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방문 후 돌아올 때면 전주역 내 베이커리 카페에 꼭 들린다. 전주의 새로운 맛이 그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1978년에 전주에서 처음 만들어진 수제 초코파이를 맛별로 고르고, 비빔빵, 떡갈비빵 등 전주의 맛을 품은 빵을 한 가방 담은 후,
막걸리에 생강, 대추, 감초, 인삼, 칡, 계피 가루 등 8가지 한약재료를 넣고 끓여 만든 모주 한두 병을 더한다.
그렇게 전주의 맛을 빵빵하게 들고 기차에 오르면, 전주가 품은 풍요롭고 화목한 맛이 기차 안에도 가득 담긴다.
❞♣ 평범함 속 비범한 맛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배부른 곳이 바로 전주이다. 어느 곳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그곳에 가면 이것은 꼭 먹어보라’는 추천사가 이어지기 마련인데, 그곳이 전주일 때는 유독 그 추천사가 다양하다. 비빔밥, 콩나물국밥, 백반, 막걸리, 오모가리탕 등 전주를 대표하는 먹거리가 많은 덕분이다.
이렇게 보면 맛의 고장 전주의 면면이 그대로 느껴지지만, ‘이들 메뉴는 우리 동네에서도 찾을 수 있는 맛인데’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전주에서 이 음식을 먹어보면, 비로소 전주 맛의 비범함을 알게 된다. 비빔밥, 콩나물국밥, 백반, 순대국, 막걸리 등의 음식 앞에 ‘전주’가 더해지면 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인지 오롯이 알수 있다. 어디서든 흔하게 맛볼 수 있는 먹거리들의 대명사가 된 전주의 손맛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 전주 10미(味)와 전주가 품은 화합의 맛
전주의 이 특별한 맛은 ‘전주 10미’와 관련이 깊다. 전주 10미는 전주에서 나는 음식재료 10가지를 말하는데, 게, 황포묵(녹두묵), 모래무지, 무, 미나리, 서초, 애호박, 열무, 콩나물, 파라시(감)가 이에 속한다. 전주가 품은 다양한 맛은 ‘화목하고 조화로운 맛’으로 수렴된다.
전주의 사대문을 중심으로 전주 토박이들이 즐겨 먹었다는 전통 음식을 한 상에 내는 전주 백반과 주류(主流)와 비주류(非主流)를 구분 짓지 않고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를 제철 음식재료로 한 상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로 한 상 차려내는 막걸리 상차림이 그렇고, 무엇보다 전주의 상징인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이 그러하다.
전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 바로 비빔밥이다. 조선시대 3대 음식 중 하나로 꼽힌 전주비빔밥은 30여 가지의 음식재료로 만들어지며, 전주 10미 중 하나인 ‘황포묵’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황포묵은 전주 오목대에서 흘러나오는 녹두포 샘물을 이용해 만든 녹두묵을 치자물로 노랗게 들인 것을 말한다. 콩나물을 넣고 지은 밥을 활용하는 것도 전주비빔밥의 특징으로, 이 콩나물 역시 전주 10미 중 하나이다.
전주에서는 임실산 서목태를 사용해 콩나물을 기르며, 잔뿌리없이 키우는 것이 요령이다. 전주의 토질과 수질은 양질의 콩나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하고, 여기서 자란 콩나물에는 철분이 많아 예부터 풍토병 등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요리에 넣어 먹었다고 한다.
전주에서 전주비빔밥 못지 않게 콩나물국밥이 유명한 이유일 것이다. 전주시청에 따르면 ‘콩나물국밥’의 원조는 전주로, 콩나물국밥은 뚝배기에 밥과 콩나물을 넣고 갖은 양념을 곁들여 펄펄 끓여 내는 ‘화식’과 펄펄 끓이지 않고 밥을 뜨거운 육수에 말아내는 ‘남부시장식’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
사실 전주 콩나물국밥은 필자에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음식인데, 내내 식지 않은 그 뜨거운 맛에 쩔쩔맸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또 함께 나온 수란과 조미김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수란을 국밥에 넣어 먹을지, 국밥 국물을 수란이 담긴 그릇에 떠넣어 먹을지. 전주 출신 지인이 수란의 노른자를 터트려 국밥의 콩나물을 찍어 먹는 것을 보고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 그런데 조미김은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전주식 음식을 맛볼 때는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되고,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새로운 방식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도 그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낀다. 얼마 전에는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 오징어 젓갈과 같이 먹는 새로운 맛을 알게 됐다. 전주에 갈 때면 새로운 맛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주의 맛은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과연 유네스코 음식창의 도시답게 말이다. 이는 먹는 방법을 새롭게 알게 돼서도 그렇고 지속해서 개발되고 변주되고 있는 전주의 맛 때문이기도 한다.
전주 비빔빵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기함이란. 전주비빔밥 소스로 만든 비빔국수의 맛은 또 어떨까. 다음 전주 방문길이 벌써 설레는 이유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전주 관찰사 밥상’ 복원 소식을 접했는데, 이 새로운 전주 밥상에 대한 기대도 더해 본다.
♣ 韓 스타일을 간직한, 전주 한옥마을
여행을 떠나기 전 한 입으로 그 목적지가 모아지는 곳이 있다. 추천사가 길지 않은 곳이다. 전주가 그러한 곳 중 하나이다. 전주를 여행한다는 말에는 ‘전주 한옥마을에 간다’는 여정이 당연하게 포함된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 풍남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촌으로, 전주시청에서는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20여 개의 문화시설이 산재해 있으며, 한옥, 한식, 한지, 한소리, 한복, 한방 등 한(韓)스타일이 집약된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 한옥마을 속 문화유적지
경기전, 조선 태조 어진, 경기전 정전, 하마비, 전동성당, 전동성당 사제관, 전주향교, 오목대·이목대, 한벽당 등은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중요 문화재들이다.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곳으로, 전국 유일의 어진을 봉안한 궁전 즉 ‘진전’이란 의미도 갖는다. 경기전의 위엄은 그 앞에 세워진 하마비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雜人毋得入)’라 쓰여져 있다.
‘경기전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태조의 얼이 서린 또 한 곳이 바로 ‘오목대’이다. 고려 이성계 장군이 남원 황산에서 금강으로 침입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오는 길에 개선 잔치를 벌인 곳이다. 오목대에 올라 한옥마을의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유방의 ‘대풍가’를 읊으며 새 나라를 세울 야심을 비췄다는 이성계 장군의 기개를 느껴보는 건 어떠하리.
전주 한옥마을이 품은 역사의 위엄은 ‘전동성당’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전주 풍남문 밖 전동은 18세기부터 천주교도를 박해하고 처형했던 곳이며, 순교자들의 선혈이 어린 성곽의 돌을 가져다 주춧돌로 세웠다.
순교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00년대 초 보두베 신부가 성당 건립에 착수해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맡아 건축했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로 마무리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성당 앞에서 보면 그 숭고한 위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 한옥마을 속 문화시설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소개하는 전시관인 전주한옥마을역사관을 비롯해, 가암서예관, 선비문화관, 최명희문화관, 전주전통술박물관, 전주김치문화관, 전주부채문화관, 완판본문화관 등은 전주의 다양한 문화를 느끼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중 독서의 계절 가을과 어울리는 곳이 바로 ‘완판본문화관’이다. 전주가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도시이자 조선 후기 출판문화의 중심지이자 기록문화의 산실이었던 출판의 도시였음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곳이다. 완판본은 전라도의 옛 수도였던 전주(완산)에서 발간한 옛 책과 그 판본을 의미한다.
참고로 전주시는 ‘전주완판본체’라는 고유의 서체를 갖고 있는데, 이렇게 한 도시가 고유 서체를 보유한 사례는 흔지 않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에게 부채는 시와 그림으로 안부와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었다. ‘전주부채박물관’에서도 출판의 도시 전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전주 부채는 오늘날에도 그 우수성을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전주한지’로 만들어졌다.
물론 대하소설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의 삶이 지어진 곳, ‘최명희문화관’도 빠질 수 없다. 이곳에서는 원고지 1만 2,000장에 17년간 써 내려간 <혼불>의 친필 원고를 직접 읽을 수 있는데, 그 원고지에 담긴 차분한 필체와 담담히 담긴 퇴고의 흔적은 그때 그 시간 작가의 마음과 고민을 가만히 소환해 온다.
한편, 교동미술관, 추억박물관&루이엘모자박물관, 전주난장 등도 전주 한옥마을 속 명물이다.
특히 자만벽화마을이 유명한데, 이곳은 원래 6.25 한국전쟁 때 피난민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달동네로, 이곳에 예쁜 벽화들이 그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전주 한옥마을 여행객들이라면 이 자만벽화마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장 있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