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 영금정이다.
도루묵 취재를 위해 찾은 속초의 아침 영금정을 배경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동해안 최대 관광 도시 속초는 말만 들어도 언제나 설렌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속초항에서 겨울철 별미 도루묵과 양미리 축제가 열릴 때이다. 찬바람이 불면 속초항 어판장에는 도루묵이 넘쳐난다. 즉석에서 구워 먹는 알이 꽉 찬 도루묵은 세상 비교할 게 없는 최상의 맛이다.
♣ 설악을 품은 아름다운 항구, 속초항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사계절 절경이어서 내외국인이 많이 찾는 명산 중 으뜸이다. 가을 단풍과 겨울을 알리는 첫눈 소식이 설악산에서 시작된다.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산(해발 1,708m)이다.
설악산이 품은 도시가 강원도 속초다. 산과 바다, 영랑호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바다의 도시 속초에는 속초항과 동명항, 대포항 등 미항들이 자리하여 수산물 맛집들이 많다.
동명항은 동해의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영금정이 있고 자연산 활어회만 취급하는 동명 활어센터가 연중 관광객이 붐빈다. 관광 수산시장으로 유명한 대포항은 속초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항구면서 맛집들이 즐비하다.
속초항은 속초의 중심 항으로 겨울철이 되면 도루묵과 양미리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부둣가에 즐비한 포차에는 도루묵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연탄불에 굽는 노릇노릇 도루묵 알 터지는 소리가 넘친다.
♣ ‘말짱 도루묵’이라니요 한 번 먹어 보이소
이른 아침 도루묵 잡이 배가 입항한 속초항 부두를 찾았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도루묵이 주렁주렁 달린 그물을 가득 싫은 어선의 만선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자 모닥불에 모여 있는 아낙들이 어선으로 몰려든다. 어선에서 그물 하역 작업을 하고 그물에 걸린 은빛 보석 도루묵 떼어 내기 작업을 하기 위함이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아침 날씨는 쌀쌀하였지만 도루묵 하선 작업을 하는 어부들 이마에는 땀방울이 몽실몽실 맺혔다. 묵직한 그물은 순식간에 부두에 가득 쌓이고 그물 하선 작업을 하던 아낙들은 쉴 틈도 없이 그물에서 은빛 보석 도루묵을 떼어 낸다.
최대한 빨리 작업하여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능수능란한 손놀림은 도루묵이 상하지 않게 분류를 하여 바구니에 담는다. 그물 분류 중 알이 터진 도루묵을 모닥불에 올렸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잘 구워진 도루묵을 호호 불어가며 한입 먹어 본 순간 이 맛이야 했다.
가을 전어가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한다면 겨울철 도루묵은 맛 객들을 속초로 불러들인다. 겨울철 동해안 맛을 확 휘어잡은 도루묵은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지역 얼어붙은 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중 효자가 되었다. 명태가 풍년이던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천덕꾸러기가 도루묵이었다.
♣ 선조에게 버림받은 도루묵이 로또가 되었다
도루묵 하면 제일 먼저 생각 나는 말이 ‘말짱 도루묵’이다. 말짱 도루묵이란 ‘열심히 노력한 일이 헛수고가 되었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는 도루묵 유래에서 찾을 수 있다.
위키백과사전에 도루묵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청주 순천 김씨 묘 출토 간찰(16세기)에 기록된 ‘돌목’으로 이후 ‘도로목’으로 표기되고 조선시대 초에는 ‘은어’로 기록한 민간어원이 있다. 허균의 도문대작, 이식의 시 환목어, 이의봉의 고금석림과 난호어목지 등에 기록되었다.
가장 흔한 설화는 조선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 때 함경도 위주로 피난을 하였을 때 어부가 잡아 온 묵어를 먹었는데 너무 맛나 ‘은어’라 이름 지었다, 이후 궁궐로 돌아온 선조는 그때 먹은 은어가 생각나 다시 먹었지만, 피난길 먹은 맛이 아니므로 ‘도로 묵’이라 하라고 하였다 한다, 훗날 묵어가 도루묵이 되었다는 설이다.
그 이후로 어부들에게 버림받은 도루묵은 겨울철 동해의 주 어종 명태가 사라지면서 양미리와 함께 동해안 겨울철 대표 어종으로 대접을 받는다.
청호동 부두에 배를 정박하고 도루묵 그물을 내리고 따는 작업을 하는 도원호 한재중(67세) 선장은 “어선을 타고 고기를 잡은 지 40년이 넘었는데 옛날엔 도루묵은 사지도 않아 잡지도 않았다. 어릴 적 도루묵을 많이 먹었다. 잡은 도루묵을 소금에 절여 보관하였다가 봄부터 찌개도 해 먹고 조림도 해 먹었다.
도루묵을 잡기 시작한 건 10년 전쯤인데 많이 잡힐 때는 그물 두 틀을 번갈아 가며 바다에 넣고 걷어 들이며 온종일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라고 말한다. 올해는 11월 성수기 조업이 부진했는데, 12월 중순 도루묵이 수심 100m 이하로 들어오면 도루묵 잡이가 끝난다고 한다.
겨울철 속초 등 강원도 동해안 항구 부두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도루묵이 지천이고 겨울철 식탁을 책임지는 국민 생선이 되었다.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 이제는 틀린 말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오명을 벗어줘야 할 때다.
임금이 맛나서 ‘은어’라 부를 정도로 맛은 증명되었고 현대인들의 입맛을 저격하니 더 이상 맛없는 생선이라 할 수 없다. 가을 전어가 대접을 받는다면 겨울은 당연히 도루묵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 제철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건 모르는 이 없다.
요리 백과 쿡쿡TV에 의하면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도루묵에는 EPA와 DHA가 듬뿍 함유된 불포화 지방이 적당히 포함되어 있어 성장기 어린이 두뇌발달 및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라 하므로 겨울철 식탁에 꼭 올려야 하는 식품이다.
♣ 추워야 제맛 도루묵은 지금이 제철
올해 도루묵 조업은 11월 초부터 시작하여 12월 초순까지가 제철이다. 심해에 서식하고 있던 도루묵은 산란을 위해 점차 연안으로 나오면, 수심 300m부터 도루묵 조업이 시작된다.
도묵묵배에 알이 가득하고 점차 연안으로 나오면서 100m까지 나오는 12월 초순까지 조업한다. 도루묵은 지금이 제일 맛난 시기이다. 연안으로 몰려오는 도루묵을 잡기 위해 청호항의 20여 척 어선들은 일제히 바다로 나가 그물을 놓고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그물을 걷어 들인다.
동해에 햇살이 비추는 이른 아침부터 그물을 가득 실은 어선이 항구로 들어오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도루묵을 그물에서 떼어 내는 작업을 한다.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도루묵을 떼어 내는 작업을 하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재빠른 작업은 더욱 싱싱한 도루묵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함으로 숙련된 어민들은 생채기 하나 없이 떼어 내어 바구니에 담는다.
도루묵이 많이 잡히는 날은 온종일 그물을 걷고 놓고를 반복하고 부둣가에서 도루묵 따는 고된 작업은 온종일 이어진다. 그늘에서 떼어 내는 작업은 선별 작업을 겸하고 있다.
암수를 구분하고 상처가 없는 상품만 골라내어 매일 속초수협에서 운영하는 경매장에서 판매한다. 11월 초 속초 청호항에서 시작된 경매 낙찰가는 암컷 한 두릅(20마리)에 20,000원∼27,000원이었으나 어획량이 늘어나는 12월에는 10,000원 이하로 떨어진다.
경매장에서 중개인들에게 팔린 도루묵은 당일 전국으로 수송 판매한다고 하며, 경매 현장에서 신선한 도루묵을 착한 가격에 살 수도 있지만, 마을 어촌계에서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 맘껏 먹어도 걱정이 없는 도루묵
겨울철이 제맛인 도루묵은 암컷 몸에 알이 가득한 요즘이 제철이다. ‘알 반, 살 반’일 정도로 알이 꽉 찬 시기로 도루묵이 제일 맛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도루묵에 묻은 미끈한 점액이 흐르는데 구이로 먹거나 끓여 먹어도 미끈한 점액과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알이 터지는 맛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2월 중순 이후 산란 시기가 지나면 알이 질겨 먹기 거북하다. 도루묵의 부드러운 살은 굽거나 끓여도 그대로 유지되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들 듯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넘이 촉감이 좋다.
다이어트를 하며 식단 관리를 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을 뜻하는 치팅데이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맘껏 먹고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식품 중 하나가 열량이 적은 도루묵이다.
수분이 많은 도루묵은 육질이 부드럽고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무기질이 많아 임신, 수유부, 발육기 어린이에게 좋으며, 인 성분이 많아 뼈와 치아 건강에 도움을 주고 아미노산 보충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도루묵식해 맛에 반하다
도루묵은 흔히 굽거나 찌개, 조림 등으로 먹는다는 상식을 깨고 특별한 함경도식 도루묵식해를 만들어 반찬으로 올린다는 속초복집 김하식(62세) 대표를 만났다.
속초에서 태어나 속초에서 평생 살고 있다는 김 대표는 함경도가 고향인 어머니가 도루묵식해를 만들어서, 어릴 적부터 먹었던 음식이라 한다.
20여 년 전 복요리 전문점을 열면서 반찬으로 도루묵식해를 반찬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많이 찾는 보조 요리로 자리매김해서 매년 도루묵이 나오는 겨울철이면 도루묵식해를 만들어 손님상에 반찬으로 제공한다고 한다. 명태식해 못지않은 특별한 맛으로 중독성이 있다.
속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요리, 도루묵식해는 소금에 절여 보관한 도루묵 수컷이 꾸덕꾸덕하여지면 흐르는 물에 씻어 소금기를 제거하고 항아리에 담고 생강과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한 후 3일 정도 숙성하여 만든다.
도루묵식해를 만들고 남은 것이 있다며 끓여준 도루묵찌개는 밥도둑이다. 부드럽게 씹히는 살과 오도독 씹히며 넘어가는 알, 얼큰하지만 시원한 국물이 입맛을 돋운다.
‘도루묵은 구워야 제맛이다’라고 말하는데 속초항에 가면 그 맛을 볼 수 있다. 속초항 부두가 늘어선 포장마차 촌이 있다. 속초항에서 어업을 하는 선주들이 직접 운영하는 포차들로 어선 이름을 딴 상호가 독특한 이곳에서는 속초에서 잡는 싱싱한 생선회와 겨울철 별미 도루묵과 양미리구이와 찌개 등을 맛볼 수 있다.
속초시의 대표적 지역 축제 중 하나로 11년간 전통을 이어온 속초 도루묵 축제. 작년까지 진행된 이 축제에서는 담백한 맛이 일품인 도루묵과 관련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싱싱한 도루묵을 연탄불에 구워 먹는 화로구이와 얼큰한 도루묵찌개, 조림, 찜 등 맛볼 수 있는 요리의 종류도 다양해 즐거움을 더했다. 하지만 매년 속초 항만부지 일원에서 개최되던 속초 도루묵 축제는 올해 종식되지 않는 코로나19로 취소되었다.
추워지기 시작하는 요즘 같은 때에 바다를 보며 겨울철 별미를 먹으면 좋으련만... 그마저 여의치 않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루묵이 제철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축제에 방문하진 못하지만 도루묵을 주문해서 집에서 겨울철 별미의 맛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개최 시기 : 매년 겨울
• 개최 장소 : 강원 속초시 항만부지 일원
• 주최·주관 : 청호복합자망협회, 속초시수산업협동조합
♣ 홍합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