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코스 요리에 흔히 와인 페어링을 곁들이지만, 술을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무알코올 음료 페어링도 다이닝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점점 더 많은 레스토랑이 과일이나 채소 주스를 베이스로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칵테일 페어링 메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덴마크의 2 스타 레스토랑인 노마(noma)가 10여 년 전 이 트렌드를 촉발했고, 미국 뉴욕의 2 스타 레스토랑인 아테라(Atera) 등 명망 있는 레스토랑이 이 트렌드에 발맞추며 술을 즐기지 않는 미식가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안합니다.
이 트렌드는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직 한국에는 무알코올 음료 페어링 메뉴가 흔한 옵션이 아니지만, 미국의 다이닝 트렌드를 통해 세계적인 흐름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의 무알코올 음료 페어링 메뉴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두 곳을 소개합니다.
먼저, 이 트렌드를 이끈 곳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인 다이얼로그(Dialogue)로, 무알코올 음료 메뉴만을 담당하는 믹솔로지스트 조한석씨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믹솔로지스트는 본래 혼합하다는 의미의 ‘Mix’와 학자를 뜻하는 ‘Ologist’ 두 단어의 합성어로 새로운 칵테일을 만드는 칵테일 전문가, 바텐더를 일컫는 말입니다. 조한석 믹솔로지스트는 캘리포니아 북부 힐즈버그에 위치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싱글스레드(SingleThread)에서 무알코올 칵테일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녀는 다이얼로그를 방문하는 손님 중 적어도 30%는 다양한 이유로 무알코올 페어링을 선택한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분들은 임신중이고, 몇몇은 건강을 관리하며 회복 중이고, 또 일부는 미성년자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기도 하고, 그저 그날 술을 드시지 않기로 한 분도 계시죠.”
조한석 믹솔로지스트의 일은, 셰프가 준비한 20여 가지 테이스팅 코스에 어울리는 5코스의 무알코올 음료 페어링 메뉴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디너의 경우, 이 페어링 메뉴는 ‘체리 코크’라고 흔히 불리는, 코카콜라의 체리콜라 음료에서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칵테일로 시작합니다.
오렌지꽃, 라벤더와 여러 가지 향신료를 탄산이 있는 체리 주스와 섞어 만드는데, 코스의 첫머리를 여는 4가지 요리와 훌륭하게 어울립니다.
체리를 곁들인 셀러리 뿌리 요리, 뒤이어 나오는 펜넬 요리, 그리고 느타리버섯과 민들레잎 요리는 물론 브로콜리와 버섯 요리에 이르기까지 네 가지 코스가 각각 다른 개성을 뽐내며 이 칵테일과 어우러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맛과 어울릴만한 음료를 만든다는 것은 도전적인 일이지만, 그래서 제 일이 참 재밌습니다.”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입니다.
디저트 코스에는 사과즙과 배즙을 베이스로, 복숭아 잎과 카르다몸을 인퓨징한 뒤 맑게 정제해 만든 칵테일을 페어링합니다. 디저트 와인의 대표 격인 소테른의 향미를 재해석한 칵테일이죠. “복숭아 잎은 아몬드를 연상시키는 너티한 향을 더합니다. 약간의 스파이시함도 있죠.”
무알코올 페어링 메뉴를 구성할 때, 조한석 믹솔로지스트는 항상 설탕 함량을 최소화하고 향기를 극대화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칵테일은 대체로 너무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후각을 즐겁게 만족시킵니다. “저는 항상 꽃향기를 줄 수 있는 요소와 베이킹 향신료를 하나 이상 넣어 균형을 잡습니다. 이렇게 하면 향미의 품격을 보다 높일 수 있어요.” 그녀가 밝힌 칵테일 맛의 비결입니다.
무알코올 음료 페어링 전담 믹솔로지스트라는 그녀의 역할은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모든 레스토랑이 다이얼로그처럼 이 메뉴에 대한 전담 인력을 고용할 여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트렌드의 물결에 오른 무알코올 페어링은 충분히 고려할만한 대상입니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페인 출신의 유명 셰프 호세 안드레스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미니바’도 무알코올 페어링 메뉴를 제공합니다.
미니바를 이끄는 호르헤 에르난데스 헤드셰프는 ‘버추 페어링(Virtue Pairing)’이라는 이름으로 준비되는 9가지 무알코올 칵테일 코스를 총괄 지휘하는데, 레스토랑의 약 28가지 메뉴와 멋지게 어울립니다.
미니바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런 무알코올 메뉴를 제공해 왔고, 점점 더 많은 고객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이 공간을 찾는 26명의 고객 중 약 5명에서 10명 정도가 이 무알코올 페어링 옵션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미니바의 무알코올 음료에는 신선한 과일 주스 외에도 향미를 복합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요소가 첨가됩니다. 세계 각국의 차, 염장한 식재료와 즙, 약재와 발효액, 당분 등의 보존제, 향신료와 각종 시럽 등 무궁무진한 요소가 더해질 수 있습니다.
“이 무알코올 칵테일을 단순히 주스에 비유하는 것은, 향이 첨가된 설탕물이라고 하는 바와 다를 바 없죠.” 에르난데스 셰프는 이 특별한 음료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냅니다. “저희는 사람들이 [알코올] 칵테일을 만드는 방식과 동일하게 음료를 만듭니다.
우선 베이스를 잡은 뒤 재료의 비율을 절묘하게 조정하고, 음식과 함께 음료의 풍미가 폭발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죠.”
이곳에서 무알코올 칵테일 메뉴를 최종적으로 개발하는 역할은 바로 셰프입니다. 에르난데스 셰프는 음료를 만드는 과정이 “팀플레이 스포츠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소믈리에와 서비스팀과 먼저 논의한 뒤, 셰프들이 대부분의 연구개발을 수행합니다.
궁극적으로 최종적인 음료 레시피를 만드는 것은 셰프 드 파티(*chef de partie: 한 섹션을 책임지는 팀장급 요리사) 의 일입니다.
미니바의 칵테일 페어링은 가볍고 상큼한 스타일의 음료로 시작해 발효취와 다양한 풍미가 있는 음료로 점차 진행하며 식사 코스와 발을 맞춥니다. 예컨대 시작하는 음료는 셀러리 주스, 사과즙과 카밀러 차, 백후추, 레몬을 넣은 칵테일로 다양한 스낵들에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집니다.
코스의 중반에는 무알코올 세이지 테파시(Tepach)가 준비되는데, 테파시는 원래 파인애플 껍질을 흑설탕, 시나몬과 함께 넣어 발효해 만든 술로, 미니바에서는 무알코올 스타일로 재해석해 이를 선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코스에는 보이차와 누룩, 염장한 베르가모트 즙과 염소젖 카제타를 혼합한 묵직하고 부드러운 풍미의 칵테일이 페어링 됩니다.
고객들이 무알코올 음료를 마시면서도 알코올 음료에서 느낄법한 깊은 복합미와 풍미를 더욱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시각적인 요소에도 신경 씁니다. 레스토랑에서 제조한 음료를 단순히 잔에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맞춤 제작한 라벨을 붙인 와인병에 담아 서빙하는 것입니다.
몇몇 칵테일은 고객의 식사 테이블에서 직접 완성되기도 하죠. “저희는 당신에게 단순히 주스를 내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와인이나 요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음료를 만들고 있죠.” 미니바의 호르헤 에르난데스 셰프는 이처럼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