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날은 많은 아시아 문화권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입니다. 설날을 보내는 방법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명절 음식을 즐기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설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떡국부터 홍콩의 찹쌀 만두와 싱가포르의 로 헤이까지, 설날 음식은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합니다.
곧 다가올 설날을 맞이해,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셰프들이 각국의 가장 대표적인 설날 음식과 그 뒤에 숨겨진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소개합니다.
서울
떡국
한국의 설날 음식으로는, 떡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1에 새롭게 등재된 사녹의 김정호 셰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역에 따라 떡국을 요리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가족마다 조리법도 다릅니다. 국물은 일반적으로 소고기 사골을 끓여서 만들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말린 멸치와 다시마를 사용하기도 하죠.” 셰프는 이런 다양성이 떡국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결혼을 해서 떡국을 만든다면, 새로운 가족에서 새로운 요리법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아내에게 떡국을 만들어 준 적이 있어요. 저는 사골 육수에 소고기를 넣어 푹 끓여서 대파와 김가루를 넣어 먹는 방식으로 떡국을 준비했는데,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레시피였습니다.
아내는 이런 떡국을 처음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내는 사골이나 멸치 육수를 끓이고, 떡만 넣어 간을 해 담백하게 준비한 뒤, 볶은 소고기와 계란 지단 고명을 각각 요리해 마지막에 올려서 먹는 방식으로 떡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 때, 떡국이라는 기본적인 명절 요리도 집안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새삼 특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김정호 셰프는 아내의 방식과 어머니의 방식을 융합해 설날 떡국을 준비합니다. 국물을 낼 때 소고기와 사고를 함께 넣어 육수의 맛을 진하게 하고, 간장에 볶은 소고기를 고명으로 올려 식감과 맛을 배가시킵니다. “여기에 신 김치를 곁들이면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호 셰프는 어린 시절, 설 명절에 큰집에 내려가 먹던 설날 음식 중 떡국과 함께 ‘굴’이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입니다. “바닷가 지역도 아닌데, 항상 설날에 굴을 먹었어요.
보통 한국 사람들은 생굴을 초장에 찍어 먹는데 특이하게도 저희는 간장에 참기름과 식초, 깨소금, 고운 고추가루, 다진 파를 넣어 만든 양념장을 곁들였지요. 설날에 흔히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저는 매년 큰집에서 이 굴을 먹다 보니 설날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입니다. 양념장에 매콤한 청양고추를 함께 다져 넣으면 더 맛있어요.”
싱가포르
박과(Bak kwa), 훈제한 돼지고기 육포
싱가포르에서, 말 그대로 “말린 고기”를 의미하는 ‘박과’는 음력 설날과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육즙을 느낄 수 있는 이 독특한 육포는 건조하기 전 설탕과 향신료로 만든 양념에 마리네이드 한 뒤 숯불에 구워 준비합니다. 박과의 붉은 빛은 중국 문화권에서 행운과 부를 상징하기 때문에 명절 선물로 큰 인기가 있습니다.
“저는 박과를 정말 좋아해요,”라고 싱가포르에 있는 미쉐린 플레이트 중국 레스토랑 Min Jiang의 Chan Hwan Kee 셰프가 이야기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박과는 설 명절에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별미로 여겨졌습니다.” 싱가포르의 이런 전통은, 과거에 육류 소비를 사치라고 여겨 특별한 경우에만 즐길 수 있었던 중국 푸젠성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얇게 썬 살코기로 만들어 식감이 쫄깃쫄깃한 박과를 먹고 자랐어요. 지금은 고기를 다져 만든 박과의 식감이 더 부드러워서, 이렇게 만든 것을 선호합니다.” 굿우드 파크 호텔에 위치한 Min Jiang의 셰프는 고기를 양념한 뒤 숯불에서 구워 훈제 향을 입힙니다.
“저는 약간 달콤한 뉘앙스가 있는, 짭조름하고 훈연 향이 느껴지는 박과를 좋아합니다. 해마다 손님들과 제가 이 박과를 통해 즐거운 설 명절을 지낼 수 있어 기쁩니다.”
유셩(yu sheng, 魚生), 광둥식 생선 샐러드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유슈엉(余升)과 같은 발음인 ‘유셩(魚生)’은 채소와 회를 채 썰어 한데 내는 음식으로, 음력 설날 싱가포르에서 먹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화려한 요리는 날 생선과 얇게 채썰어 절인 흰 무, 당근, 청무, 오이, 생강, 양파 등의 절임 채소로 구성됩니다. 한국의 구절판처럼 각각의 재료가 큰 접시 위에 올려진 요리에, 오일과 매실소스, 땅콩과 pok chui 크래커 조각을 듬뿍 넣어 서빙합니다.
샐러드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은 중국의 격언과 연결된 상서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사할 때에는 모두가 긴 젓가락을 이용해서 이 샐러드를 다같이 집어 올려 던지다시피 하며 한데 섞습니다. ‘로 헤이(lo hei)’라고 불리는 관습으로, 상서로운 격언을 이야기하며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미쉐린 1 스타 레스토랑인 Summer Palace에서 유셩은 거의 모든 테이블이 설날 주문하는 음식입니다. “가까운 친척과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일년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지인들에 이르기까지, 로 헤이는 서먹함을 깨고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Liu Ching Hai 총괄 셰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30여 년 전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처음 이주했을 때 이런 전통이 낯설었다가, 점차 이 명절 음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올해 그는 비건 버전부터 랍스터가 들어간 고급 버전까지 9가지 종류의 유셩 메뉴를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파스타 면, 트러플, 캐비어가 들어간 이탈리아 방식의 유셩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호텔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Basilico와 협업하기도 했습니다.
“말레이시아나 홍콩과 같은 지역에도 이러한 ‘로 헤이’ 전통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싱가포르 요리가 창의성을 더하면 다른 음식 문화에 쉽게 녹아들 수 있으며, 축하의 마음을 나눈다는 점에서 명절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셰프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대만
핫팟(훠궈)
음력 설날은 가족이 재회하는 시기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훠궈에 둘러앉아 온갖 재료를 넣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수다를 떨면서 즐기는 명절이지요. 훠궈는 대만의 설 전날 저녁 식사로 제공되는 가장 흔한 음식 중 하나입니다.
“훠궈를 준비하는 정해진 방법은 없습니다. 이 요리는 ‘함께 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더욱 강조합니다,”라고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Mountain and Sea House 의 Leo Tsai 셰프가 설명합니다.
실제로 훠궈 육수나 재료에 관한 한 각 가정마다 고유의 선호와 전통이 있습니다. 바다와 가까운 지역인 윈린군 타이시가 고향인 Tsai 셰프의 설맞이 훠궈에는 굴과 바지락 등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 담길 예정입니다.
Mountain and Sea House에서는 설날에도 “병어 누들 수프”를 제공합니다. 병어는 중국어로 ‘번영’과 동음이의어로,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 요리를 먹습니다. 식사하는 사람들은 훠궈를 먹을 때처럼 다양한 채소 등 각자가 선호하는 재료들을 국물에 첨가할 수 있습니다.
통닭 요리
대만의 설 전날 저녁식사에서 또 다른 상징적인 음식은 “통닭”입니다. – “닭”의 발음은 중국어로 “상서로움"에 가깝고 “닭을 먹다”는 대만어로 “재산을 쌓고 번창하는 것”을 동음이의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닭은 항상 통째로 요리된 통닭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그 이유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무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Tsai 셰프는 설 전날 저녁에 먹는 닭 요리는 대개 낮에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고 난 음식이며, 보통 차갑게 먹기 때문에, 맛과 질감을 잃지 않고 오래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요리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Mountain and Sea House에서는 설날을 맞아, 찐 자연방목 닭과 사탕수수에 훈연한 자연방목 닭을 제공합니다. 찐 닭의 경우 보통은 데쳐서 소금에 살짝 절인 뒤 말려 준비하는데, 셰프는 육즙을 잃지 않도록 닭은 저온 조리해 준비합니다.
그리고 금귤과 대만식 마늘간장 소스와 함께 서빙합니다. 사탕수수에 훈제한 닭은 농축된 사탕수수 즙에 24시간동안 재운 뒤, 사탕수수에 훈연해 특별한 향을 입혔습니다.
홍콩
통윤(Tong Yoon), 찹쌀 만두
설날 즐기는 명절 음식에는 흔히 말장난이 포함되는데, 이 쫄깃한 만두도 예외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수프 공”이라는 뜻의 이 찹쌀만두의 이름은 광둥어로 재회를 의미하는 “툰 윤(tun yun)”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전통적으로 검은 깨나 잘게 썬 땅콩으로 채워진 통윤은 쫄깃하고 모찌 같은 질감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광동 요리에서, 통윤은 달콤한 소의 맛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뜨거운 생강탕에 담겨 제공됩니다. 팥, 초콜릿, 으깬 토란과 커스터드 등 다양한 종류의 소를 채운 현대적인 통윤을 시중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푼 초이(Poon Choi)
홍콩만의 전통 요리인 푼 초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공동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축제나 결혼 연회, 음력 설날 여럿이 함께 모여 즐기는 요리입니다.
‘푼’은 보통 큰 잔치에 쓰이는 나무 대접을 일컫는 말이고, ‘초이’는 전복, 닭고기, 해삼 등 가장 비싼 재료를 위에 올려 재물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음식을 말합니다. 푼 초이의 중간에는 보통 돼지고기와 중국식 말린 버섯이 들어가 있고, 배추와 돼지 껍질, 두부 등 소스를 흡수하는 재료들이 가장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푼 초이는 마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축하 잔치와 단합, 화합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는 도시 지역의 레스토랑들이 특히 동지와 설날에 각자의 버전을 만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미쉐린 1 스타 레스토랑인 Yè Shanghai (Tsim Sha Tsui)에서는 돼지 족발과 계란 만두, 죽순, 훈제 오리와 포두부가 들어간 상하이식 푼 초이를 포장 메뉴로 준비해 선보입니다.
가장 아래는 간장에 재운 무로 채워져 있는데, 집에서 각자 간단히 끓여 먹을 수 있고 4명의 성인이 먹기에도 충분합니다. 음식을 다시 데우는 동안, 족발 소스를 넣어 요리를 완성하면 됩니다.
태국
까이 옵(Kai Op), 통구이 로스트 치킨
태국의 중화권 커뮤니티에서는 조상을 기리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음력 설을 지냅니다. 친지들이 번영을 상징하는 맛있는 명절 음식으로 가득한 본가에서 재회하는 날입니다.
현대적이고 빠른 라이프스타일이 보편화되며, 최근에는 설 명절 음식이 패스트푸드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식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인기 있고 놓칠 수 없는 요리 중 하나는 통닭 구이입니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내놓는 것은 전체성과 번영을 상징합니다,”라고 방콕의 새로운 미쉐린 플레이트 레스토랑인 Dai Lou의 Wasan Jitjaroonruang 셰프가 설명합니다. “닭은 시각적으로 통합과 공동체를 표현하고, 삶거나 오븐 또는 그릴에 굽는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준비될 수 있습니다.”
셰프의 통닭구이는 이러한 번영과 통일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임페리얼 트레져 로스트 치킨이라는 이름의 이 요리는 제가 만든 요리입니다. 속을 채운 아름다운 닭 요리이지요. 새우, 해삼, 그리고 바삭바삭한 절인 오징어는 기쁨과 행복을 상징합니다.
밤은 재물을, 돼지고기 내장은 건강을 의미합니다. 국수는 장수를 위한 것이고, 샐러리와 은행, 피망은 건강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 향을 더하기 위해 훈제한 오리 가슴살도 첨가합니다.”
“이 별미의 비밀은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최고의 재료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잘 볶은 속을 넣기 전, 닭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뼈를 발골합니다.
속을 채워넣은 닭은 한 시간 동안 오븐에 구운 뒤 뜨거운 기름을 겉면에 끼얹어 바삭하고 매력적인 식감을 더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특별한 전복 그레이비 소스로 마무리해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