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발달 역사를 보면 ‘무엇을 먹을까’ 문화가 아니라
‘무엇으로 먹을까(뭐에다 먹지?)’문화이다.
❞한식 밥상을 차릴 때 항상 밥상 받으신 분을 생각하고 대접하기를 즐겼다. 좋아하는 음식과 건강한 밥상을 생각하는 등 그만큼 배려하는 마음이 깃든 것이다. 그렇게 밥상 받으신 분을 존경하면서도 끝까지 밥상을 받으신 분의 선택권을 배려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식은 서양과 같이 요리(dish)문화가 아니라 밥상문화라 하는 것이다. 이 밥상문화에 예절과 철학이 깃든 것이다.
♣ 존경과 배려가 담긴 한식
밥상문화에서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은 항상 밥과 국, 그리고 반찬과의 조화와 균형을 많이 생각하였다.
오늘날 이 부분이 한식의 영양학적 균형과 사람의 건강과의 조화의 철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다른 나라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그 이후의 선택권은 사라진다. 그러나 한식의 밥상문화는 밥상 위에서 입으로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선택권이 보장되는 소위 젓가락문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들은 한식을 대접 문화로 승화시킨 것이다. 넷이서 서양 레스토랑에 가면 네 개의 메뉴판을 각자 가져오지만, 넷이서 한식집을 가면 메뉴판이 하나만 나와도 충분한 이유이다.
이러한 밥상 문화로 우리 조상들은 누구를 위한 밥상이냐, 언제 먹는 밥상이냐, 어느 계절에 먹는 밥상이냐에 따라 전통적으로 다양한 밥상을 차려왔다.
집안 어른에게 올리는 밥상, 손님이 왔을 때 차리는 밥상, 일할 때 먹는 밥상이 달랐고, 기우제나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제, 잔칫날의 특징에 따라서도 밥상이 달라졌다.
사람의 탄생, 생일, 결혼 등 잔칫날이나 초상(장례), 제삿날이나 시젯날에 차리는 밥상도 각각 음식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구분했으며, 설날이나 보름, 추석, 단오, 칠석, 동지 등 절기 음식도 때마다 달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철마다도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권대영, 한식인문학, 2019 참조), 우리 조상들은 제철에 나는 재료를 사용하여 밥상을 차리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사람을 대접하는 미덕으로 여겼다.
♣ 균형과 조화, 건강과 다양성을 고려한 한식
일상적으로 매일 먹는 한국인의 밥상은 계절에 따라 텃밭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물거리를 중심으로 한식의 기본 구조와 특징을 갖춰 차려낸 밥상이었다.
밥과 국(탕), 김치를 기본으로 하고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채소류를 이용하여 어머니는 매일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리셨다. 가족의 입맛이나 날씨, 재료에 맞는 다양한 조리법으로 반찬을 구성하였다.
농경학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밥상문화는 정확하게는 특정 지을 수 없으나, 밥과 국이 나타나는 고려시대 이전에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때그때 텃밭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를 중심으로 즉흥적으로 준비하는 밥상(bricolage foods)이었지만, 오랜 경험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으로 오늘날에도 영양적으로 균형이 맞는 상차림을 계절별로 차려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중 어떤 장으로 간을 맞출지는 계절에 따라 또는 나물거리의 종류, 가족의 기호에 따라 그날그날 어머니가 결정하며, 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갖은 양념을 하여 맛을 내는 나물 위주의 반찬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밥상은 영양학적으로 볼 때도 균형이 참 잘 맞추어져 있다.
지금 보면 단백질을 제공할 수 있는 육류, 생선류, 달걀, 두부 등을 이용한 반찬을 한 가지 정도 포함시켜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이 황금비율이 저절로 맞춰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대사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영양소와 피토케미컬(phytochemical)이 골고루 균형적으로 포함되어 매우 건강한 상차림이며, 준비된 음식을 모두 한꺼번에 차려놓고 각자의 영양소 필요량, 기호도, 건강상태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면 봄이 되면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과 무기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산과 들에 나는 향기로운 달래, 두릅, 부추, 곰취 등 봄나물을 이용해 밥상을 차린다.
채소라고는 김장김치와 묵은 나물만 먹다가 봄이 오면 봄나물들이 봄의 싱그러운 정취를 가져다주어 몸이 깨어날 수 있게끔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비타민 B1, B2, 비타민 C 등을 보충해 주어 에너지 대사를 돕고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춘곤증을 이겨낼 수 있도록 했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는 봄나물은 국이나 찌갯거리로 사용하거나, 생채로 무치기도 하고 데쳐서 숙채로 만들기도 하였다. 잎이 넓은 것들은 쌈을 싸 먹기도 하였다.
상추, 곰취, 쑥갓, 미나리잎, 깻잎 등 그 계절에 나는 넓은 잎의 채소는 어떤 것이든 쌈 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밥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과 쌈장을 얹어 먹었다. 쌈은 처음 만났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음식이라기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와 일상에 어울리는 친근하면서 건강한 음식이다.
♣ 강과 논이 있는 환경에서 발달한 한식 문화
우리나라 한식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의 음식의 발달역사는 같은 방향이다. 항상 그 뒤에는 역사적인 배경과 자연적인 배경이 있는 것이다.
즉 과학으로 말하자면, 세계 모든 민족의 음식 발달은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느냐?’가 우선이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느냐?’,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중에도 먹을 수 있느냐?’의 방향으로 수만 년 전부터 발달해온 것이다.
한반도와 만주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민족은 자연적으로 강과 논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곡류와 먹을 수 있는 풀이 많이 나기 때문에 그런대로 축복을 받아(?) 굳이 유목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쌀이나 보리 콩이나 풀이나 어떻게든 먹어야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삶아서 밥을 짓거나, 풀을 데치거나 생체로 나물을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곡류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먹을 것 인가?를 주로 불을 사용하여 해결했고, 풀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 고민하여 발달한 것이 양념 문화이다.
‘어떻게 하면 나중에도 먹을 수 있느냐?’로 우리 민족이 고민한 끝에 수 만 년 전부터 발달해온 것이 김치와 콩 발효음식이 탄생한 것이다.
맛있게 보이는 음식의 색으로는 빨강색이 최고이다. 빨간색이 들어가면 맛있어 보여 군침이 돌고 거기다가 향신료가 들어가거나 새콤한 맛이 들어가면 더 맛있어진다. 그래서 고춧가루를 즐겨 많이 썼고, 마늘과 같은 향신료를 많이 쓴 양념이 발달한 것이다.
이러한 양념문화이기 때문에 우리 음식의 맛은 손맛이라 한다. 이렇게 양념한 것이 먹다 남았는데 나중에도 먹어도 탈이 안 나니 계속 먹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치의 탄생인 것이다. 고추장, 된장 간장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위의 세 가지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한 것이 우리나라에서의 고유의 발효 문화다.
우리나라 발효는 우리 조상의 전통지식과 삶이 깃들여 있는 문화이다. 제철에 나는 나물을 많이 써서 맛있게 먹고 발효를 시켜서 나중에도 먹을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기술이 배려와 균형, 그리고 건강과 어우러진 우리 밥상문화의 핵심이다.
흔히 식품의 지정학적인 역사 특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한 나라라고 한탄하면서, 우리나라가 목축업이 잘 발달하지 못한 것을 예를 들면서 고기(단백질)와 우유를 먹는 기회가 적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우리 민족을 축복받지 못한 민족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몽골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서 나는 풀은 사람이 먹기에는 턱없이 영양이 부족하여 살 수 없다. 사람은 셀룰로스를 분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몽골 민족은 그만큼 축복받지 못한 땅과 기후를 양을 치는 것으로 해결한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들 땅은 양을 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땅이다.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피토케미칼과 같은 제철 채소를 적게 먹으니 평균 수명도 그리 길지 않다. 반면에 중국은 다양한 나물이나 발효 문화가 탄생할 필요가 없었다.
축복 받은 넓은 평야, 장대한 강과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농수산물도 풍부하고, 돼지기름이나 생선 기름이 풍부해서 모든 음식을 튀겨서 요리해 버리면 안전하게 먹는 것이 해결되고 고온에서 요리하니 맛있고, 튀기면 물이 빠져나가니 나중에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음식은 불맛이라고 하게 되는 근원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의 음식은 튀기는 것과 같이 고온에서 조리하므로 프리라디칼(free radical)과 같은 산화물이 많아 건강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한식은
균형과 조화, 존경과 배려, 건강과 다양성, 전통과 문화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