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은 한국인의 소울푸드 입니다. 한국 최초의 식당으로 등재된 곳도 설렁탕집이었습니다. 그 식당은 백 년을 넘어 지금까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의 뼈와 고기를 오랜 시간 우려낸 국물, 설렁탕. 예로부터 유럽에는 구역마다 빵집이 있어 공동의 화덕 삼아 마을의 빵을 구워 먹듯이, 한국에서는 동네마다 유명한 설렁탕 집이 있어 공동의 가마솥에 설렁탕을 우려 먹습니다.
설렁탕을 빼고서는 한국인의 국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기 육수를 내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문헌 상에는 소의 잡뼈, 고기, 머리, 내장, 도가니, 우족 모두 집어넣어 펄펄 끓여낸다고 하였으나 현재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사골과 고기만 넣고 끓여냅니다.
사골에서는 구수한 맛이 나고 고기에서는 맑은 감칠맛이 녹아 듭니다. 사골의 비율을 높여 우유처럼 뽀얀 국물을 내는 곳도 있지만 고기의 맑은 감칠맛만 뽑아낸 곳도 있습니다.
설렁탕 전문점 마다 조리법이 다르기에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단골집을 만들어 놓고 배달을 시키는가 하면 종종 먼 길 마다 않고 잘한다 하는 설렁탕 전문점을 순례하기도 합니다.
고기나 뼈, 내장을 활용한 탕 요리는 각 지방마다 다양하게 발전하여 왔는데 설렁탕은 특히 서울에서 가장 정형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해 왔습니다.
♣ 설렁탕과 한국 문학
한국 사람들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할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설렁탕일 것입니다. 젖을 뗀 아이들은 설렁탕 국물에 밥을 말아 세상의 음식으로 발을 내딛고 숟가락 무게 조차 힘 겨운 노인들도 설렁탕 국물은 훌훌 넘기며 기력을 되찾으니까요.
설렁탕에 대한 사랑은 한국의 문학 작품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24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 에는 설렁탕이 미학적인 장치로 사용됩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인력거꾼 김첨지가 병든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다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병든 아내는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떼를 썼고 김첨지는 설렁탕을 살 수 있도록 돈을 버는 날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날로 여깁니다. 그러나 결국 아내는 김첨지가 사온 설렁탕을 먹지 못하고 죽고 아이는 죽은 어머니의 빈 젖만 빨고 있습니다.
1920년대의 삶에서 설렁탕은 최고의 행복을 상징했고 그 설렁탕을 먹을 수 있는 운수 좋은 날, 가장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역설적인 구조를 이루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서울의 모습은 상전벽해를 이루었으나 설렁탕이라는 음식은 고스란히 살아 가마솥에서 끓고 있습니다.
♣ 설렁탕과 곰탕은 어떤 차이일까
곰탕은 소의 고기만 넣고 설렁탕은 사골과 고기를 함께 넣었다 구분하지만 요즘은 곰탕식으로 끓여낸 설렁탕이 많아져서 이 둘을 정확히 나누기는 모호해 졌습니다. 사골국의 우윳빛을 내기 위해서 프리마나 분유를 썼다는 식당이 적발되면서 사람들은 뽀얀 국물에 대한 환상이 깨졌습니다.
점차 투명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곰탕식 설렁탕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고기만 넣고 육수를 내는 경우 고기의 선도가 좋지 않으면 비릿하고 불쾌한 맛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를 감추기 위해 고기는 조금 쓰고 MSG를 가미한 업체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중에는 건강한 설렁탕,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는 식당을 찾는 붐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설렁탕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먹는 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설렁탕의 특징 중 하나는 뚝배기에 펄펄 끓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먹기 쉬운 온도는 아니지만 미지근한 국물이 나오면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전에는 밥을 토렴해서 국에 말아 나오는 것이 주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따로 내주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밥이 국에 담겨 있으면 시간이 갈수록 밥알이 불면서 국물을 텁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소면은 늘 국 안에 담겨 나옵니다. 소면을 고기에 감싸 후루룩 떠 먹고 밥을 말아 먹으면 우육탕면과 고기국밥 꿩 먹고 알 먹는 샘이니까요.
국물도 더욱 개운하고 맑은 것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그러기에 사골 육수의 비중이 줄고 좋은 국내산 소고기로 우려낸 국물이 점차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현재로서는 곰탕과 설렁탕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 유명한 설렁탕집의 비결, 김치
설렁탕은 국물이 구수해서 김치만 곁들여도 밥 한 공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적당한 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김치로 비타민, 미네랄, 식이 섬유까지 채우니 후루룩 말아 먹어도 한끼 식사로 충분합니다. 설렁탕을 완성하는 것은 김치입니다.
깍두기나 배추김치가 중요합니다. 발효된 김치가 설렁탕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김치에는 구수한 고기 육수가 가미되니 이 둘은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설렁탕이 유명한 식당들은 김치 담는 노하우가 대단합니다. 김치를 먹기 위해 탕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입니다.
식당 주인들은 자신이 국물 내는 방식에 따라 김치의 맛을 조율합니다. 육향이 진하고 기름기가 많은 설렁탕집은 깍두기를 시큼할 정도로 익혀서 내놓습니다. 맑고 개운한 국물을 추구하는 설렁탕집은 배추 겉절이를 내놓고 깍두기도 약간 새콤할 정도로만 익힙니다.
깍두기 국물을 주전자에 따로 넣고 내어주는 집도 있습니다. 깍두기 국물은 무의 미네랄과 소화 효소가 잘 녹아들어가고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젓갈이 배합되어 그 자체로 영양이 풍부한 소스가 됩니다. 김치 인심이 박한 집은 손님들이 싫어합니다.
테이블마다 김치를 작은 항아리 혹은 뚝배기에 담아 두고 맘껏 먹게 하면 손님들은 그 자체로 좋은 대접을 받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푸짐하게 쌓인 김치를 손으로 찢어 먹거나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 덜어 먹는데 이 과정 조차 설렁탕을 먹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니까요.
김치 외에도 설렁탕을 맛있게 하는 것은 송송 채친 대파와 소금, 후추 입니다. 음식 맛에 자신 있는 곳들은 탕에 간을 맞추지 않고 솔직한 육향 만을 담아 냅니다.
질 좋은 고급 소고기를 썼다는 증거이니까요. 손님들은 순수한 고깃국을 한입 떠 맛본 후에 자신의 기호에 맞게 소금간을 하고 후추를 뿌립니다. 깍두기 국물로 간을 맞추어도 좋지만 시종일관 담백한 국물로만 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마포양지설렁탕 (마포구)
이곳은 1974년에 영업을 시작하였으니 올해로 46년의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맑은 감칠맛과 구수함의 밸런스가 가장 뛰어난 곳입니다. 그 비결은 사골 육수와 양지 육수를 따로 끓이고 둘을 배합하되 양지 육수의 비율을 높이는데 있습니다.
기름은 깔끔하게 걷어내니 감칠맛과 살포시 감도는 구수함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투명한 가운데 뽀얀 빛이 감도는 국물에는 보들보들 부드러운 양지살과 소면이 담겨 나옵니다. 좋은 쌀을 쓰는 밥도 윤기가 돌며 맛있습니다. 이곳의 별미는 파김치 입니다.
파의 날카로운 매운맛만 숙성 시키고 고유의 향을 살린 파김치는 설렁탕의 국물, 특히 소면을 말아 먹을 때 가장 맛있습니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특별합니다. 배추는 잎이 크면서도 섬유질이 연하고 달근한 것을 잘 골라 씁니다. 10일 정도 숙성 시키는데 살짝 익은 맛이 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어 샐러드를 먹는 것 같습니다.
깍두기는 국물을 칼칼하고 시원하게 담습니다. 마늘, 생강, 젓갈을 충분히 쓰는 방식입니다. 깍두기 국물 자체가 설렁탕을 맛있게 하는 소스로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김치 3종과 함께 맑고 구수한 설렁탕 한 그릇을 먹으면 손끝 발끝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몸이 따스해 집니다.
♣ 외고집설렁탕 (강남구)
2005년 개업하여 이곳은 건강한 설렁탕의 대명사가 되어 강남 일대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식당입니다. 원래는 대치동 골목길에 있었는데 손님이 많아지고 원래 있던 건물이 팔리면서 2018년 삼성동으로 확장 이전했습니다. 이곳의 장점은 좋은 소고기로 뽑아내는 국물입니다.
한우 1++ 등급만 고집하며 육수를 내는 뼈와 고기 모두 국내산을 씁니다. 김치를 만드는 무, 배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일체를 국내산으로 엄선합니다. 고기에서 우러난 기름이 살짝 떠 있는데 국물은 맑고 개운합니다. 맑은 설렁탕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곳을 으뜸으로 칩니다.
신선하고 두툼한 고기는 육향이 좋습니다. 뚝배기 안에는 소면이 담겨 있고 밥은 따로 나옵니다. 이곳 또한 김치가 맛있지만 소금도 특별합니다. 신안 천일염을 구워 내어줍니다.
단맛이 도는 깔끔한 소금은 국물의 감칠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일반 설렁탕은 양지가 들어가며 머릿고기가 들어있는 설렁탕 메뉴가 따로 있습니다.
♣ 마포옥 (마포구)
1949년에 개업하여 3대째 이어오는 곳입니다. 사골과 양지, 차돌박이를 넣고 끓여냅니다. 차돌박이의 특성상 육즙이 진하고 지방 성분 많아서 색깔은 맑지만 국물 맛이 농후한 편입니다. 기름기가 동동 떠오르는 것이 국밥의 맛을 더욱 진득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곳은 신김치와 궁합이 좋습니다. 진한 국물을 내는 곳들은 밥을 미리 토렴하여 담아주는 곳이 많습니다. 이곳 또한 소면과 함께 밥이 말아져 있으니 쌀밥의 전분기가 감돌아서 탕을 더욱 구수하게 만듭니다.
이곳에서는 4종의 김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치 겉절이와 시큼하게 익은 깍두기를 내어주는데 국물 맛이 진하기에 잘 익은 깍두기와의 궁합이 참으로 좋습니다. 느끼하다 싶을 때는 깍두기 국물을 넣어주면 칼칼하고 개운해 집니다.
추가로 파김치와 잘 익은 배추김치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파김치로 녹진한 지방의 차돌박이를 감싸 안으면 입안에서 천상의 향으로 어우러 집니다.
이렇게 김치에 공을 들이니 이곳 설렁탕을 먹은 사람들은 다시 찾게 됩니다. 설렁탕은 한우를 고집하며 직접 담는 김치 또한 모든 재료를 국산 최상급으로 씁니다. 한우양지설렁탕이 기본이며 차돌탕, 우삽겹탕이 따로 있으니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골라 먹기 좋습니다.
♣ 이문설농탕 (종로구)
서울의 설렁탕 전문점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랜 곳입니다. 한국의 첫 대중음식점으로 공식 기재된 곳이기도 합니다. 1904년에 개업하여 지금까지 성업 중인데 소뼈, 고기, 내장이 어우러진 서울의 원조 설렁탕 맛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도 옛 방식을 살려 설농탕이라 부릅니다.
17시간 이상 우려낸 사골 육수에 양지, 도가니, 머릿고기, 우설 등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익는 순차적으로 꺼내어 고기를 찬물에 다시 담고 찰지게 만들지요. 그럼 국물은 국물 대로 농후하고 고기에는 육향이 남아있어 국물도 고기도 맛있게 됩니다.
뚝배기에 밥과 소면, 고기를 얹어 증기로 찌고 있다가 손님상에 나아갈 때 육수를 부어줍니다. 그러면 육향은 살아있고 밥이 불지 않으면 탕과 고기가 깔끔하게 조화를 이루지요. 이것이 100년을 살게 한 비법입니다. 설농탕에는 소 비장 부위 “마나” 라는 것이 함께 나옵니다.
일반 설렁탕집이 고기만 내어주는 데에 반해 내장을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국물이 다소 농후하기에 시원한 깍두기 국물이 인기가 많습니다. 양지는 호주산 국내산을 섞어 쓰며 사골과 마나는 국내산을 씁니다.
기본 메뉴인 설농탕에는 양지가 푸짐하게 들어있으며 특설농탕을 주문하면 우설과 소머리 부위도 함께 맛볼 수 있습니다. 뼈, 고기, 내장이 어우러지는 야성적인 육향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이 곳 자체의 매력에 빠지면 또 다시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