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우리의 마음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따뜻한 남쪽에는 매화가, 서울에는 버들강아지가 피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완연한 봄 날씨에 괜히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아직도 코로나19 이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해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시나브로 우리에게 찾아온 봄을 맞이하러 충남 보령시의 무창포로 떠나보자.
♣ 봄 제철 생선의 대명사, 흰살 생선 도다리
제철 음식은 맛있다. 생선은 산란을 앞두고 살이 찐 때가 제철이고 과일은 열매가 익은 시기가 제철이다. 다만 조개류는 산란 시기에 독성이 있어 알을 낳는 시기를 피해야 한다. 만물이 겨울잠을 깨고 생동하는 시기인 3월을 대표하는 제철 재료 중에 하나는 도다리이다.
겨우내 지방 등 영양분을 축적하고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10~40m 연안을 찾는 도다리는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 맛이 좋다.
괜히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3월이 시작되면 들녘에 파릇한 해쑥을 캐서 도다리와 함께 끓인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는데, 진한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음식이다.
도다리 주산지로는 남해안에서는 경남 통영과 거제, 서해안에서는 충남 무창포항과 대천항 등이 유명하다. 서해안 도다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천항 어판장을 찾아 대천항선주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종국 해광호 선장을 만났다.
김 선장에 따르면, 무창포의 어민들은 2월 말부터 도다리를 잡기 위한 채비를 하여 바다로 나간다. 도다리 조업은 4월까지 이루어지는데 3월 한 달이 도다리를 가장 많이 잡을 수 있는 적기이다.
100m 내외 심해 바닥이 모래와 진흙으로 된 지역에 서식하는 도다리는 3월이면 수심 12m 내외에서, 4월에는 20m 내외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항구에서 20분 떨어진 바다로 나가면 조업이 가능하다.
3, 4월의 이른 아침 대천항을 찾으면 도다리를 잡기 위한 그물을 놓고 거두기 위해 바다로 출발하는 50~60여 척의 어선을 만날 수 있다.
♣ 광어와 도다리 구별법 ‘좌광우도’
도다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광어와 모습이 비슷하여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김 선장은 ‘좌광우도’라는 단어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생선의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했을 때 눈이 왼쪽에 몰려 있으면 광어이고 오른쪽에 몰려 있으면 도다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생선의 주둥이와 이빨로도 구별할 수 있다. 도다리는 주둥이와 이빨이 작은데 비해 광어는 주둥이와 이빨이 크다.
김 선장에게 신선하고 맛있는 도다리를 고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팁도 얻었다. 우선 눈을 확인해야 한다. 신선한 도다리는 눈이 맑고 선명하며 광택이 난다. 그다음 아가미와 껍질, 비늘도 확인해야 한다. 아가미가 선명하고 붉은색을 띠며, 껍질과 비늘이 촘촘하고 윤기가 있는 도다리를 고르면 된다.
♣ 봄의 향기를 품은 쑥과 찰떡궁합인 도다리쑥국
도다리는 단백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흰살 생선이자 봄철 보양식이다. 풍부한 단백질에 비해 지방질이 적어 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감기를 비롯한 감염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시력에도 좋은 비타민A, 노화 방지에 좋은 비타민E 등 건강에 좋은 영양소를 골고루 포함하고 있다. 영양은 많고 열량이 적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이만한 게 없다.
이런 도다리를 먹기 위해 산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양식이 되지 않는 도다리는 거의 자연산으로만 판매되며, 거의 현지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산지에서 파는 도다리 요리는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도다리는 도다리구이, 도다리찜, 도다리회, 도다리뼈째회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도다리 하면 역시 봄 향기를 가득 담은 도다리쑥국이다.
서해안의 도다리 주산지인 무창포에서는 도다리쑥국에 자연산 미역을 넣어 맑은탕으로 시원하게 끓인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보다 더 깔끔하며 뒤끝이 시원한 무창포식 도다리쑥국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무창포를 다시 찾게 된다.
무창포 해변에 터를 잡고 도다리쑥국을 끓인 지 13년이 되었다는 등대횟집 권해자 대표는 “도다리는 봄이 제철로 봄을 대표하는 쑥과 환상의 궁합이어서 3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도다리쑥국 지리국을 맛보러 무창포를 찾는다”고 말한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쑥의 향과 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녹는 도다리 살이 인상적이다. 시원한 국물 속에 배어 있는 봄, 봄을 알리는 제철 먹거리가 넘쳐나는 무창포는 그야말로 봄을 알리는 맛의 고향이다.
♣ 무창포식 도다리쑥국 요리하기
무창포식 도다리쑥국은 무창포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 도다리와 쑥만 있다면 집에서도 쉽게 끓일 수 있다. 우선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라 내고 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후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는다.
도다리는 물기를 제거하여 먹기 좋게 3~4등분 하고 쑥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제거하여 준비한다. 육수는 쌀뜨물에 나박 썰기 한 무와 다시마, 그리고 된장을 넣어 끓인다.
이때 집에서 만든 된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좋다. 무창포에서는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자연산 미역을 넣어준다. 마지막으로 대파와 붉은 고추 등을 넣고 조금 더 끓인 다음 팽이버섯과 해쑥을 넣고 끓이면 무창포식 도다리쑥국이 완성된다.
색다른 도다리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면 도다리매운탕과 도다리찜도 좋다. 앞서 대천에서 만났던 김 선장은 도다리쑥국보다 도다리찜을 더 즐겨 먹는다고 한다. 도다리찜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알이 꽉 찬 도다리를 손질하여 냄비 크기에 맞게 잘라 준비한다. 그리고 냄비 바닥에 2cm 두께로 썬 무를 넣고 물과 간장을 넣은 다음 10분 정도 끓여 무를 익힌다. 도다리를 넣고 중불에 조리면 도다리찜이 완성된다.
♣ 도다리와 어울리는 보령의 향토주
지역의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에 지역의 향토주를 더하면 그 맛을 더할 수 있다.
충남 보령에서는 성주산의 맑은 물에 누룩으로 40여 일간 발효하고 다시 저온에 6개월간 숙성 발효한 ‘만세보령주’를 만나볼 수 있다. 최근 전국 가양주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2019년 충남술 TOP10에 선정된 술이기도 하다.
만세보령주는 100% 보령산 찹쌀과 백미를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빚어낸다. 효모가 살아있는 이 술은 짙은 향과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깔끔한 청량감이 입안에 퍼진다.
영농조합법인 보령 전통주 박태홍 대표는 ”만세보령주는 충남 보령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쌀과 성주산 자락의 맑은 물로 빚은, 효모가 살아있는 맑은 황금빛이 영롱한 전통주이다.
쌀과 누룩, 정제수로만 자연 발효시켜 빚고 기타 첨가물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전통 약주”라고 자랑한다.
♣ 신비의 바다 무창포
무창포에 방문하면 제철 음식과 함께 천혜의 자연경관도 만나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무창포 해수욕장은 1928년 서해안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이다.
1.5km에 이르는 해변은 울창한 송림과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해수욕장으로 물이 빠지는 썰물 때는 갯벌 체험도 즐길 수 있다.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은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석대도까지 1.5km가 S자로 갈라지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바닷길 열리는 날짜 및 시간은 보령시청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해질녘에는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도 여럿 있다. 먼저 무창포 남쪽에 있는 닭벼슬섬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
보령 5대 일몰 명소로 유명한 이곳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일몰 출사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창포 전망대에 올라 무창포항 등대 사이로 지는 아름다운 일몰을 보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무창포 수산물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판매한다.
무창포 앞 서해에서 잡은 자연산 도다리, 주꾸미 등 수산물이 넘쳐난다. 1층 수산물 시장에서 싱싱한 횟감을 골라 2층 식당에 가면 무창포의 맛을 신선하게 즐길 수 있다. 마스크 쓰기, 손 소독, 생활 속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지켜 안전한 봄 여행을 무창포로 떠나보자
제철 음식이 사라졌다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봄의 정취를 제일 먼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는 도다리쑥국이다.
봄철 한때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한반도의 봄을 여는 남해안, 한려수도의 중심지에서 비롯된 음식인데다 바다와 들판에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 도다리와 쑥이 어우러져 겨우내 군내에 젖은 입맛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 따지고 보면 봄맛을 전하는데 도다리쑥국만한 환상의 조합을 찾아보기 힘들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처럼 도다리는 봄이 제철이다. 산란을 끝내고 남해안 바닷가로 돌아와 새 살을 통통 찌우는 도다리와 겨우내 언 땅을 헤집고 돋아 나와 인삼보다도 좋다는 소리를 듣는 해쑥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니 봄의 정취는 물론이고 원초적인 생명력까지 맛볼 수 있다.
그렇기에 도다리쑥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봄철에 도다리쑥국을 세 번만 먹으면 한 해 건강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라고 주장할 정도다. 도다리와 쑥의 조화가 봄의 보양식을 만들어 낸 것인데 도다리와 쑥의 무엇이 음식에다 그토록 진한 봄기운을 불어 넣는 것일까?
도다리는 가자미목 가자밋과 생선으로 세계적으로 가자미목에 속한 물고기는 모두 52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26종이 산다. 도다리는 그런 가자미 생선 중에서도 넙치라고도 하는 광어나 일반 가자미에 비해 몸이 마름모꼴로 넓은 것이 특징이다.
보통 ‘좌광우도’, 눈이 왼쪽에 몰려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와 가자미라고 하지만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생김새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예전에는 도다리, 광어, 가자미를 모두 비슷한 물고기로 여겨 한자로 접어(鰈魚)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접어가 당돌하게도 “내가 조선의 물고기다”라고 주장한다. 눈이 비뚤어져 가자미 눈알이라고 무시당하는 주제에 감히 조선의 대표 물고기라니, 가당치도 않지만 그래도 사연이 궁금해지는데 나름 상당한 근거가 있다.
♣ 가자미의 나라, 한반도
가자미목 생선의 눈은 모두 한쪽으로 몰려있다. 우리 선조들은 가자미목의 눈이 한쪽 방향 밖에 볼 수 없어 혼자서는 절대 헤엄칠 수 없으며 반드시 짝을 이루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화합과 협동, 신뢰와 믿음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이유는 도다리, 가자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남해안의 도다리쑥국, 강원도와 함경도의 가자미식해, 경상도의 가자미미역국 서해의 서덜구이 등등,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가자미 종류의 생선을 많이 먹는다.
요즘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생선회가 광어회이니 예나 지금이나 가자미 사랑은 변함이 없다. 가자미가 많이 나고 또 가자미를 사랑했기 때문인지 옛날에는 심지어 한반도를 ‘가자미 땅’이라는 뜻에서 접역(鰈域)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많은 별명 중에서 가자미 나라라는 별명이 듣기에 조금은 민망하지 않았을까? 생각과는 달리 조상님들은 오히려 이 별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별명이 많은 나라다.
먼 옛날부터 아침 해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곳에 있는 나라여서 조선(朝鮮)이라고 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아예 고조선과 조선, 두 번이나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숲속 닭이 울어 왕의 탄생을 알렸기에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 했고, 신선들이 모여 사는 동방의 언덕이어서 청구(靑邱), 무궁화가 많아 근역(槿域) 이었다.
나라 이름이 된 조선과 함께 가자미가 많은 땅이라는 접역 역시 조상들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별명이었다. 그래서 조선 초, 세조는 외교문서에서 우리 땅을 스스로 접역이라고 불렀고 조선 후기 정조 역시 “우리나라는 접역으로 예의를 아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자미의 무엇이 대단하기에 조상님들은 가자미 땅이라는 별명에 자부심을 가졌을까?
비밀은 가자미 눈알이라고 부르는 가자미목 생선의 눈에 있다.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가자미, 도다리, 광어의 눈은 모두 한쪽으로 몰려 있다.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한쪽 방향 밖에 볼 수 없어 혼자서는 절대 헤엄을 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짝을 이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눈을 합쳐야 한다는 뜻에서 비목어(比目魚)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화합과 협동, 신뢰와 믿음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죽을 때까지 운명을 함께 하는 부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했던 것이다.
고대 신화에 비목어 비슷한 동물로 비익조(比翼鳥)라는 새가 있다. 암수의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서로 짝을 이뤄야 날 수 있으니 역시 지극한 사랑의 징표로 쓰였다. 비익조는 남방에 살고, 비목어는 동방인 우리나라에 사는 물고기이니 믿음의 상징이고 사랑의 표상인 가자미의 땅이라는 별명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쑥
도다리쑥국의 또 다른 재료인 쑥 역시 보통의 식물이 아니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가 쑥을 먹고 곰에서 인간이 됐을 정도인데 곰은 왜 인간이 되기 위해 쑥을 먹었을까?
신화를 창조한 고대인들은 곰이 야성을 버리고 인성을 찾는 과정에서 쑥을 매개물로 삼았다. 쑥에 나쁜 기운을 쫓는 힘이 있고, 쑥이 생명력과 다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속담에 “애쑥국에 산골 처자 속살 찐다”는 말이 있다.
산골 아가씨가 새봄을 맞아 성숙해져 여인으로 거듭났다는 표현이다. 북미 아메리카 원주민 중에는 여자의 성인식 때 쑥 연기를 쐬게 하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이다.
이런 쑥과 비목어인 도다리가 조화를 이룬 음식이 도다리쑥국이다. 그렇기에 맛으로 먹으면 봄철 입맛을 자극하지만 스토리를 곁들여 짝과 더불어 먹으면 사랑까지 움틀 수 있다.
♣ 도다리쑥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