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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 전문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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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조선 후기 매운맛 마니아, 주영하 교수

어디에서 온 송편입니까?

임자년 1792 가을,

희정당 熙政堂 앞뜰에서 책문 策問에 대한 답안을 쓸 때,

궐내에서 유생들에게 음식을 하사하였다.

음식 가운데 큰 그릇에 황개즙 黃芥汁이 있었는데,

이는 삶은 고기를 위해 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 유생들은 모두 고기를 움켜 그냥 먹을 뿐

개장 芥醬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나 홀로 개장에 찍어 반 그릇을 먹었는데,

맛이 매우 좋았을뿐더러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하였다.

이 글은 1790년(정조 14) 31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공부한 이옥 (李鈺, 1760~1815)이 썼다. 성균관 유생 이옥은 1792년 음력 7월 19일에 실시된 ‘추도기과 秋到記科’라는 과거시험에 응시했다.

그런데 이 시험을 주관한 정조는 7월 19일 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없자 다음 날 재시험을 명했다. 창덕궁 희정당 앞뜰에서 열린 재시험은 아침 이른 시간인 묘시 (卯時, 오전 5시 30분~6시 30분)부터 시작되었지만, 정조를 만족시키는 답안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틀 뒤인 22일에 세 번째 시험을 치렀고, 겨우 정조를 만족시킨 답안이 나왔다. 시험이 끝난 뒤 정조는 유생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뜻에서 고기와 함께 황개즙을 비롯하여 몇 가지 음식을 내렸다.

♣ 황개즙, 막힌 가슴이 뚫리듯 시원한 느낌

황개즙은 ‘개장 芥醬’, 즉 겨자장이다. 그런데 시험에 참여한 유생들은 겨자장의 용도를 몰라서 고기만 집어먹었다. 오직 이옥만이 고기를 겨자장에 찍어 먹었다. 이렇게 먹으면 고기 맛도 매우 좋았다. 결국 이옥은 혼자서 겨자장을 반 그릇이나 비웠다.

19세기 말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시의전서·음식방문》에서는 겨자를 물에 담갔다 건져낸 뒤 체 밑에 그릇을 받치고 수저로 문질러 거른 다음, 소금·초·꿀을 넣고 수저로 젓고 맛을 보아 단맛이 나면 종지에 떠놓는다고 했다.

이옥이 먹은 고기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편육이었을 것이다. 이 편육을 진한 황색 겨자장에 찍어 먹었으니 가히 ‘흉격위통 胸膈爲洞’, 즉 “막힌 가슴이 뚫리듯 시원한 느낌”이라 할 만했을 것이다.

황개즙, 겨자장
▲ 황개즙(겨자장)

고기만 먹으면 목이 마를 텐데 겨자장에 찍어 먹으니 걸리지 않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느낌을 이옥은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지간히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면 매운 겨자장을 먹을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옥은 앞의 글에서 “나는 천성이 매운 것을 좋아하여, 겨자·생강 따위를 남보다 많이 먹는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1795년(정조 19) 음력 10월 전라도 전주의 양정포(良井浦, 지금의 용진면 양전)를 지날 때 일이다. 이옥은 이곳이 전국에서 가장 이름난 생강 산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 생강을 무척 좋아한 이옥이 생강 밭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어느 생강 밭주인을 만나 서푼어치를 달라고 했더니 서울보다 열다섯 배도 넘게 더 주었다. 이옥은 그 자리에서 생강의 껍질을 벗겨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거의 3분의 1가량을 먹었을 즈음, 생강 밭주인은 매운 생강을 그냥 먹는 이옥이 안쓰러워 밥상을 차려 주었다.

♣ 겨자와 생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고추의 매운맛을 마다할 리 없다

겨자와 생강을 좋아했던 이옥이 고추의 매운맛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는 고추와 호박을 “채소 가운데 매우 흔하고 두루 재배하면서도 옛날에 없던 것이 지금에는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초초 艸椒 는 곧 일명 ‘만초 蠻椒’ 로서 속칭 ‘고추 苦椒’라고 하고, 왜과 倭瓜 는 곧 일명 ‘남과 南瓜’로서 속칭 ‘호박 好朴’이라 한다. 이 두 가지는 대개 근래에 외국에서 전해진 것이다. 옛 《본초 草艸》와 다른 책에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그가 얼마나 고추의 매운맛을 즐겼는지는 다음의 일화에 담겨 있다.

이옥은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해보매, 술집에 들어갈 때마다 연거푸 술을 몇 잔 마시고 손으로 시렁 위의 붉은 고추 紅椒를 집어서는 가운데를 찢어 씨를 빼내고 장 醬에 찍어 씹어 먹으면 주모가 반드시 흠칫 놀라며 두려워하였다.”라고 적었다.

겨자와 생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고추의 매운맛을 마다할 리 없다

또 이옥은 고추장도 즐겨 먹었다.

“남양(南陽, 이옥의 본가가 있던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살게 되면서 가루를 내어 양념장 虀汁을 만들어 생선회와 함께 먹는데, 역시 겨자장 黃芥汁보다 나았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무렵 이옥처럼 고추 ‘벽(癖, 중독)’에 빠진 사람이 많았다. 그러자 고추 중독을 염려한 사람은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 風 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고추 중독이었던 이옥이 반론을 펼쳤다. “내가 들은 바, 철원 鐵原 에 나이 팔십이 된 노부인이 있는데 천성이 고추를 좋아하여, 떡과 밥을 먹는 이외에는 모두 고추를 뿌려 붉은색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맛을 본다고 한다. 한 해 동안 먹은 것을 합해보면 100여 말에 달할 정도라 한다.

나이 팔십이 넘었지만 오히려 밤에 바늘귀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고추가 눈에 좋지 않다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이겠는가?”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실제 사례를 들어 반박한 이옥은 분명 고추 중독자였다.

♣ 다른 매운맛 향신료와 조금 다른 마늘

마늘도 생강과 마찬가지로 매운맛이 나는 향신료다. 그런데 이옥은 마늘을 “깊은 병에 약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를 이옥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늘 먹은 사람이 “입을 한 번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방에 가득하여 곁에 있는 사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니, 암내나 방귀보다 심하다.”는 것이다.

다른 매운맛 향신료와 조금 다른 마늘

그는 심지어 마늘을 사향노루의 향낭을 채취하여 말린 흑갈색 黑褐色 가루인 ‘사향 麝香’에 빗대어 ‘사향초 麝香艸’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이옥이 마늘을 아예 멀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채마 밭가에 수십 뿌리를 심어, 약용과 김치의 재료로 삼았다.” 매운맛 마니아 이옥이 싫어한 것은 마늘 자체라기보다는 생마늘을 그대로 먹는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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