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오묘하다!” 가자미식해를 처음 맛보았을 때 흘러나온 감탄사였다. 새콤하면서도 매콤하고, 쫀득한가 하면 아작거렸으며, 구수하면서도 시원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짜르르한 감칠맛은 잘 익은 김치와 젓갈 사이의 어디쯤에서 서성거리는 듯 오묘하다. 그 맛의 비밀을 찾아 강원도 속초를 찾았다.
Q. 속초로 시집을 와 실향민인 시어머니께 가자미식해를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시집오기 전부터 젓갈이나 식해 등 요리에 관심이 많았나요?
시어머님뿐 아니라 친정어머님도 실향민입니다. 북에서 내려와 강원도 양양군에 정착하셨죠. 저는 양양군 강현면 바닷가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각종 수산물과 그 가공법을 접하면서 자랐습니다. 요즘에는 명태가 잘 잡히지 않지만, 제가 어릴 적에는 강원도에서 매우 흔한 생선이었죠.
어머니는 겨울철이면 바닷가로 나가 명태 손질하는 일을 하셨고, 품삯으로 명태 내장이며 아가미 등을 받아오시곤 했습니다. 이것으로 창란젓, 서거리(명태 아가미)젓 등을 담가 먹었고, 명태살을 김치에 넣어서 식해처럼 먹기도 했습니다. 오징어젓도 반찬으로 흔히 먹었죠.
지금도 제 기억에 선명한 것은 부둣가에서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생선을 다듬으시던 친정어머님의 뒷모습입니다. 이제는 제가 생선을 다듬고 있는 모습을 제 아들딸들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느끼는 이 뿌듯함을 그때의 친정어머님도 느끼셨을 듯합니다.
Q. 실향민인 시어머니께 고향의 맛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듯합니다. 또 시어머니의 가자미식해를 처음 맛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한국전쟁 당시 어린아이였던 시어머님은 시할머님을 따라 함경남도 남부 해안가에 자리한 정평군에서 이곳 강원도 속초로 오셨습니다. 포대기에 업혀서 내려오셨다고 하니 고향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다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큼은 크고 깊어서 항상 돌아가고 싶은 곳이라 말씀하시곤 했죠.
그리고 함경도 전통음식인 가자미식해를 비롯한 젓갈류는 시할머님이 고향이 생각날 때면 종종 만들어 드시던 추억의 음식이어서 그리운 고향의 맛으로 시어머님의 기억 속에 각인된 듯합니다. 그렇게 함경도 가자미식해는 시할머님에서 시어머님으로, 그리고 다시 저에게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명태식해나 여러 젓갈류를 먹으며 자라왔던 저에게도 가자미식해는 그리 친숙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 맛을 본 것이 전부였죠. 처음 시어머님이 만드신 가자미식해를 맛보았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어찌나 새콤하고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잘 익은 김치를 먹었을 때의 그 짜르르한 맛을 내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Q. 시어머님께 가자미식해를 배울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또 시어머님이 음식을 만드실 때 강조하시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친정어머님이 자식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시려고 그랬는지, 어릴 때부터 젓갈류를 많이 먹어보긴 했지만 직접 만들어본 적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가자미식해를 담그는 데 첫 번째 과정인 가자미 손질부터 난관이었죠.
막 잡은 생물 가자미는 점액질이 온몸을 감쌉니다. 어찌나 미끄러운지 손으로 잡을 수가 없었고, 그러니 칼을 댈 수조차 없었어요. 나중에야 1차 염장한 후 손질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소금을 뿌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점액질이 사라지거든요.
또 그렇게 손질한 가자미를 염장했다가 탈염을 하는데, 염분이 적당히 빠졌는지 염도를 측정할 때 생가자미를 입에 넣어 오로지 미각으로 맛을 봐야 하는 일도 고역이었어요.
당시 시어머님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가자미식해를 만들어서 이웃들과 나누거나 내다 팔기도 했죠. 한 번에 400~500kg씩 가자미식해를 담그곤 했는데요,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덤벼들지만 힘들기 시작하면 조금씩 요령을 피우게 되죠.
그렇게 요령을 부릴라치면 시어머님은 어떻게 눈치를 채셨는지 호되게 혼을 내곤 하셨어요. 또 열심히 만들어도 원하는 맛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요.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처럼 명인의 칭호를 받게 된 것 같습니다.
Q. 어떤 계기로 가자미식해에 반하게 되셨고, 이렇게 사업체(선호식품) 운영과 명인 선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신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시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 알아주었어요. 당연히 가자미식해의 맛이 점차 소문이 나면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었고, 시어머님이 연세가 드시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물려받게 됐습니다. 제 나름의 사명감도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식해를 마시는 음료인 식혜와 헷갈리기도 하고, 더러 젓갈류는 어르신들만 먹는 음식이라고 치부하거나, 특히 가자미식해는 비려서 못 먹겠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가자미식해는 옛날부터 선조들이 즐기며 대대손손 이어져 온 맛에 대한 기억 혹은 이미지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향민들이 정착한 강원도 북부 지역 등에는 그 제조 방법이 계승되어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젓갈 제조 방법들이 현대화되거나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통 음식문화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죠.
특히 가자미식해의 맛을 이어가는 것은 제 사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전통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그리움의 맛에 문화적인 가치가 담겨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Q. 조선시대 조리서인 <산가요록>과 <주방문>에 기록된 가자미식해 조리법과 명인의 그것이 매우 유사하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전기에 어의 전순의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인 <산가요록>에는 가자미를 세절(가늘게 자름)하고 소금을 뿌려 재워둔 뒤 탈염하여 무거운 물건으로 누른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만드는 방식과 일치합니다.
다만 메좁쌀로 양념하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점이죠. 조선시대 후기에 기록된 <주방문>에는 메좁쌀로 양념하는 방법까지 적혀 있습니다. 저희의 제조 방법과 달라지는 부분은 바로 이 메좁쌀에 소금 간을 해서 하루 재워둔다는 것입니다.
결국 염도를 제외하면 조선시대의 가자미식해 제조 방법과 저희 선호식품의 제조 방법이 일치하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 저염식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서 요즘보다 짜게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젓갈의 경우 예전에는 염도가 10도가 넘었는데, 요즘에는 보통 4~5도 수준입니다. 가자미식해는 간을 하지 않은 메좁쌀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보다 1도 정도 더 낮습니다.
Q. 가자미식해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에 대한 명인만의 고집이 궁금합니다.
가자미, 무, 좁쌀, 천일염, 고춧가루, 마늘, 생강, 청주, 매실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가자미를 고르는 일입니다.
보통 가자미는 5월이 어족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금어기인데요, 산란 후에는 기름기가 빠져서 맛이 덜합니다. 때문에 가자미의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에 어획되는 기름가자미(물가자미) 중에서 3년생 이상인 13~17cm 크기의 것을 매입해 사용합니다. 기름가자미를 쓰는 이유는 살이 부드럽고 담백하기 때문입니다.
소금도 가자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식해를 담글 때는 꼭 천일염을 써야 합니다. 불순물을 없애고 나트륨만 남긴 일반 정제염으로 식해를 만들면 염도를 맞추기도 어렵고, 식해 특유의 깊은 맛이 나지 않습니다.
칼슘, 마그네슘, 미네랄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천일염은 삼투압 현상이 잘 일어나 가자미의 비린내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효과가 뛰어나고, 원하는 염도를 맞추기에도 좋습니다.
Q. 살염법, 탈염법, 계절에 따른 배합 등이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재료에 직접 소금을 뿌리는 방법을 살염법이라고 합니다. 살염법을 사용하면 소금의 삼투압 효과로 원재료 속의 수분을 조절해 저장성을 향상시키고, 미생물의 활동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염장이 완료된 가자미는 물로 씻어내는 세척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이 바로 ‘탈염법’입니다.
이때 탈염이 과하면 식품이 부패하게 되고, 부족하면 제대로 발효되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탈염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계절에 따른 배합은 농산물과 수산물이 익는 속도의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특히 여름에 무는 빨리 익고, 가자미는 천천히 익습니다. 이 때문에 무와 가자미를 따로 숙성시켜 이후에 함께 버무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꼭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Q. 최근 젓갈은 저온 숙성이 대세인데, 가자미식해만큼은 전통적인 실온 숙성을 통해 맛을 내고 있죠?
저온 숙성은 말 그대로 냉장고를 이용한 숙성 방법으로 염도를 낮춰 담근 요즘의 젓갈 맛에 맞춘 것입니다. 김치에 비유하면 겉절이 같다고 할까요? 저희 선호식품에서 담그는 다른 젓갈들은 대부분 5℃ 이하의 저온에서 발효 숙성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가자미식해는 전통적인 실온(20~24℃) 숙성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수산물인 가자미에 무, 좁쌀 등의 농산물이 어우러져 실온에서 숙성해야만 제맛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금과 생선을 이용한 유산발효와 농산물을 이용한 젖산발효를 통해 저장성과 맛을 동시에 높이는 것이죠.
보통 7~10일 정도 실온에서 숙성시키는데, 양념이 가자미와 무에 충분히 배어들면서 발효되기 때문에 겨울철 김장김치와도 같은 깊은 맛을 냅니다.
Q. 전통적인 제조 방법을 고수하면서도 ‘유산균 가자미식해’ 특허등록을 하는 등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유산균 가자미식해를 만들어보고자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가 식해와 김치가 많이 닮아 있다는 데 생각이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김치의 유산균을 추출해 가자미식해를 만들었더니 저희가 원하는 맛이 나왔죠. ‘락토바실러스 플란티륨’이라는 유산균이 많이 증가한 것이죠.
이 유산균은 기존 가자미식해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가바(GABA) 성분을 활성화시킵니다. 가바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불안, 복통 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유용한 유산균을 활용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예정이며,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나는 농수산물을 활용한 제품들도 구상하고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