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자연의 영양분을 흡수해 나고 자란 나물과 채소들을 현명하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재료가 지닌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려 먹는 것은 아닐까. 한식예술장인 최향란 찬품장은 진채 장인으로 매우 고집스러운 철학을 갖고 있다.
공장식, 기계식 조리를 거부하고 재료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간을 최소화한다. 그래서일까. 그가 만들어낸 나물을 한입 넣으면 입안에서 봄이 퍼져 흐른다. 장인의 손을 거쳐 탄생한 봄철 나물을 맛보고자 경기도 이천시에 자리 잡은 그의 한정식집을 찾았다.
Q. 선생님은 나물 장인으로 알려져 있어요. 특히 ‘각색 진채’를 만드는 장인으로 인정받으셨죠. 어떤 계기로 관심이 생기셨나요?
나물은 보통 제철에 먹는 게 가장 좋아요. 하지만 한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사시사철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손님들에게 언제든 맛있는 나물을 선보이고 싶었으니까요. 그 결과 염장해서 보관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양을 저장해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덕분에 제철 나물은 물론, 진채도 만들어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Q. 2019년 궁중음식문화재단에서 지정하는 한식 예술장인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20년에는 한국조리기능장에 선정되셨습니다.
2002년부터 경기도 이천시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면서 이천의 쌀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호텔 한정식과 폐백이바지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CIA 요리학교에 연수를 다녀온 것도 결국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마 이러한 제 노력을 인정해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Q. 진채란 무엇이고,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묵은 나물을 뜻합니다. 나물을 철이 아닌 시기에 먹기 위해 말리 거나 염장해서 두고 먹는 거지요. 묵힌다고 맛과 향이 달아나지 않아요. 표고버섯이나 고사리는 말리면서 오히려 향과 영양이 상승하고, 소금에 절인 죽순이나 곤드레나물 등도 나물 고유의 향을 그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
Q. 저장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과거에는 진채가 섬유질과 비타민을 사시사철 섭취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고 하죠. 진채를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먼저 염장을 거쳐 보관해둡니다. 염장할 때는 최대한 산소를 차단해 부패를 막아야 합니다. 염도도 중요하고요. 저장된 나물을 다시 꺼내 먹으려면 탈염(소금기를 빼내는 작업) 작업을 거치기 마련인데요, 끓는 물에 나물을 데친 후 완전히 식을 때까지 물에 담 가둡니다.
그래야 짠 물이 다 빠져서 맛이 심심해집니다. 탈염을 끝내면 각 나물이 가진 특유의 향을 살리기 위해 각자 다른 방법으로 조리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가피 나물에는 특유의 향과 쓴맛이 있는데요, 탈염을 하면 쓴맛이 빠져나갑니다. 쓴맛은 없애되 특유의 향은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간을 맞추는데, 간장과 들기름만 사용해도 맛있게 드실 수 있습니다.
Q. 선생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전국 각지의 나물 요리를 선보인다고 하는데, 봄철에는 주로 어떤 산나물이 올라오나요?
봄은 사계절 중 가장 다양한 나물이 제맛을 풍부하게 나타내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봄철이 되면 나물에 더 신경을 쓰기 마련입니다. 제가 선보이는 산나물은 제주도의 취나물과 울릉도의 전호나물과 부지깽이나물 등이 대표적이에요.
취나물은 봄이 느껴지는 산뜻한 향과 맛이 좋고, 전호나물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녹여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전호나물은 이른 봄에 쌓인 눈을 뚫고 올라오는 산나물인데요, 울릉도에서 나고 자라는 귀한 나물입니 다. 향이 좋고 연해서 샐러드나 나물, 전으로 해 먹으면 좋아요.
제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도 이른 봄이면 전호나물로 나물 요리를 만드는데, 특히 울릉도산 문어를 썰어서 함께 내면 손님분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향뿐 아니라 부드러운 식감도 일품이지요. 부지깽이나물 역시 식감이 아주 좋은 울릉도의 대표적인 산나물 중 하나입니다. 그 밖에 방풍나물과 엄나무순은 된장과 들깨가루를 넣어 양념하면 감칠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Q. 산에서 나고 자라는 나물이나 뿌리채소들은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하죠.
맞습니다. 앞서 언급한 산나물들은 기관지와 혈압, 관절 등에 두 루 좋은 효능을 지니고 있어요. 마와 더덕 같은 뿌리채소들도 산의 보물이지요. 더덕은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당뇨와 혈관, 기관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죠. 마는 장에 좋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신경 안정 작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마를 이용해 서여향병을 만들기도 하고, 더덕으로 더덕구이나 더덕제육볶음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기도 합니다. 서여향병은 마를 통째로 찐 다음 썰어서 꿀에 재어 두었다가 찹쌀가루를 묻혀 번철에 지져낸 다음 잣가루를 입힌 떡이에요.
Q. 선생님이 운영하는 식당은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은 우리 산에서 나고 자란 나물이나 뿌리채소 요리를 좋아하나요?
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들이다 보니 외국인들도 잘 먹는 편이에요. 다만 외국인에게 소개할 때는 퓨전으로 색다르게 요리를 하거나 김밥에 넣어 대접하기도 하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Q. 진채를 비롯한 산나물과 함께 먹으면 좋은 한식 메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물은 역시 밥을 부르는 반찬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맛있게 드시는 방법은 하얀 쌀밥과 찌개, 국 등을 곁들이는 거죠. 밥은 오곡밥이나 찰밥으로 지어도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고요. 그리고 누구나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김밥에 산나물을 넣으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찰떡궁합이니까 김밥에 산나물을 넣어 꼭 드셔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