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나 들에서 채취한 식용 가능한 식물 또는 이를 조미해 만든 음식을 통칭하는 나물은 오래전부터 한식의 기본이었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제철 나물을 그때그때 밥상에 올리거나 말려두었다가 겨울철 불려서 쓰는 나물 문화의 발달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만 일상에서 흔하게 만나다 보면 자칫 그 존재의 귀함을 망각하게 되는 법. 한식에서는 나물이 그런 존재로, 고화순 명인이 나물 분야에서는 최초로 명인 도전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고사리나물 제조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90호)에 지정됨으로써 고사리나물의 전통성과 정통성 그리고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고화순 명인을 만나 우리 나물의 가치와 활용법 등을 들어보았다.
Q. 한식 상차림에서 나물은 빠질 수 없는 반찬입니다. 일상식 외에도 우리 민족이 나물을 가까이했음을 알 수 있는 풍습이 있나요?
나물은 산과 들에서 나는 제철 채소를 익혀 만든 숙채와 날것으로 요리한 생채를 아우릅니다. 꼭 제철에만 먹지 않고 여러 방법으로 말린 후 묵나물(묵은 나물)로 보관해 두었다가 먹을거리가 귀한 겨울철에는 불려서 조리해 밥상 위에 올렸지요.
주로 한식의 기본 반찬으로 먹었지만, 밥이나 국에도 활용했고 후식으로도 나물을 즐겨 먹었어요.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이곳에서 철마다 다양한 식감과 영양소를 지닌 나물을 얻을 수 있었기에 나물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거죠.
나물을 가까이한 민족답게 일상식뿐만 아니라 제사상에도 나물은 꼭 들어가야 하는 제수예요. 3가지 색 나물에는 각각의 의미를 부여했는데, 뿌리채소인 도라지는 조상을, 줄기채소인 고사리는 부모와 나를, 잎채소인 시금치는 자손을 상징하죠.
또 얼마 전에 지난 정월대보름에는 고사리를 비롯한 9가지 묵나물을 먹어야 그해 여름 더위를 이길 수 있다는 풍습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지요.
Q. 나물류 명인 지정은 이번이 최초인 것으로 압니다. 그만큼 명인 지정 과정이 까다롭다는 의미일 텐데요. 명인 지정에 꼭 필요한 전통성과 정통성을 어떻게 입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대한민국식품명인에는 식품 종류별로 장류, 김치, 술 등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세부 항목에서 나물은 아예 빠져 있어요.
한식에서 채소로 만든 대표적 반찬으로 김치와 나물을 꼽을 수 있는데, 유독 나물에만 밥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음식에 명인 지정이 꼭 필요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죠. 그런 만큼 명인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는데요.
다행히 전통성 측면은 <증보산림경제>, <고사신서>, <규합총서> 등 23개의 고문헌에 나물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저는 그중 1450년에 편찬한 <산가요록>에 나온 방법으로 원형을 복원했어요.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고사리를 뜯고 삶고 잘 말려 묵나물로 보관한 다음 식감과 나물의 깊은 맛을 살리는 법을 보고 배운 덕분에 고증문헌에 기록된 대로 복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죠. 고충을 겪은 건 정통성 부문이었어요.
특히 평생 고사리를 캐온 외할머니의 증빙자료를 수집하는 데 애를 먹었어요. 당시의 기록이 문서화 되어 있지 않은 데다 오래전 작고하신 외할머니의 삶을 증언해줄 이웃들조차 고령에 글을 몰라 녹음한 다음 공증을 거쳐야 했어요.
여기에 외할머니에 이어 고사리와 도라지 등 나물 다루는 일을 평생 해온 어머니의 증빙자료와 23년째(명인 지정 시기인 지난해 기준) 나물을 가까이해온 저, 그리고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우리 나물을 가치를 이어가는 딸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100년 넘는 가족의 나물 역사가 정통성을 입증해주었죠.
Q.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거쳐 구전으로 내려오는 고사리나물 제조 방법을 복원하고 딸에게 전수함으로써 100년의 역사를 잇고 계신데요. 명인께 고사리나물은 어떤 의미이며,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거쳐 저와 제 딸에 이르기까지 고사리는 10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집안의 먹거리이자 소중한 수입원이었어요. 외할머니는 평생 가족을 위해 직접 고사리를 채취해 말린 후 고사리나물을 만들어 생활비를 마련하셨고, 식구들의 겨울 식량으로도 활용했어요.
어릴 적 외할머니 손에 자란 저 또한 고사리나물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고요. 어머니는 봄철에는 고사리를 캐 말린 후 내다 팔고 이와 별개로 도라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언제나 나물은 우리 집에서 중요한 존재였죠.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물로 생계를 책임지는 일을 돕던 제가 나물과 좀 더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1995년 우리나라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 더불어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면서부터였어요.
당시 저는 학교 급식에 납품하는 식재료회사에 다녔는데, 어머니가 짓던 도라지와 고사리 등의 나물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학교 급식에 우리 나물을 납품할 수 있도록 직접 영업을 뛰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좀 더 품질 좋은 우리 나물 제조 방법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고사리나물 외에도 가지나물, 박나물, 도라지나물, 호박나물, 취나물, 곤드레나물 등 전통 묵나물 제조기능을 보유하게 되었고요. 이중 가장 인연이 깊고 오래된 고사리나물로 명인에 도전해 지정받으면서 우리 나물과 더 끈끈하고 의미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Q. 고사리나물 제조 명인으로서 고사리나물에 담긴 영양적 가치를 설명해 주세요.
제가 나고 자란 경북 울진에서는 고사리나물을 매우 다양하게 활용했어요. 제사상에도 삼색나물 외에 고사리에 콩가루를 묻혀 무, 콩나물과 함께 끓인 국을 올렸고요. 비빔밥에도 고사리나물이 빠지지 않았어요.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릴 만큼 나물로서는 드물게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점을 일찍이 인지한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죠. 또 고사리에는 섬유소가 다량 함유돼 변비 등을 없애주는 데 탁월할 뿐만 아니라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칼슘도 풍부합니다.
한때 외국의 한 목장의 소들이 주변 고사리를 먹고 암에 걸려 죽었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고사리가 몸에 해로운 발암식품인 것처럼 왜곡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고사리에는 타킬로사이드라는 3군 발암물질이 함유되어 있지만, 몇 달 동안 집중해 먹지 않으면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미량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고사리에 들어있는 타킬로사이드와 비타민B1을 파괴하는 티아미네이즈 등의 유해 성분은 고사리를 삶은 후 4회 정도 물을 갈며 12시간 이상 담가놓으면 분해된다는 광주보건환경연구원의 논문 결과가 있으니 안심하세요.
Q. 명인께서 복원한 고사리나물의 제조 방법을 토대로 고사리를 뜯는 방법부터 삶고, 말리는 법, 또 묵은 냄새를 제거하고 좋은 식감과 깊은 맛을 내는 법에 대해 조언해주세요.
이른 봄 산과 들에 돋은 고사리를 채취할 때는 땅에서 3~4cm 간격을 두고 꺾어야 나중에 먹을 때 딱딱한 식감을 피할 수 있어요. 삶을 때는 나중에 한 번 더 삶을 것을 염두에 두고 너무 푹 익히지 않는 게 포인트예요.
줄기 아래쪽이 절반가량 물렀을 때 건져 말리는 것이 좋고요. 두어 시간이 지났을 무렵 뒤집어 말려야 고사리밥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보존할 수 있어요. 잘 마른 고사리나물을 보관할 때는 상온에 두면 묵은 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좋고요.
먹을 때는 쌀뜨물에 하룻밤 불린 후 그 물 그대로 삶는데, 끓을 때 찬물을 한 바가지 붓고 불을 낮춘 후 뜸을 들이면 부들부들한 상태가 돼요. 이후 3번 정도 물을 갈아주면 묵은 냄새와 비린내 등이 말끔히 제거된 본연의 고사리나물을 맛볼 수 있습니다.
Q.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해 좀 더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사리나물 요리 팁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현실적으로 묵나물을 불리고 삶아 반찬을 만들기까지는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갑니다. 다행히 시중에 불려서 삶아놓은 고사리나물이 많이 나와 있으므로 이를 활용하면 좀 더 간편하게 나물 반찬으로 만들 수 있어요.
젊은 세대들은 기호에 맞게 파스타나 샐러드에 곁들여도 좋지만, 반찬과 술안주를 겸할 수 있는 고사리전도 별미예요. 삶아서 물기를 제거한 고사리를 2cm 크기로 자른 다음 국간장과 들기름,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섞어 잠시 두었다가 달걀로 반죽한 부침가루에 섞은 다음 부치면 완성이라 매우 간단하죠.
여기에 볶은 소고기를 같이 넣어서 부치면 식감과 영양이 훨씬 좋아지고요. 고추와 다진 파를 올리면 색감까지 화사해지죠.
Q. 명인 지정을 통해 뿌듯함과 더불어 고사리를 비롯한 우리 나물에 대한 책임감이나 소명의식 또한 더욱 커졌으리라 짐작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명인에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비로소 하나의 산을 넘은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평생 나물로 가족을 뒷바라지하신 외할머니와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효도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고요. 최연소이자 나물 분야 최초의 명인이라는 묵직한 타이틀은 이전보다 좀 더 원대한 목표를 품게 했어요.
우리 나물의 보존 가치를 제대로 전승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속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 기여해야겠다는 새로운 꿈이 그것이죠. K푸드 붐에 힘입어 나물 수출시장을 확대해 우리 나물의 세계화를 꾀하고, 궁극적으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