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대화를 나누고 한바탕 웃으며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모습, 이 ‘떡 만들기’문화를 ‘추억’으로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평생 떡을 만들어 온 김왕자 식품명인(식품명인 제42호, 노티떡)은 이 아름다운 풍경이 추억거리가 되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가 평생 우리 떡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통 떡과 떡 만들기 문화가 잊히지 않고 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김왕자 명인의 간절한 바람이 올해도 두둥실 떠오른 추석 만월에 담긴다.
Q. 떡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릴 때 어머니가 늘 만들어 준 간식이 바로 떡입니다. 어머니의 고향이 북한 평안도입니다. 그곳에는 녹두며 팥이며 잡곡이 많이 났는데,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주셨죠. 제가 어릴 때 먹은 떡은 크기가 아주 컸어요.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어요.
그렇게 크게 만들었는데도, 늘 맛있었죠. 어머니는 고향에서 만들던 그 떡을 전쟁 중 피난을 떠나서도 또 이후 서울에 정착한 후에도 만드셨죠.
그 떡을 지인들과 나눠 먹기도 했는데,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떡은 참 좋은 음식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떡은 주는 사람도 기쁘게 만들고 받는 사람도 기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떡을 접한 것이 지금에까지 이르렀습니다.
Q. 평생 떡을 만들어오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떡을 만든다’라고 하면, 예전에는 ‘요즘 누가 떡을 먹느냐’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어요. 그때마다 ‘당신이 만든 떡을 꼭 먹고 싶다, 당신이 만든 떡을 귀한 자리에 내고 싶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하고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제가 이렇게 다짐 하도록 만든 이로부터 떡 주문을 받았어요. 며느리에게 생일 선물로 보내고 싶다면서요. 열심히 연구하고 개발해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Q. 떡을 만들 때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 무엇인가요.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제철에 나는 음식재료를 많이 활용해요. 제철에 나오는 음식재료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철마다의 영양을 공급해 주니까요.
물론 요즘은 철을 가리지 않고 나오는 음식재료가 많고 또 보관 시설도 잘 돼 있어서 꼭 제철 음식재료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철 음식재료로 건강한 떡을 만드는 것이 기본입니다.
무엇보다 떡을 만드는 공정을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지킵니다. 물론 어려워요. 그래도 그러지 않으면 전통 떡 맛이 제대로 안 나오니까요. 우리나라 전통 떡은 그만큼 만드는 이의 정성이 들어가야 완성이 됩니다.
Q. 이렇게 원칙을 지키며 부단히 노력하며 어려운 길을 걸어왔기에, 식품명인으로 지정받고 더욱 기뻤을 것 같습니다.
사실 식품명인이 되고 나서 어깨가 더 많이 무거워졌어요. 그냥 보통으로 해서는 안 되니까요. 우리나라 전통 떡과 그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커졌죠.
Q. 직접 떡전시회를 여는 등 명인님께서는 우리나라 전통 떡과 떡 만들기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써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알리는 일이고, 특히 떡은 우리나라의 좋은 음식이니까요. 쉽지는 않지만, 기쁜 마음으로 해 왔습니다. 언젠가 학생들과 떡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아는 떡의 종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더라고요.
조선시대에 떡의 종류가 몇 가지였는지 아나요? 무려 200가지가 넘었습니다. ‘이러다가 떡이 아주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Q. 명인님처럼 전통을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분들 덕분에, 우리나라 떡이 다시 인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가게에 나가면 기분이 좋아요. 젊은 부부들이 유모차에 자녀를 태우고 와서는 그 고사리손에 우리 떡을 쥐어주고, 또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떡을 직접 고르게도 해요. ‘우리 애가 떡을 좋아해요’라며 떡을 사가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볼 때면 정말 뿌듯해요. 얼마 전에는 한 젊은 아빠가 자녀에게 ‘떡 할머니야, 같이 사진 찍을까?’라고 해서,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이렇게 우리 떡이 좋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요. 힘든 것이 싹 가시죠. 우리 떡을 먹고 자란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떡을 먹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Q. 지난 6월 문화재청이 ‘떡 만들기’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떡 만들기’ 전통 문화가 지속해 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떡을 만들고 이를 사업화하는 청년 사업가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한편으로는 기특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니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렇습니다. 당부의 말이요? 제 딸과 아들도 저의 뒤를 잇고 있는데요.
우리 후배님들에게 바라는 것은 떡을 단순히 음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전통이자 우리가 끝까지 이어갈 문화라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품고 이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 전통이 가진 좋은 문화를 먼저 뿌리깊게 안 후에 그 위에 새로운 꽃을 활짝 피우시라 당부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우리의 좋은 문화와 정신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Q. 우리나라 전통 떡과 떡 만들기 문화가 더욱더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우리 떡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지녔는지 알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나라 떡은 정말로 몸에 좋은 재료로 정성을 들여 만들어요. 그런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우리나라 떡과 떡 만들기 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란 걱정이 들 때도 많아요.
그 가치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으니까 경쟁력이 줄어들고, 그렇다 보니 떡 만드는 일에 부담을 느껴 떡 만드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그래서 가끔 이런 말을 해요. 떡 만드는 사람들처럼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상을 줘야 한다고 말이죠.
우리나라 전통을 이어가는 일의 가치에 대해서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더 힘을 내서 그 일을 계속하게 하려면 누군가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그 노고를 알아준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니까요.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은 우리나라 전통 떡과 떡 만들기 문화가 잊혀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떡이 더 많이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할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추석에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으며 두런두런 대화하고 왁자지껄 웃기도 하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길 바라봅니다.
① 멥쌀가루에 팔팔 끓는 물을 조금씩 부어 익반죽한다. 찬물로 반죽하면 부서질 수 있다.
② 흰쌀 대신 흑미로 만들어도 된다. 멥쌀가루에 대추, 단호박, 쑥 등의 천연재료나 천연색소를 넣고 반죽해 색을 낼 수도 있다.
③ 송편 반죽은 너무 질어도 너무 되도 안 되는데, 그 정도가 귓볼 정도의 느낌이면 적당하다.
④ 반죽이 부드러워질 때 까지 오랫동안 주무른다.
⑤ 콩, 대추, 밤, 깨 등의 송편 소를 준비한다.
⑥ ‘겉 먹자 송편이고 속 먹자 만두’라고, 송편에 소를 많이넣어야 맛있다.
⑦ 송편을 빚을 때는 소를 넣은 후 꼭꼭 누르면서 오무린다. 그래야 바람이 빠진다.
⑧ 찜판에 솔잎을 깔고 그 위에 빚은 송편을 담는다.
⑨ 찜통의 물이 끓으면 송편을 올린다. 찜통 뚜껑은 면보를 감싸서 사용하는데, 그래야 수증기가 송편에 떨어지지 않는다.
⑩ 약 40분간 찐다.
⑪ 다 익으면, 식힌 후 기름을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