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발효 음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다양하게 발전해 왔으나 한국의 발효법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복합균에 의한 자연발효 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식의 발효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자연 발효’ 입니다.
세균, 효모, 곰팡이 등 복합적인 미생물이 관여되어 복합 발효가 이루어 집니다. 둘째는 목적에 따라 기능이 우수한 균을 선발하여 집중 배양하고 단일균을 중심으로 발효시키는 ‘기능성 발효’ 입니다. 한국의 발효 음식은 특이하게도 대부분 자연 발효법에 충실해 왔습니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조화 안에서 발견하고 기뻐하며 그 지혜를 대물림 하는 역사의 기록입니다. 식물과 어류의 생장에 관여한 미생물, 공기로부터 유입되는 미생물, 사람의 손과 호흡으로 전해오는 미생물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화를 이루며 음식에 제 2의 호흡을 불어 넣었습니다.
한국의 4대 발효음식으로 김치, 장류, 젓갈, 식초를 꼽습니다. 전통 제조법은 모두 자연발효법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 어떻게 하면 오래 보존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결코 자연의 순리를 제어하려 들거나 역행하지 않았습니다.
발효 음식은 한국 식문화에 뿌리가 되어 그 자체로서도 완성도 높은 요리가 되었고, 비벼먹고 무쳐먹고 밥에 올려 먹고 국으로 끓여먹는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꽃피워 졌습니다.
♣ 김치
김치는 자연 발효의 총체적 보고(寶庫)입니다. 김치는 약 200여종에 이르며 그 맛과 양념은 집집마다 지역마다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배추와 무를 주재료로 하고 고춧가루, 마늘, 파, 생강, 양파, 부추 등을 부재료로 씁니다.
기호에 따라 젓갈을 넣어 감칠맛을 주며 최종적으로 찹쌀로 풀을 쑤어 원재료에 부재료를 부착시킵니다. 원재료를 소금으로 절이는 과정에서 과도한 수분을 빼고 부패성 미생물과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을 제거합니다. 염분은 물로 씻어내니 이 과정에서 원재료는 유익한 미생물 발효가 일어날 수 있는 백색의 도화지가 됩니다.
김치 발효를 주도하는 3대 균종은 류코노스톡 (Leuconostoc) 속과 락토바실러스 (Lactobacillus) 속, 와이셀라 (Weissella) 속 입니다. 초기에는 류코노스톡속이 주를 이루어 유인균 역할을 합니다.
신맛을 내는 젖산과 초산, 톡 쏘는 맛을 내는 이산화탄소, 시원한 단맛을 내는 만니톨, 독특한 발효향을 내는 아세토인 등 다양한 대사 산물을 생성하고 김치의 시원하게 달콤한 맛과 향, 아삭한 식감을 연출합니다.
점차 락토바실러스속과 와이셀라속이 증가하는데 이 흐름에 따라 영양적 가치는 축적되며 깊고 풍미로운 익은 김치 맛을 내다가 묵은지가 되어 갑니다. 김치는 저칼로리 알칼리성 음식으로 살아있는 유산균이 풍부하며, 아미노산, 유기산, 포도당, 조섬유질, 비타민, 무기질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락토바실러스 사케아이 (Lactobacillus sakei) 와 와이셀라 시바리아 (Weissella cibaria) 균은 과민성 피부 면역 질환인 아토피 피부염을 개선하는 것으로 발표된 바 있습니다.
락토바실러스 플랜타룸 (Lactobacillus plantarum), 락토바실러스 카제이 (lactobacillus casei) 등도 장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비만이나 변비를 개선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탁월한 기능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치의 발효 산물 가운데 ‘페닐젖산(phenyllactic acid, PLA)’이 있는데 이는 리스테리아, 살모넬라 등 식중독균을 비롯한 곰팡이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작용을 합니다. 김치를 먹으면 항암, 항염,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음이 연구 논문으로 밝혀졌으며 장내 미생물 환경을 건강하게 유도함으로써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 장류
한국의 전통 장류는 크게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으로 분류하며 콩이 주 원료가 됩니다. 콩은 단백질(40%), 식물성 지방(20%), 탄수화물 및 미네랄, 이소플라본 등이 함유되어 있는데 자연 상태로는 맛이 없을뿐더러 영양소의 체내 흡수가 어렵습니다.
이런 콩을 삶고 으깨어 메주로 빚어내면 발효가 시작됩니다. 일본의 미소와 다른 점은 일본 된장은 황국균 (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 Asperigillus oryzae) 단일종으로 발효되지만 한국 전통 메주는 황국균 외에 털곰팡이, 뿌리곰팡이, 푸른곰팡이, 누룩곰팡이, 좁쌀곰팡이, 분곰팡이, 홍국균 등 다양한 곰팡이와 고초균 (바실러스 서브스틸러스 Bacillus subtilis) 등이 작용하면서 천연의 복합적인 맛을 내는 데 있습니다.
메주에서 자라난 각종 곰팡이와 세균들이 효소를 생산하고 이 효소는 콩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을 분해합니다.
간장은 자연 발효가 된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3-6개월 숙성시키면서 수용성 단백질 분해물, 즉 아미노산, 펩타이드와 함께 지방의 분해 산물까지 녹여내는 과정으로 만들어 집니다. 처음 만든 것을 “햇장”이라 하고 해를 넘기며 숙성시킨 것을 “묵은장”이라 합니다.
된장은 간장을 빼고 난 덩어리에 메주 가루를 더 넣거나 삶은 곡류를 추가하여 섞은 후 다시 3-6개월을 숙성하여 만듭니다. 간장을 빼지 않은 된장을 지역에 따라 “쩜장” 혹은 “막장” 이라고 부릅니다. 고추장은 보통 콩과 쌀을 6:4로 혼합하여 고추장 메주를 따로 만들고 2-3개월 띄웁니다.
이 메주를 가루 내고 고춧가루와 식혜 국물을 혼합하여 발효시키면 고추장이 됩니다. 쌀 등의 곡류에서 나온 단맛과 메주에서 나온 감칠맛, 고춧가루에서 나온 매운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고추장을 즐겨 먹으면 위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Helicobacter pylori) 균이 억제된다는 논문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청국장은 삶은 콩에 마른 짚을 꽂아주고 40~45℃에서 3일 정도 발효하여 만들어 냅니다. 일본의 나또와 다른 점은 나또는 바실러스 서브틸리스 나또 (Bacillus subtilis natto)균 이라는 단일균을 접종시켜 발효하는데 반해 청국장은 마른 짚에 내재된 바실러스 서브틸리스 (Bacillus subtilis) 균속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청국장은 나토키나제 같은 효소를 만들어내 혈관 건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복합 발효 과정에서 생긴 폴리감마글루탐산이 체내 칼슘의 흡수를 돕고 면역에 작용하는 NK세포 활성도를 50% 이상 높인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제대로 띄워진 청국장은 깊고 구수한 풍미가 나기에 한번 맛을 들이면 중독성이 있습니다.
♣ 젓갈류
젓갈은 수산물 발효로 만들어 지며 한국의 식탁에 중요한 밑반찬 역할을 합니다. 김치의 부재료로 혹은 국을 끓일 때 소금 대신 간을 맞추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수산물을 보관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소금 절임 입니다.
생선의 어육과 내장은 물론 오징어 조개 등 다양한 원재료를 저온에서 발효시킵니다. 소금만 첨가하는 방법이 있고 간장이나 고춧가루를 넣어 색다른 맛을 내기도 합니다.
특히 곡류를 넣어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지는 가자미식혜, 황태식혜도 별미입니다. 영양적으로는 필수아미노산 외에서 감마아미노부틸산(GABA) 성분이 대량 함유되어 있어서 염도를 조절하며 소량씩 사용할 때 그 기능성이 확대됩니다.
♣ 식초
전통적으로는 막걸리를 자연발효하여 식초를 만들었습니다. 막걸리 자체가 복합 누룩균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로써 빚어지는 식초 또한 자연 발효의 맥락을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둥이가 넓은 옹기에 술을 부어 적당에 온도에 놓아두면 자연스럽게 초산 발효가 일어났습니다.
천연 발효로 만들어진 식초는 콜레스테롤을 조절하고 체중 감량에 뛰어난 효과를 지닙니다. 산성으로 치우치기 쉬운 몸을 알칼리성으로 순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간기능을 활성화 시켰고 항산화 작용으로 피로회복 효과가 탁월했습니다.
한국 음식에서 새콤달콤한 초무침의 맛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존에는 음식의 조미료로 쓰였던 식초가 이제는 그 기능성이 인정되고 다양한 과실로 만들어 지며서 음료 베이스로서의 시장이 확대되는 중입니다.
한국의 발효식은 사람이 개발한 조리법이라기 보다는 자연이 사람에게 선물한 지혜입니다. 생태계의 미생물을 사람의 음식에 어떻게 도입하고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가에 뛰어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유산균에 의해 생성된 유산이나 항균 물질이 저장성을 향상시키고 아미노산과 핵산은 음식에 독특한 풍미를 연출하며 영양은 풍부해지고 흡수율도 높아집니다. 한국의 발효식을 즐겨 먹으면 항암, 항염, 콜레스테롤 개선 등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이 직접적으로 인체 생리 작용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발효에 관여한 미생물이 음식과 함께 몸에 들어가 장내 미생물 환경을 건강하게 유도하는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의 역할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에 선정된 레스토랑 중에도 직접 김치와 장을 담거나 지역의 발효 음식 명인들과 긴밀하게 협업하여 전통은 계승하되 새로운 해석을 나타내는 등 다양한 발효식의 세계를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