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갈색의 갱엿을 입에 넣고 굴려보았다. 딱딱하고 끈끈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엿은 금세 물렁물렁 부드럽게 녹으면서 단맛을 입안 가득 퍼지게 한다.
그런데 그 단맛이 지나치지 않다. 달지만 구수하고, 맛은 깊어 자꾸 음미하게 만든다. 깊은 단맛이라니! 치악산 자락 황골마을의 김명자 옥수수엿 명인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Q. 황골마을은 예로부터 옥수수엿으로 유명했다고 들었습니다. 명인과 강원도 황골마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치악산 서편 자락에 자리한 황골마을의 옥수수엿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태조 이방원의 스승인 문인 원천석 선생이 이곳에서 엿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 역사는 자그마치 600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고향인데 부산에서 직장을 구해 일을 하다가 남편(김찬열 씨)을 만나 서른 즈음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원주역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깜깜한 밤길을 달려 황골마을에 도착했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산골마을에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깡촌’이었어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서 나갈 방법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Q. 당시 황골마을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강원도의 깊은 산골 마을답게 밭농사 위주의 농업 그리고 옥수수엿과 조청 만드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옥수수를 비롯해 감자, 수수, 들깨 등의 농사를 지었고, 봄과 가을에는 누에치기도 많이 했어요.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엿 만들기로 바빴습니다.
농한기이기도 하고 기온과 습도 등의 영향으로 겨울철에 엿을 만들어야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황골마을에는 저희 장바우치악산황골엿 외에도 10여 곳의 황골엿 제조·판매 업체가 있습니다.
이제 황골마을도 많이 발전하여 카페, 펜션, 음식점 등이 여럿 들어섰지만, 여전히 황골엿이 이 마을 최고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어요.
Q. 약 100년 동안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옥수수엿 제조 비법을 배우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저녁밥을 지어먹고 밤 10시쯤 잠이 들었다가 새벽 1시면 일어나야 했습니다. 아침까지 솥단지를 붙들고 있어야 했으니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지요.
아침을 먹고 나면 포장하고, 점심을 먹으면 또 엿 만들기가 시작됩니다. 커다란 솥에 가득 든 엿물을 긴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하니 팔과 어깨가 아픈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기계로 좀 쉽게 만들어 볼까 하고 고민도 해보았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습니다. 전통 비법을 알려주신 시어머니를 비롯한 어르신들 볼 낯이 없고 맛도 제대로 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Q. 황골엿은 부드러워 가래엿을 만들지 않고 갱엿으로 그냥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엿은 곡물에 엿기름을 더해 당화한 엿물을 졸여 만듭니다. 수분이 많으면 조청이라 하고, 이것을 더 졸이면 짙은 갈색의 갱엿이 되며, 이를 여러 번 잡아 늘이는 켜는 작업을 통해 공기가 들어가면 흰엿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가래엿은 이 흰엿을 길게 늘인 것이죠.
전라도나 경상도 등 아래 지방은 쌀이나 좁쌀로 엿을 만들기 때문에 갱엿이 너무 딱딱해서 엿을 켜서 먹기 좋게 만듭니다. 하지만 강원도 황골엿을 비롯해 옥수수가 많이 나는 북쪽 지방의 엿은 갱엿 자체로 먹습니다. 옥수수가 들어가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또 황골엿은 물에 불린 곡물을 갈아서 엿기름과 물을 더해 가마솥에서 끓이는데, 이렇게 애기죽을 끓이는 공정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옥수수가 쓴맛을 내기 때문에 분쇄한 옥수수알을 흐르는 물에 며칠 담가놓아 쓴맛을 없애는 것도 황골마을 전통 비법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황골엿만의 부드럽고 깊은 맛의 옥수수엿이 탄생하는 것이죠.
Q. 황골엿은 곡물의 구수한 맛이 단맛과 잘 어우러지는 듯합니다. 엿을 만드는 재료도 맛을 내는 데 중요할 것 같습니다.
황골엿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옥수수, 쌀, 엿기름 이렇게 3가지입니다. 엿을 전문적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다른 농사는 접었지만 옥수수 농사는 지금도 직접 짓고 있어요.
쌀은 강원도 원주 쌀을 사용하고 있고, 엿기름은 맥아 효소를 구입하여 쓰지 않고 보성군 벌교 보리를 들여와 직접 싹을 틔워 만듭니다.
물은 치악산의 깨끗한 지하수를 사용하고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기 위해 효소나 엑기스를 구입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사카린이나 설탕이 만들어낼 수 없는 황골엿만의 구수한 단맛을 내기 위해 좋은 재료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죠.
Q. 황골엿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1999년 즈음부터 보다 전문적으로 황골엿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당시 원주시농업기술센터의 권유와 지원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엿 만들기는 잘했지만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몰라 갈수록 빚만 늘어나더군요. 하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마음을 다잡고 발품을 팔아 황골엿 알리기에 전념했습니다.
부지런히 행사를 찾아다니며 황골엿의 맛을 홍보하고, 유통업체를 직접 방문해 황골엿의 우수성을 알렸습니다. 그 결과 우체국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입점하는 등 성과를 내며 자리를 잡게 되었죠.
Q. 전통엿은 어떤 효능이 있을까요? 또 예로부터 어떻게 사용되었나요?
<동의보감>에 보면 갱엿을 먹으면 기력을 보하고, 원기 회복에 좋으며, 가래와 기침을 멎게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소화에도 좋아 옛 어르신들은 엿을 식혜와 함께 소화제로 드시기도 했습니다.
또 머리를 맑게 한다고 하여 조선 시대 궁중에서는 왕의 밤참으로 종종 엿이 오르곤 했으며, 왕세자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조청을 먹였다고 합니다.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 허리춤에 엿을 매달아주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물론 요즘과 같이 끈적한 엿처럼 시험에 철썩 붙으라는 의미도 있었을 것입니다. 혼례 때 폐백이나 이바지 음식에도 엿이 쓰였습니다. 새 며느리의 흉을 보지 않도록 시집 식구들의 입을 막기 위해 엿이 준비된 것이지요.
Q. 갱엿과 조청 외에도 땅콩깨조각엿, 생강엿 등 다양한 엿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꾸준한 연구를 통해 메밀 조청, 배와 도라지 조청 등을 만들어 특허등록을 하기도 했습니다. 튜브 조청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병에 들어 있는 조청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간편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적은 용량의 조청을 튜브에 담은 것입니다.
갱엿보다 더 까만색의 흑미엿은 옥수수엿과 함께 지금도 고객들이 많이 찾는 상품입니다. 한 5년 전부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김기석 씨)이 내려와 황골엿 전수자로 나서서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자 합니다.
해외 판로를 개척하고, 전통 옥수수엿 제조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동화 시스템을 더해 생산량을 늘릴 계획도 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황골엿의 기분 좋은 단맛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