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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가리구이로 계승한 전통 한식의 구이 문화, 김외순 식품명인

가리구이로 계승한 전통 한식의 구이 문화 김외순 식품명인(대한민국식품평인 제89호)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갈비는 잔치 음식으로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특히 소갈비구이는 격식을 중시한 한식 상차림에서도 유독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소갈비만의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식감과 육즙에 양념이 스며들어 호불호 없는 맛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전통 한식 구이 문화의 계보를 잇는 소갈비구이는 어떤 형태일까. 김외순 명인(대한민국 식품명인 제89호)은 지난해 말 가리(소갈비)구이 부문에서는 처음으로 명인에 선정됨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했다.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가리구이 제조 기술을 바탕에 두고, 고문헌을 근거로 한 가리구이 복원 능력을 인정받은 김외순 명인을 만나 그만의 차별화된 비법 등을 알아보았다.

김외순 식품명인(대한민국식품평인 제90호) 명인 패

Q. 가리구이에서 ‘가리’는 익숙하지 않은데, 어떤 의미인가요? 아울러 우리 조상들은 가리구이를 어떤 식으로 즐겼는지도 궁금합니다.

‘가리’는 갈비의 옛말로, 가리구이는 요즘 말로 갈비구이, 그중에서도 소고기갈비구이를 의미합니다. 가리구이에 대한 기록은 <임원십육지(1835년)>와 <시의전서(1800년대 말)> 등의 고문헌에 남아 있습니다.

옛 자료에 의하면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갈비를 얇게 포 뜬 다음 둘러앉아 화롯불에 구워 먹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출발해 숯불에 구워 먹는 갈비구이로 변천해오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Q. 지난해 가리구이로 제89호 대한민국 식품명인에 지정되셨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내용이 가리구이의 전통성을 말해준다면, 가리구이를 전수받게 된 명인 개인의 역사는 정통성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었을 텐데요. 가리구이 관련해 집안의 내력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은 경북 의성군 안계면으로, 근방에 큰 규모의 우시장이 있었어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으니 제법 역사가 오래된 곳이었죠.

우시장을 가까이 둔 덕분에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소고기를 구할 수 있었던 데다 동네에서 이따금 소 한 마리를 도축해 마을 사람들끼리 나눠 먹는 문화가 있다 보니 비교적 소고기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자주 있었어요.

맛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건 인근에서 음식 솜씨로 입소문이 자자했던 어머니 덕분인데, 단지 솜씨만 좋은 게 아니라 지혜롭기로도 손에 꼽혔지요.

가령, 그때만 해도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저장할 방법이 마땅찮았는데, 어머니는 창호지나 베보자기에 고기를 싸서 소금 항아리에 묻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곤 하셨어요.

고기를 양념해 구울 때도 어머니만의 독창적인 재료를 넣어 맛과 약리적 효능을 더했는데, 제가 복원한 가리구이 비법의 핵심이기도 한 천초(산초, 제피)가 그것입니다. 후추를 비롯해 고기 양념에 쓰이는 향신 재료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던 시절에 어머니만의 지혜를 음식에 활용하신 거죠.

인근 야산에서 직접 채취한 천초는 고기 양념 말고도 어머니 요리에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예전에는 비료가 없어 인분을 밭에서 키우는 배추나 무의 거름으로 사용했어요. 그래서 다른 집은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독소 때문에 날것으로는 먹지 못했지만, 우리 집은 달랐어요.

천초를 넣으면 독소가 제거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어머니 덕분에 생으로도 자주 먹을 수 있었어요. 당연히 가족 누구도 배앓이를 한 적이 없었고요.

이렇듯 솜씨와 지혜를 겸비한 어머니는 동네 대소사에 불려 다닐 만큼 인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명인 신청을 위해 정통성 자료를 준비할 때도 한동네에서 자라 이러한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현 의성군문화원장이 기꺼이 증인이 되어주셨어요.

가리구이

Q. 어머니의 가리구이 비법을 단지 추억의 맛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머니가 외할머니로부터 배워 익힌 가리구이 비법을 계승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결혼 후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면서였어요. 한 전통시장에서 떡볶이와 튀김 등의 노점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는데, 힘들어서 그랬는지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시던 가리구이 맛이 유독 자주 떠올랐어요.

그제야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어머니만의 가리구이 비법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고요. 다행히도 현재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아들이 다음 계승자로서 가리구이 비법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나가고 있습니다.

Q. 소갈비구이는 가정에서나 주변 식당에서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갈비구이와 명인의 가리구이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앞서 설명했듯, 제가 복원한 가리구이는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사용했던 요리법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소갈비를 양념하고 숙성해 구워내는 전통 방식을 따르되, 천초와 마늘 등을 사용해 잡내는 제거하고 영양성분은 더한다는 점에서 여느 소갈비구이와는 선명히 구분됩니다.

특히 천초를 갈비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유일한데, 천초의 경우 본연의 향이 매우 강하므로 양념으로 사용할 때는 원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비율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외에도 갖은양념을 넣은 간장에 담가서 재우는 것이 아니라 소금과 천초 중심의 재료들을 가루로 혼합해 뿌리는 방식으로 양념한다는 점, 신선한 배와 파인애플즙으로 연육 작용과 소화 흡수를 돕는 등 맛과 영양, 식감 등을 위한 최상의 재료들이 어우러져 지금의 가리구이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초양념 가리구이

Q. 명인의 가리구이 비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향신료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양념은 단연 천초입니다. 젊은 층에게는 다소 생경한 천초의 효능은 무엇인가요?

초피나무의 열매인 천초는 <동의보감>에도 그 효능이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예로부터 천초는 음식의 양념 이전에 뛰어난 약리작용으로 인해 약재로 널리 쓰였지요.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 면역력을 돕고, 몸 안에 축적된 독소를 해독하며, 통증을 완화한다는 게 주요 효능인데요. 가리구이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특유의 천초 향으로 고기의 잡내를 제거하고 속을 따뜻하게 해 소화를 촉진하며, 산패를 방지하는 등 기특한 역할을 해내지요.

30년 넘게 가리구이를 만들어왔지만,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제 음식을 먹고 식중독이나 배앓이를 경험한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건 바로 이 천초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명인께서는 이미 갈비구이 분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인정받는 걸로 압니다. 그와 별개로 명인 신청에 나선 계기는 무엇인가요?

격식을 갖춘 우리 고유의 한식 상차림에서 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식품명인은 김치나 장류, 떡 등에 집중돼왔습니다. 최근에 가리적(떡갈비) 분야 명인이 선정된 바 있지만 가리구이 명인은 없었어요.

우리나라 전통 음식에서 구이 문화가 하나의 축을 받치고 있는 만큼 가리구이 분야 명인 도전으로 구이 문화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아울러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제가 계승해온 가리구이 비법을 다음 세대뿐만 아니라 이후 자손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단 바람도 명인 도전에 나서게 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 식품명인은 한 분야에서 전승자를 배출하고, 오래 계승해 나가는 게 목적인 만큼 명분과 소명 의식을 더하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 명인만큼 의미 있는 도전은 없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전통 가리구이 분야 최초의 명인 김외순 식품명인(대한민국식품평인 제90호)

Q. 전통 가리구이 분야 최초의 명인으로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리 전통의 가리구이 맛을 오래오래 후대에 전승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신청했고, 그 마음과 노력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명인에 지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러한 의미를 제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즉, 우선은 가리구이가 전통 음식으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제대로 계승하고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명인이 된 만큼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무려 한 시간씩이나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인기가 높다는 미국 뉴욕의 한 한국식 숯불구이식당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일흔이 넘었음에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우리의 전통 음식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하니 뿌듯함과 더불어 가능성이 열리는 느낌이었지요.

명인으로서 ‘가리구이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된 배경인데요. 이제 시작인 만큼 꼭 제가 이루지 못해도 다음 세대에서는 반드시 세계에 우리 전통의 가리구이 맛을 알릴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명인으로서 책임감과 사명을 다하려고 합니다.

전통 가리구이 양념
전통 가리구이 양념 만들기
전통 가리구이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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