 가공 사업을 독점하고 조선인은 명태를 가공하는 노동자로 전락했다. 일본 상인들은 명태나 명태의 부산물을 임금 대신 지급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런데 의외로 큰 저항이 없었다.

이유를 살펴보니 조선인 노동자들은 임금대신 받은 명태와 부산물을 모아 다양한 젓갈을 만들고 있었다. 적잖이 놀란 일본 상인은 그중에서 특히 명란젓에 주목했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날치, 청어, 연어 등의 알을 다산과 다복의 상징으로 여겨 즐겨 먹었다.

그들은 명란젓 역시 같은 개념으로 이해했다. 원산에서 만든 명란젓은 항아리에 담겨 부산을 거쳐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닿았다. 당시 이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히구치상회’는 부산항과 시모노세키항에 명란젓을 보관하는 저장시설을 따로 둘 정도로 만만찮은 규모였다.

명란젓

♣ 명란젓이 다양한 젓갈 중에서도 유난히 비싼 이유는

원재료인 명란을 전량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제조과정 역시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명란젓은 해동, 1차 조미, 2차 조미의 순서로 만들어 진다. 우선 러시아 오호츠크해에서 명태를 잡자마자 배에서 바로 알을 꺼내 급속 냉동을 시킨다.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유통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냉동된 명태 알을 해동시키는 데만 하루가 걸린다. 냉동 이전의 신선한 상태를 복원해야 하는 까닭에 온도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하기 때문이다. 해동된 명태 알은 소금물에 절여 1차 조미를 한다.

과거에는 높은 염도에 장기간 숙성 시켰으나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낮은 염도에서 1~2일 정도로 충분하다. 1차 조미가 끝난 명란은 조미액에 담가 2~3일 정도 숙성을 시킴으로 완성된다.

같은 명태 알을 사용함에도 제조사 마다 맛이 다른 이유는 2차 조미 시 사용되는 조미액이 제조사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재래식 명란젓은 양념을 발라 숙성시켰으나 요즘은 외관상 깔끔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조미액에 담그는 방식을 선호한다.

명란젓 밥상

♣ 이 젓이 워낙 흔해서 많이 먹으나 맛은 별맛이 없다

1924년에 출판된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명란젓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다.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지고 명란젓 소비량에 있어서도 일본에 훨씬 못 미치는 지금의 상황에서 보자면, 저 시절의 시큰둥함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다. 별맛이 없어도 좋으니 명란젓이 너무 흔한 그런 시절이 제발 좀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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