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삼도의 음식들이 한데 모여
융합한 결과 독특한 음식문화를 갖게 됐다.
❞삼면이 바다와 유·무인도 151개로 둘러싸인 통영.
역사적으로는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일찍이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덕에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김춘수·김상옥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를 키워낸 고장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조선시대 중기 이후, 경상·전라·충청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한 덕에 ‘통영’이란 이름을 얻었던 것처럼, 통영은 삼도의 음식들이 한데 모여 융합한 결과 독특한 음식문화를 갖게 됐다. 오늘날 미식 특별자치도시라 불리는 통영을 찾았다.
♣ 통영의 맛의 근원, 경상·전라·충청 삼도가 하나된 융합의 맛
가을이 턱밑까지 차오른 10월의 통영은 흠잡을 데 없이 펼쳐진 파란 가을 하늘과 바다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서울을 떠난지 4시간만에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수평선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잊게 한다. 특별한 ‘꾸밈’도 ‘수식’도 필요치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은 여행자의 마음을 단숨에 잡아끈다.
통영은 경상도에 속한 도시다. 그런데 통영은 행정구역으로만 말할 수 없는 것이 음식문화다. 통영(통제영)이라는 명칭을 가진 이 도시가 1605년 생긴 이래, 1895년 통제영이 폐지될 때까지 3백 년 가까이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라 삼도수군통제영의 관할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해안 일대와 섬들의 군사기지를 하나로 묶은 특별자치구역이었던 셈인데,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 자리한 중심 도시였다. 이 때문에 통영의 음식도 경상·전라·충청도의 특색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맛이 됐다.
시인 강제윤은 통영을 일컬어 ‘미항이고 예향인 동시에 맛의 고장’이라고 말했다. 경상도라고 하지만 경상도만은 아닌 통영의 특별한 맛의 근원을 찾고자 했던 그는 자신이 통영에서 수년간 체류하며 남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통영은 미항이고 예향인 동시에 맛의 고장이다.
멋은 맛에서 왔다. 맛이란 물산이 풍부할 때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배를 채우기에도 급급하다면 맛 같은 거 따질 여력이 없다.
척박한 지역일수록 음식이 맛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풍요로워야 맛이 생기고 마침내는 음식에 멋까지 부리게 된다.
그렇게 문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통영은 풍요로운 땅이다. 그래서 통영의 음식은 각별히 맛있다.
❞시인의 말처럼 오늘날 통영의 음식을 맛본다면, 맛의 깊이와 넓이를 간단히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쌀쌀한 계절, 뱃사람들의 속을 든든히 채운 국밥
뱃사람들의 도시답게 통영에는 국밥이며 해장국도 먹을 만한 것이 많다. 통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시락국. 시래깃국을 일컫는 사투리다.
시락국은 장어 머리를 곤 국물에 된장을 풀고 무청을 넣어 끓여 내는데, 산초(제피) 가루와 김 가루, 잘게 썬 고추와 부추무침을 먹는 사람 입맛대로 넣는다. 뜨끈한 국물이 맵싸한 산초 가루의 향과 어우러져 시원한 맛을 낸다.
시락국과 함께 통영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은 졸복국이다. 크기가 작은 붕어인 졸복을 넣고 미나리, 콩나물과 함께 우린 국물은 진하면서도 담백하다. 국을 맛있게 먹는 방법 두 가지.
첫째 식초를 조금 넣을 것. 국물이 진해진다.
둘째는 나중에 뚝배기째 들고 국물을 후루룩 남김 없이 마셔야 한다는 것. 그래야 제맛이 난다.
좀 낯설지만 쑤기미매운탕이라는 음식이 있다. 쑤기미는 뽈락과의 생선이다. 양식이 되지 않아 자연산만 쓴다. 매운탕 마니아는 삼식이매운탕, 뽈락매운탕과 함께 쑤기미매운탕을 최고로 친다. 고춧가루로만 양념을 하는데 국물 맛이 개운하고 담백하고, 살은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통영에 갔는데 충무김밥을 먹지 않는다면 서운하다. 1960~70년대, 부산과 여수, 거제 등을 오가는 뱃길의 중심지인 통영여객터미널에는 언제나 뱃사람과 상인이 북적였고, 이들을 상대로 한 요깃거리는 늘 인기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충무김밥. 간단하고 상하지 않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충무김밥은 맨김으로 싼 밥과 슥박김치라는 무김치, 그리고 시락국이 전부다. 짠맛보단 시원한 맛과 매콤한 맛이 우선인 슥박김치는 사각사각 씹는 맛이 일품이다. 길 떠나는 어부들을 상대로 팔던 음식이어서 젓가락 대신 이쑤시개를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경주에 황남빵이 있고 안흥에 찐빵이 있다면, 통영에는 오미사꿀빵이 있다. 1960년대 오미사꿀빵집의 주인할아버지가 밀가루를 배급받던 시절, 빵을 만들어 하나둘 팔았는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이 빵집에 간판이 없어 사람들은 오랫동안 ‘오미사 옆집 빵집’이라고 했다.
오미사는 당시 빵집 옆에 있던 세탁소 이름. 세월이 흘러 오미사는 없어지고 ‘오미사 옆집’으로 불리던 꿀빵집이 ‘오미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팥소를 넣어 튀긴 빵을 끈적끈적한 물엿에 담근 후 깨를 뿌려낸다. 앞치마를 한 주인할아버지가 정성껏 빵을 빚는 풍모가 ‘장인’을 연상케 한다. 오전 10시쯤 문을 여는데, 그날 팔 분량만 만들어 오후 3~4시면 다 팔고 문을 닫는다.
♣ 역사와 삶의 터전, 바다의 도시 통영
통영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자면 통영을 일구는 데에 상징적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과, 현대에 이르러 통영을 세계적인 예술도시로 불리게 만든 작곡가 윤이상이다. 먼저 통영 여행에 있어 곳곳에 있는 이순신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만도 통영을 여행하는 멋진 코스가 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로 시작하는 이순신이 지은 시구의 무대이자 격렬한 한산도대첩이 벌어진 한산섬,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충렬사, 임진왜란 이후 지방민이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착량묘,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영과 이순신공원 등 갈 곳이 많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옛 건물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현재 12공방, 백화당, 운주당 등을 복원해 생각보다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행히도 삼도수군통제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라 할 만한 세병관만은 건재하다.
입구를 지나쳐 가장 먼저 마주하는 세병관의 위엄을 큰 현판이 대변하는 듯하다. 기둥 사이로 보이는 뒤뜰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한편, 반평생 가까이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죽을 때까지 통영을 그리워한 작곡가 윤이상의 흔적은 통영시 도천동에 자리한 윤이상기념공원기념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념관 2층에는 학창 시절 사진부터 직접 연주한 첼로와 바이올린, 1971~72년 작곡한 오페라 <심청>을 비롯한 여러 친필 악보가 전시되어 있다.
윤이상의 음악은 그가 평소 관심 있던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공부한 서양의 작곡법이 어우러져 외국인에게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갔다. 동서양의 조화를 아름답게 풀어낸 그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이유다.
윤이상기념공원기념관 바로 옆에는 베를린에서 살던 집을 ¼ 크기로 축소해 만든 ‘베를린 하우스’가 있다. 2층은 윤이상이 작업하던 서재와 거실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온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악보가 놓인 책상과 안락한 소파, 피아노 모두 그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것들이다.
직원 입회하에 관람 가능하며, 간단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그의 흔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통영국제음악당에 다다르게 된다.
4월 초 통영국제음악제와 11월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부문이 번갈아 개최되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리는 곳이 여기다. 이곳에는 통영을 그토록 그리워한 윤이상의 묘가 있다. 사후 23년 만인, 지난해 이장된 묘는 넓고 푸르고 잔잔한 통영 앞바다를 지척에 두고 있다.
통영은 최근 국내외에서 인기 관광지로 떠오른 도시 중 한 곳이다. 바다가 가까워 신선한 해산물 음식을 잔뜩 맛볼 수 있고, 바다와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케이블카, 무동력으로 트랙을 타고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스카이라인 루지,
골목골목이 아름다운 동피랑과 서피랑 마을까지 둘러볼 만한 곳이 많아 철거하려던 낙후된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자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든 동피랑 벽화마을. 언덕에 올라서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이 보인다.
오밀조밀 집들이 빼곡하고, 잔잔한 바다 위에는 배와 섬이 사이좋게 떠 있다.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기자기한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상상해서 그리려 해도, 보고 옮기려 해도 어려운 통영의 안온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한 음악가가 바다와 파도에서 길러낸 음표, 소설가가 빼곡한 집을 보며 만들어낸 우리네 이야기, 절경을 글로 옮긴 시인의 단어.
이곳을 지키기 위해, 이곳을 예찬하기 위해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온 이들 덕분에 통영에서 이름난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된 게 아닐까 생각하며 늦가을날 따듯한 통영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