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다이닝 ‘류니끄’의 수장 류태환 셰프가 얼마 전 대중음식점을 열었다. 돼지의 머리와 장어의 몸통을 형상화한 신박한 표징을 내 건, ‘돼장’이 바로 그곳이다. 꿈속에서 영감을 얻어 써 내려간 요리법으로 완성한 돼장의 맛이 벌써 입과 입을 타고 있다.
<한식 읽기 좋은 날>에, 충남 예산 돼지고기와 경남 통영 붕장어의 맛있는 만남을 주선한 류태환 셰프를 만났다. 하이브리드 퀴진의 선구자로 꼽히는 류태환 셰프는 한국의 음식재료에 일본, 프랑스 등의 요리법을 적용해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인 요리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Q. 그동안 파인다이닝을 운영해 왔잖아요. 그래서 ‘돼장’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요리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인다이닝을 운영해 오면서 쌓인 경험과 나름의 비법으로 이제는 대중들을 위한 공간과 요리를 마련하면 좋겠다라고요, 또 그럴 시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대중음식점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돼장’은 그 중 하나입니다.
Q. 돼지고기와 장어의 만남이 상당히 이색적입니다.
해산물을 좋아해서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내겠다는 것이 이번 대중음식점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생각이었어요.
다만, 해산물 하나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음식재료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꿈속에서 영감을 얻었고, 돼지고기를 선택했습니다.
궁합이요? ‘surf & turf’라고 보면 됩니다. 성질과 특성이 달라서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죠. 그러니까 돼장에서는 돼지 목살을 구운 후에 그 돼지기름에 장어를 구워요. 익숙한 듯,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Q. 특성이 다른 이 두 가지 재료로 조화로운 맛의 요리를 만들어내기까지, 고민이 많았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기존의 돼지고기·장어 구이 가게와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었고, 그것이 센세이션하게 또 가치가 있는 것으로 비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불과 구이판을 어떻게 할지를 탐구하고, 숙성법과 구이법을 연구하고, 소스 등을 개발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안동, 통영, 고흥, 서천, 예산 등을 몇 번이나 찾아가서 연구했죠.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돼장만의 정확한 레퍼런스를 잡을 수 있었고, 돼장만의 가치와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또 그동안 지리적 표시제에 근거해 음식재료 여행을 다닌 보람을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국내산 제철 음식재료를 사용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Q. 셰프님은 전국 각지를 다니며 음식재료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죠.
음식재료를 탐색한다는 것은 단지 음식재료만 탐구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 지역의 역사, 헤리티지 등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그 지역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탐색이라고 보면 됩니다. 심지어 부티크 생산자들도 연구 범위에 포함이 됩니다. 사실 그 덕분에 돼장에 다양한 문화예술인의 손길도 담을 수 있었습니다.
Q. 최근 들어 국내산 음식재료에 대한 인식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환경 오염을 줄이려면, 제철 음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국내산 음식재료 사용이 필수이죠.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국내산 제철 음식재료만 사용하기가 어려울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기본적으로 국내산 제철 음식재료 사용을 원칙으로 하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실 국내산 제철 음식재료를 사용하려면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요.
음식재료를 연구해 보면 알게되겠지만, 이는 곧 한 지역을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죠. 어느 한 지역을 알게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이것은 그 지역이 발전하는 방향이 되리라고 봅니다.
Q. 그동안 셰프님도 국내산 제철 음식재료만 고집해 왔잖아요.
전국 여러 지역에 가서 음식재료를 연구하면서 정말 많은 생산자와 인연을 맺었어요. 그러면서 새삼 알게 된 것은 생산자 여러분들이 토양에 맞게 또 기후에 맞춰 작물을 키워내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정말 자기의 인생을 갈아 넣고 계시죠. 안타까운 것은 그 노력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리나라 식당에서의 수요가 어느 정도 뒷바침되면, 그래도 생산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 돼장을 개점하면서 개인적으로 뿌듯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어요. 바로 그동안 연을 맺었던 생산자들에게 적으나마 보답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류니끄에서도 국내산 음식재료만을 취급하지만, 그것이 생산자분들에게 물질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는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돼장은 대중적인 소비가 이뤄지는 곳이니까 아무래도 볼륨이 크죠.
Q. 국산 음식재료에 대한 깊은 연구는, 한식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음~이것은 질문에 맞는 대답은 아닐 수 있어요. 사실 한식은 이미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봐요. 인식도 많이 높아졌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식’을 ‘한식’의 범주에만 가두지 말고 조금 넓게 봤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식당만이 아니라 중식, 일식, 프렌치 등 우리나라의 모든 레스토랑의 가치를 평가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레스토랑에는 정말 유능하고 실력 있는 셰프가 많아요. 또 F&B의 신이라 불리는 이도 많죠. 이들은 한식의 발전을 넘어 한국 식문화의 발전을 이뤄내는 데 일조하고 있죠.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땅과 바다에서 나는 음식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Q. 한식과 한국 식문화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셰프님께서 큰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겠습니다.
앞으로 대중음식점 2개를 더 오픈할 예정이고, 류니끄도 새로운 곳에서 인사를 드릴 것 같습니다. 그곳이 모두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곳이란 평가를 들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며 한국의 음식재료를 발굴하고 또 그것으로 좋은 요리를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 식문화 발전에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세프’로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겠습니다.