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신선주에 얽힌 전설은 1,00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신라 말기의 고운 최치원 선생이 풍광 뛰어난 청주 미원면의 신선봉에 후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선비들과 글을 읽으며 신선주를 즐겼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그 술이 함양 박씨 종갓집에서 570여 년간 이어져 박준미 명인에게 운명처럼 주어졌다. 그 깊고도 향긋한 술맛에 담뿍 취하고, 술에 얽힌 이야기에도 흠뻑 취하기 마련이다.
Q. 충청도 도사를 지낸 박숭탕 선조부터 청주신선주를 빚는 비법이 전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청주신선주는 충청도 선비들이 즐겼던 술이었습니다. 박숭탕 선조께서 미원면 계원리로 낙향하시고 이 술을 빚는 비법이 전해지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죠. 족보를 따져보니 신선주가 시작된 해를 1449년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청주신선주의 역사는 올해로 573년이 된 셈입니다. 제가 19대 전수자로 충북무형문화재 제4호이자 제 아버님이신 고 박남희 선생님의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제 아들도 술 빚는 법을 배우고 있어 앞으로도 청주신선주의 도도한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Q. 57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청주신선주가 이어져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희 집안은 함양 박씨 종갓집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종갓집들이 그러하듯, 저희 집안도 명절이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년 내내 제사도 끊이지 않았죠.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찾아오시는 집안 어르신들에게 세배만 하다가 명절이 다 가곤 했습니다. 이렇게 손님 방문과 집안 대소사가 잦다 보니 술을 대접할 일이 많았고, 장을 담그듯 항상 술을 담가야 했죠. 어른들은 이 술을 집안의 재산이라며 귀하게 여기곤 했습니다.
Q. 전국에 여러 전통 가양주가 있습니다. 청주신선주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고조부이신 박래순 선생님이 기록한 <현암시문합집>에는 ‘신선주는 능히 백발을 검게 변하게 하고, 노인을 젊은이로 만들어 수명을 더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생지황, 숙지황, 인삼, 당귀, 감국, 구기자, 하수오, 우슬, 천문동 등 몸에 좋은 생약재 10여 가지를 다린 물로 술을 빚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국산 생약재를 직접 수제 가공해 술을 빚는 곳은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에 더해 인공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청원생명쌀, 청주산 찹쌀을 비롯해 직접 재배한 토종 앉은뱅이밀로 띄운 누룩 등 국산 재료를 사용해 전통적인 자연 발효법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비로소 술이 완성되기 때문에 청주신선주는 술이라기보다는 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안 어르신들은 식전에 이 술을 한 잔씩 드시곤 했는데, 입맛을 돋우고 소화에도 도움을 줬기 때문입니다. 또 증류주인 청주신선주는 맑고 투명한 빛깔에 소줏고리로 한 방울씩 직접 내려 화덕향과 순곡향, 약재향이 어우러져 42%라는 높은 도수에도 부드러운 목 넘김을 자랑합니다. 또 애주가들에게 숙취가 없기로도 유명합니다.
Q. 청주신선주와 잘 어울리는 한식이 궁금합니다.
청주신선주는 제사나 잔치에 많이 사용된 술이어서 그런지 산적, 맥적구이, 황태양념구이 등의 음식이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간단한 주안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포, 약과, 정과, 다식 등 술의 맛과 향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담백한 음식들을 신선주와 함께 즐기시면 좋습니다.
Q. 어린 시절부터 청주신선주를 접했을 듯합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할머님은 술을 빚으실 때면 손녀들을 옆에도 못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유난히 저를 이뻐하셔서 항상 데리고 다니시곤 했습니다.
고두밥을 지을 때 눈물을 흘려가며 아궁이에 불을 때기도 했고, 할머님이 발효를 위해 방에 두신 항아리 속이 궁금하여 사과 궤짝을 뒤집어 놓고 올라가 뚜껑을 열어보다가 빠질 뻔한 적도 있었어요. 그때 종아리에 회초리를 얼마나 맞았던지 모릅니다.
밤에 잠을 잘 때면 그 항아리에서 보글보글 발효되는 소리가 자장가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청주신선주 빚는 법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 것이지요. 할머님으로부터는 술 빚는 것뿐 아니라 종갓집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는 성인이 되어 술 빚는 것을 보다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특히 술에 들어가는 약재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아버님이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예를 들어 술에 들어가는 생지황의 뿌리를 제가 직접 찌고 말려 숙지황을 만듭니다. 경옥고와 공진단도 만들 줄 알고요. 우리 땅에서 난 것으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아버님의 고집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 본래 건축디자인 사무소를 운영했다고 들었습니다. 충북무형문화재 이수자로 나서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듯합니다.
1994년 아버님께서 충북무형문화재로 지정되시고 나서 무리하게 양조장을 확장하셨어요. 큰돈을 들여 설비를 크게 늘렸는데, 고급 전통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그리 높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생각만큼 빛을 보지 못하셨죠.
결국 3대가 함께 살고 있던 890평 집과 양조장, 선산 등 가산이 모두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제가 양조장을 찾아가 항아리들만 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아버님은 많이 위축되셨고, 대외적인 활동도 나서지 않으셨죠.
무형문화재는 1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공개 시연회를 해야 하는데, 청주신선주는 비싼 약재가 많이 들어가니 술을 빚기 어려우셨던 것이죠.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제가 술을 빚어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부모님에게 술 빚는 법을 배웠습니다. 당시 살던 아파트 방 하나를 비우고 술을 빚었습니다. 술이 끓을 때면 어찌나 냄새가 나던지 아파트에서 민원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결국 작은 한옥 연구실을 얻어 본격적으로 술을 빚었습니다.
물론 아버님이 살아계실 동안에만 무형문화재로 활동하실 수 있도록 돕는다는 차원이었지 이수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아버님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시니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청주신선주의 맥도 끊기겠다는 생각에 이수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지만 아버님은 정말 기뻐하셨죠.
Q. 청주 상당산성 로터리 인근에 복합문화공간 ‘이음1449’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대학의 호텔조리학과나 식품공학과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이와 연계하여 지역에서 전통주와 관련된 의미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이음1449를 설립했습니다. 청주신선주를 비롯해 여름의 연잎주, 가을의 국화주, 겨울의 도수주 등 우리나라의 절기에 따른 절기주 빚는 법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 농민들을 대상으로 로컬푸드를 활용한 레시피 개발, 창업 연계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있어요. 코레일과 함께 신선길이라는 주제로 청주의 전통주와 로컬푸드를 이용한 먹거리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전통주인 만큼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죠.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증류주의 경우 전통 방식으로 제조할 경우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탁주를 걸러 맑은 술을 만드는 데까지 100일 정도 걸리고, 그것을 증류하여 다시 1년 동안 숙성시켜야 부드러운 풍미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 많은 이들에게 청주신선주를 선보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여러 곳에서 납품 문의가 들어와도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올해 제품 라인업을 투트랙으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전통 방식의 청주신선주 제조는 그대로 이어가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자동화 설비를 투입하고 숙성 시간을 단축하여 보급형 신선주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손쉽게 청주신선주를 접하고 즐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